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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8.4. 화요일 성 요한 마리 비안네 사제(1786-1859) 기념일

                                                                                                                                     민수12,1-13 마태14,22-36


                                                                                  겸손의 수련

                                                                                  -겸손 예찬-


새벽에 일어나 문밖을 나서니 달 밝은 밤이었고 선선한 느낌에 언뜻 ‘어, 벌써 가을인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즉시 집무실에 들어와 달력을 보니 입추(8.8일)가 얼마 안남았습니다. 몇 날 동안 몹시 더운 여름이었는데 벌써 가을이라 생각하니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에 마음이 숙연해지고 겸허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진정 영적 삶은 겸손의 여정입니다. 겸손해서 사람입니다. 겸손(humilitas)과 사람(homo)은 모두 같은 어원인 흙(humus)에서 출발합니다. 흙같은 겸손이요 사람입니다. 하여 흙에 대해 본능적인 향수와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들입니다. 세월 흘러 익어갈수록 겸손한 사람입니다. 겸손은 성숙의 표지이자 영성의 잣대입니다. 모든 덕의 어머니가 겸손이요, 참으로 겸손한 사람이 매력적이고 아름답습니다.


하느님께서 진정 신뢰하고 사랑하는 사람 역시 겸손한 사람입니다. 하느님 친히 이런 겸손한 사람의 방패가 되어주시고 배경이 되어 주십니다. 오늘 제1독서 민수기의 모세의 경우가 바로 그러합니다.


‘그런데 모세라는 사람은 매우 겸손하였다. 땅 위에 사는 어떤 사람보다도 겸손하였다.’(민수12,3).


이 구절을 대할 때마다 마치 모세를 대하는 듯 기분이 좋습니다. 사실 겸손한 사람을 만나면 기분 좋음을 느끼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순간 모세의 삶의 여정이 생각났습니다. 이집트에서 동족을 구타하는 이집트 사람을 살해한 후 미디안 광야로의 도주 이후 지금까지 전개됐던 모세의 파란만장한 삶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모세의 삶의 여정은 바로 겸손의 여정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애당초 타고난 겸손은 없습니다. 설익었던 삶의 열매가 인생 가을이 되어 익은 겸손의 열매를 연상케 하는 모세의 모습입니다. 성숙成熟, 원숙圓熟이란 한자 뜻도 겸손과 관련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익어 이뤄진 성숙한 사람이, 익어 둥글게 된 원숙한 사람이 바로 겸손한 사람입니다. 끊임없는 시련과 고난의 수련과정을 통해 갈고 닦아져 금강석 같이 빛나는, 비우고 비워져 마침내 텅 빈 충만의 겸손에 이른 모세입니다. 


깨닫고 보면 우리 일상의 모두가 겸손의 수련입니다. 일상의 시련과 고난들, 겸손의 계기로 삼으면 성숙의 축복이 되지만 그대로 놔두면 상처로 남아 여전히 미숙한 상태로 남아있게 됩니다. 공동체를 통해 상처도 받지만 이 상처를 겸손의 수련의 계기로 삼을 때 상처는 치유되고 날로 성숙한 인간으로 변모됩니다. 하여 겸손의 수련장소인 공동체임을 깨닫습니다. 혼자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살면 결코 겸손한 사람이 되기 힘듭니다. 하느님과 이스라엘 자손들의 공동체 사이에서 끊임없이 겪었던 시련이 모세를 기도의 사람, 겸손의 사람으로 만들었음을 깨닫습니다. 


나이들어 인생 가을이 되어도 철이 안 나 진정 겸손에 이르지 못했다면 그 인생 헛 산 것입니다. 익어 있어야 할 인생 가을의 겸손이란 열매가 여전히 푸르둥둥한 풋 열매로 남아있다면 참 보기 민망할 것입니다. 사실 철이 없어진 시절이라 나이들어도 철이 안 나 익지 않은 열매 상태에 있는, 내적성장이 멈춘 이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하여 노인은 많아도 어른은 찾아보기 힘든 시절이 되었습니다.


모세의 권위는 순전히 겸손에서 기인합니다. 겸손할 때 저절로 승복이요 겸손에서 저절로 형성되는 겸손의 권위입니다. 하느님은 무지로 인한 질투심으로 모세의 권위에 도전한 미르암과 아론을 친히 징치하시며 겸손한 모세를 강력히 두호하십니다.


“너희는 내 말을 들어라. 나의 종 모세는 다르다. 그는 나의 온 집안을 충실히 맡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입과 입을 마주하여 그와 말하고, 환시나 수수께끼로 말하지 않는다. 그는 주님의 모습까지 볼 수 있다. 그런데 너희는 어찌하여 두려움도 없이 나의 종 모세를 비방하느냐?”


하느님의 모세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 얼마나 절대적인지 깨닫습니다. 이 경지의 겸손에 이른 분은 단 한 분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뿐이 없을 것입니다. 삶은 겸손의 여정입니다. 삶의 모든 체험을 겸손의 계기로 삼는 것입니다. 깨달음과 더불어 함께 가는 믿음과 겸손의 성장입니다. 오늘 복음의 제자들도 주님의 구원체험을 통해 그 믿음도 겸손도 더욱 새로워지고 깊어졌을 것입니다.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스승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일련의 주고받는 문답과 고백을 통해 제자들이 이르렀을 믿음과 겸손의 깨달음을 능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실 알고 보면 주변 모두가 주님께서 보고 배우라 선사하신 겸손의 스승들입니다. 또 한가지 주목할 바는 겸손과 연민은 함께 간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닮아갈 때 겸손과 연민의 사람이요 모세가 그 좋은 본보기입니다. 미르얌을 고쳐 달라 기도하는 모세의 모습이 겸손과 연민의 절정입니다.


-그러자 모세가 주님께 “하느님, 제발 미르얌을 고쳐 주십시오.”하고 부르짖었다(민수12,13).-


이 부분은 영어 번역이 더 박진감이 넘칩니다.

-Then Moses cried to the Lord, “Please, not this! Pray, heal her!”-

(그때 모세는 주님께 울부짖었다. “주님, 이것은 아닙니다! 기도합니다. 그녀를 고쳐주십시오!)


주님의 심판이 너무 지나치셨다고, 이것은 아니라고 주님을 강력히 제지하고 나서는 모세의 모습이 감동입니다. 미르얌에 대한 모세의 깊은 연민이 감지됩니다. 결국은 자기로 인한 질투로 초래된 미르얌의 악성 피부병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역시 모세를 통해 많이 깨닫고 배우셨을 것입니다. 하여 아브라함이나 모세를 하느님의 벗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 모두 당신의 온유와 겸손을 배우게 하시고 좋은 믿음을 선사하십니다. 주님은 오늘을 살아갈 우리 모두에게 한 말씀을 주십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마태14,2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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