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7.1.연중 제13주간 월요일                                                                               창세18,16-33 마태8,18-22

 

 

 

과연 내 삶의 순도(純度)는 몇%쯤 될까?

-신뢰, 겸손, 사랑-

 

 

 

날마다 교황님의 강론을 읽는 것도 저에게는 일과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교황님의 매일 강론뿐 아니라 기회될 때 마다 많은 연설을 대하는 데 모두가 늘 새롭고 깊은 통찰과 영성을 반영합니다. 쉽고 단순하고 깊으며 본질적이며 핵심을 잡고 있습니다. 군더더기가 없습니다. 이처럼 강론 잘 하시는 분은 처음입니다. 제 강론과 견주어 보며 항상 배우는 마음으로 읽습니다. 어느 신학자의 교황님 강론 평에도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매력은 무엇보다 그가 뛰어난 설교자라는 데에 있다. 단순히 말을 매끈히 잘해서가 아니다. 전임 교황들이 보여준 것과는 달리, 프란치스코 교황의 강론과 연설은 단순히 교리와 신학적 지식의 배경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복음에 대한 깊은 묵상과 신앙과 삶의 현실에 대한 구체적 성찰에서 나온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언어는 현학적이지 않고 추상적이지 않다. 그의 언어는 복음의 언어처럼 생활속에서 우러나오는 단순하고 정직하고 구체적인 언어다. 그리고 무엇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는 교황의 말과 행동과 태도가 일치하기 때문이다.”

 

전적으로 공감이 가는 교황님의 강론에 대한 평이었습니다. 삶이 좋아야 삶의 열매인 강론도 좋습니다. 삶이 감동적이고 아름다울 때 강론도 감동적이고 아름답습니다. 어제도 교황께서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미사를 집전하시는 것을 동영상으로 보면서, 또 후에 강론을 읽으며 교황의 신선한 강론에서 또 배웠습니다.

 

순간 떠오른 오늘 강론의 주제입니다. 과연 내 순도(純度)는 몇%쯤 될까? 어떻게 하면 교황처럼 순도 높은 강론을 할 수 있겠나 하는 것입니다. 삶의 순도, 강론의 순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선 순도의 뜻을 알아봤습니다.

 

-‘순도(純度, purity)는 물질의 화학적 순수함의 척도이다. 순도가 높은 물질은 다른 물질(불순물)의 함량이 작으며, 일반적으로 순도가 높을수록 제작 공정이 복잡해지므로 가격이 상승한다.’-

 

순도는 물질의 화학적 순수함의 척도지만 저는 이 단어를 삶에 적용시켜 봅니다. 삶의 순도는, 강론의 순도는 어느 정도이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흔히 순복음, 순두부, 순금이란 말도 듭습니다. 본래의 순수를 지칭하는 단어들입니다. 사람역시 순수한 사람을 진국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주님 역시 순도 높은 마음 깨끗한 이들에게 행복을 선언하시며 하느님을 볼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100% 순도의 삶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 홀로 100% 순도의 삶이겠고, 하느님의 벗이라 칭하는 엊그제 대축일을 지낸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의 삶 역시 순도 높은 삶일 것이고 무수한 성인들 역시 하느님은 순도 높은 그들의 삶을 아실 것입니다.

 

오늘 창세기의 아브라함은 얼마나 하느님의 전폭적 신뢰와 사랑을 받는 순도 높은 삶인지요. 하느님은 “내가 앞으로 하려는 일을 어찌 아브라함에게 숨기랴?” 되뇌이며 자기의 속내를 아브라함에게는 전부 드러내십니다. 이어 아브라함이 소돔을 위해 비는 모습에서 아브라함의 삶의 순도가 잘 드러납니다. 

