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사람 -회개, 진실, 겸손, 신의, 예지-2019.3.30. 사순 제3주간 토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Mar 30, 2019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019.3.30. 사순 제3주간 토요일                                                                                 호세6,1-6 루카18,9-14

 

 

 

참 사람

-회개, 진실, 겸손, 신의, 예지-

 

 

 

공부중의 공부가, 평생 공부가 하느님 공부입니다. 참으로 공부를 사랑하여 평생 하느님 공부에 항구히 정진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여 하느님 공부에 항구하고 충실할수록 참사람의 참 내가 되겠기 때문입니다. 하여 하느님 공부에 우선적인 것이 회개입니다. 한 두 번의 회개가 아니라 끊임없는 회개의 여정을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당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오직 어제의 당신하고만 비교하라.”

 

얼마전 읽은 글귀를 잊지 못합니다. 날마다 회개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늙어가도 낡아가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회개를 통해 늘 새롭게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늘 흐르는 맑은 강되어 살라는 것입니다. 어제 방안을 정리하던중 수도원 입회전, 그러니까 정확히 39년전, 1980년 초등학교 6학년 담임시절 수첩 속표지 내용에 감동했습니다.

 

“기쁨을 심어주는 나그네”

 

란 한해의 모토가 적혀 있었고, 옛 중국 촉나라의 명재상이었던 제갈량의 후출사표에 나오는 ‘국중진췌鞠躬盡瘁,사이후이死爾後已(온몸이 부서실때까지 노력하고 죽은 뒤에야 그만둔다)’라는 글귀도 참 반가웠습니다. 중국인에게 영원한 존경의 대상인 중국의 현대 명재상이었던 주은래 수상의 좌우명이기도 했던 글귀입니다. ‘종신불퇴終身不退(몸이 다해도 물러나지 않는다)’라는 성철 큰스님의 좌우명과 흡사합니다. 이또한 회개를 통해 참으로 진실과 겸손한 삶을 추구하는 이들의 모습입니다. 이어 그해 6월30일의 글도 새삼스러웠습니다.

 

-죽은 그날까지/항상/푸른 마음으로 살았으면---

 내 마음에  경외敬畏가 없어지는 날/더 살아 무엇하리

 나무는/나이를 더해가도/잎은 언제나/새롭다

 나이먹어도 언제나 푸른 나뭇잎!-

 

지금도 여전 똑같은 마음입니다. 세월흘러 나이들어 늙어도 언제나 푸른 정신, 푸른 영혼, 푸른 영성으로 살았으면 하는 소망입니다. 바로 끊임없는 회개와 하느님 공부가 답입니다. 호세아 예언자의 가르침도 같은 맥락입니다. “자, 주님께 돌아가자. 그분께서 우리를 잡아 찢으셨지만 아픈 데를 고쳐 주시고, 우리를 치셨지만 싸매 주시리라.” 주님께 회개하여 돌아갈 때 주님의 치유와 위로요 진실과 겸손의 회복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그러니 회개와 더불어 하느님 공부에 전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을 알자. 주님을 알도록 힘쓰자. 그분의 오심은 새벽처럼 어김없다. 그분께서는 우리 비처럼, 땅을 적시는 봄비처럼 오시리라.”

 

참 신기합니다. 오늘 지금 강론쓰는 새벽, 마침 봄비가 내리니 호세아서 말씀이 더욱 은혜롭습니다. 더불어 ‘봄비’라는 예전에 써놓은 글도 생각이 납니다.

 

-마음을/촉촉이 적시는 봄비

 하늘 은총/내 딸 아이 하나 있다면

 이름은/무조건 봄비로 하겠다-

 

이어지는 호세아 예언자를 통한 주님의 탄식이 흡사 우리를 겨냥하는 듯 우리의 회개를 촉구합니다. 그대로 오늘 복음의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을 업신 여기는 바리사이같은 부류의 인간을 지칭하는 듯 합니다.

 

“에프라임아, 내가 너희를 어찌하면 좋겠느냐? 유다야, 내가 너희를 어찌하면 좋겠느냐? 너희의 신의는 아침 구름 같고, 이내 사라지고 마는 이슬같다.”

 

그대로 오늘 복음의 바리사이가 그러합니다. 참으로 자기를 모르는 무지의 사람, 진실과 겸손이 없는 허영과 교만의 사람입니다. 정말 하느님을 알고 나를 아는 공부가 전혀 없는 사람입니다. “오, 하느님!” 하고 꼿꼿이 서서 기도하지만 하느님과 대화의 기도가 아니라 일방적 독백이요 자기자랑이요 비교를 통한 남판단입니다. 말그대로 하나마나 기도입니다. 오히려 기도하며 죄를 짓습니다. 

 

반면 세리의 기도는 심금을 울리는 감동입니다. 참된 회개를 통한 진실과 겸손이 마음에 와닿습니다. 기도가 간절하고 절실하여 진실되면 짧고 순수하기 마련입니다. 말 많은 사람은 십중팔구 진정성도 없고 깊이도 없습니다. 답십리 지하철역 창에서 읽은 2017년 99세로 타계한 황금찬 시인의 ‘꽃의 말’이란 시도 생각납니다.

 

-사람아/입이 꽃처럼 고아라 
 그래야 말도/꽃처럼 하리라/사람아-

 

제가 보기에 오늘 세리가 그러합니다.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합니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회개로 겸손해진 영혼이 바칠 수 있는 단 하나의 기도는 자비송뿐임을 깨닫습니다. 하여 그리도 침묵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침묵에서 솟아난 진실하고 겸손한 말과 기도를 바라시는 하느님이십니다. 얼마전 써놓았던 글도 생각이 납니다.

 

-참으로 짜증나고 화나/견디기 힘들게 하는 것 둘

  쓰잘데 없이 생각이 없이 분별이 없이 쏟아내는 한담閑談, 잡담雜談으로

  거룩하고 아까운 시간 오염시키고 죽이는 것

  영양가없는 정제精製, 절제節制되지 않은 긴 말로

  역시 거룩하고 아까운 시간 오염시키고 죽이는 것

  정말 이 둘은/인내의 시험試驗, 인내의 시련試鍊, 인내의 수련修練이다.-

 

주님이 바라시는 것은 회개를 통한 진실과 겸손입니다. 호세아서 말씀처럼 정녕 주님이 바라시는 것은 희생제물이 아니라 신의입니다. 번제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아는 예지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세리가 이런 참 사람의 모델입니다.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간 이는 바리사이가 아니라 세리였습니다. 결론하여 주님은 우리 모두의 겸손을 촉구합니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회개한 우리 모두에게 진실과 겸손, 신의와 하느님을 아는 예지를 선사하시어 참사람이 되어 살게 하십니다. 아멘.

 

 

 

 

 


Articles

4 5 6 7 8 9 10 11 1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