 

하느님께 대한 아브라함의 깊은 신뢰와 겸손, 그리고 소돔과 고모라 백성을 살려보려는 간절한 사랑을 읽을 수 있습니다. 조마조마 마음 졸이며 주님의 반응을 탐색하는 하느님과의 대화 과정의 기도는 얼마나 흥미진진한 감동인지요. 마지막 여섯 번째 물음과 답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제가 다시 한 번 아뢴다고 주님께서는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혹시 그곳에서 열 명을 찾을 수 있다면---”

“열 명을 보아서라도 내가 파멸시키지 않겠다.”-

 

기도의 대화가 끝나자 하느님도 아브라함도 각자 제자리로 돌아갑니다. 순도 높은 의인 열명이 없어 파멸한 소돔과 고모라입니다. 과연 우리 몸담아 살고 있는 세상에는 얼마나의 순도 높은 의인들이 살고 있을까요? 우선 의인을 찾기전에, 의인이 없다 탄식하기 전에 나부터 순도 높은 의인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평범한 일상의 삶에서 순도 높은 의인의 삶을, 성인다운 삶을 살아가는 형제자매들을 자주 대하곤 합니다. 곳곳에서 순도 높은 의인의, 성인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기에 세상이 존속되는 지도 모릅니다.

 

오늘 복음의 제자들의 추종 자세에서도 우리 삶의 순도를 생각하게 됩니다. 구체적으로 주님께 대한 믿음의 순도, 희망의 순도, 사랑의 순도입니다. 예수님을 따랐던 이들이 모두 순도 높은 사람들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다음 세부류의 사람들로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가르침과 치유에 목마른 가난한 이들, 그리고 오늘 복음의 율사처럼 예수님의 행적에 놀란 이들이 호기심이 발동해 따른 경우도 있을 것이고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른 참 순도 높은 제자들도 있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제안에 어떻게 응답했는지 결과는 알 수 없습니다. 바로 오늘 복음을 듣는 우리가 듣고 생각해야 하는 말씀입니다. 바로 우리 삶의 순도를 헤아려 보게 하는 말씀입니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오로지 주님께만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두고 이런 온전한 무소유의 순도 높은 삶을 살 수 있겠는가 우리 각자에게 묻는 것입니다. 내 삶의 순도를 그대로 폭로하는 말씀입니다.

 

“너는 나를 따라라.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어라.”

 

죽은 이들은 살아있으나 실상 영적으로 죽어있는 참 순도 낮은 이들에게 맡기고 주님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죽은 이들이 뜻하는 것은 ‘하느님 나라의 길을 찾지 못한 이들, 즉 하느님 나라의 도래와 요구를 모르는 무지의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에 해당되는 이들은 얼마나 많겠는지요. 바로 생각없이, 영혼없이 욕망따라 살아가는 참으로 삶의 순도 낮은 무사유의 사람들입니다. 이런 이들에게 기생하는 죄악입니다. 죄악이 무엇인지도 분별하지 못하는 무지의 사람들입니다.

 

타고난 삶의 순도는 없습니다. 삶의 순도는 고정불변의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나를 따르라.”는 말씀이 답입니다. 시종일관, 초지일관, 예수님을 따라 가며 예수님을 닮아가는 예닮의 여정에 항구하고 충실할 때 삶의 순도, 즉 믿음의 순도, 희망의 순도, 사랑의 순도도 높아져 주님을 닮은 진선미眞善美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과연 내 삶의 순도는 몇%쯤 될까요? 주님 앞에 갈 때 ‘몇 %’ 순도의 삶이겠는지요? 세월 흘러 나이들어 심신은 노쇠해 가도 삶의 순도는, 영혼의 순도는 날로 높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날로 순도 높은 삶을 살게 하십니다. 끊임없는 주님 찬미와 감사의 삶과 기도가 순도 높은 삶을 보장해 줍니다.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내 안의 모든 것도 거룩하신 그 이름 찬미하여라.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그분의 온갖 은혜 하나도 잊지 마라.”(시편103,1-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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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안젤로 2019.07.01 06:05
    주님, 오늘도 저희 삶속에서 주님을 향한 끝없는 믿음으로 주님을 닮아가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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