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여정 -마음의 순수와 지혜-2020.8.4.화요일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1786-1859) 기념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Aug 0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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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8.4.화요일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1786-1859) 기념일 

예레30,1-2.12-15.18-22 마태15,1-2.10-14

 

 

깨달음의 여정

-마음의 순수와 지혜-

 

 

오랜만의 장마요 폭우입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힘차게 흐르는 시냇물 소리에 모습입니다. 시냇물에는 물오리들이 유유히 헤엄을 치며 먹이를 찾고 있었습니다. 조용하다 싶어 피정집들이 비어있는가 싶었는데 가득 찼다 합니다. 주님을 찾아 외딴곳의 수도원 안식처를 찾아 온 형제자매들입니다. 어제 써놓은 글입니다.

 

-“오랜만에 우렁찬 시냇물 찬미 노래들으니  샘솟는 의욕 살 것 같다

자주는 아니라도 가끔은 댓줄기 폭우가 있었으면 좋겠다

좔좔, 줄줄, 졸졸 좌우간 끊어지지 않고

계속 찬미 노래 부르며 흐르는 시냇물 인생이고 싶다”-

 

타고난 마음의 순수는 없습니다. 정말 목표해야 할 바 마음의 순수입니다. 사랑할 때 마음의 순수입니다. 바로 끊임없이 바치는 사랑의 찬미기도가 마음을 순수하게 합니다. 웅덩이에 고인 썩은 물이 아니라 끊임없는 사랑의 찬미로 흐를 때 순수한 마음입니다. 깨달음의 여정과 함께 가는 마음의 순수입니다. 

 

정말 순수한 마음은 만인의 공통언어임을 깨닫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순수한 마음은 그대로 통합니다. 산티아고 순례시 말은 통하지 않아도 순례자들의 순수한 마음이 있었기에 함께 걸어도 머물러도 참 마음 편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아주 예전 미국 수도원에 잠시 머물렀을 때도 순수한 마음이 이심전심 통하니 어느 노수도사제와의 재미난 일화도 생각납니다. 

 

어느날 노 수도사제에게 악수를 청하며 손을 내미니 손이 차다고 사양할 때 악수하며 나눈 제 말마디입니다. 영어에는 우리말처럼 존대어가 없기 때문에 수직적 예의를 지키면서도 수평적 관계가 가능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당신 손은 찹니다. 그러나 당신 마음은 아주 따뜻합니다(Your hands are cold, but your heart is very warm)”-

 

이 유우머에 미국 수도원의 노수도사제는 얼마나 기뻐하던지요. 나이에 상관없이 순수한 마음을 대할 때면 이심전심 즉시 친교가 이루어지기 마련입니다. 어제 9시경 기도때의 후렴도 생각납니다.

 

“어린이와 같이 되라. 그렇지 않고는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도다.”

 

주님께서 지극히 혐오했던 위선자들이요 지극히 사랑했던 마음이 순수한 자들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 이해할 때 마음의 순수입니다. 끊임없는 깨달음의 여정을 통한 무지로부터의 해방이요 마음의 순수와 자유임을 깨닫습니다.

 

“너희는 듣고 깨달아라.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지 않는다. 오히려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마음에 있는 것은 언행으로 표출되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우선적으로 추구할 바 마음의 순수입니다. 참되고 좋고 아름다운 진선미의 순수한 마음에서 진선미의 언행도 나옵니다. 개그 우먼 박미선의 인터뷰 대목도 생각납니다.

 

-“똑똑하고 솔직한 여성 캐릭터는 밉상으로 찍히기 쉽습니다. ‘선’을 지키는 비결이 있습니까?”-

“상대방의 진짜 아픈 곳은 건드리지 않습니다. 농담으로 던진 말이 칼이 될 수 있거든요. 아무 생각 없이 던진 한마디가 상대방에게는 평생 상처로 남는 경우도 있습니다. 일부러 선을 지키려고 애쓰는 것은 아니지만, 말을 할 때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는 회로가 자연스럽게 돌아가는 것 같아요.”

 

이 또한 순수한 마음의 발로입니다. 사랑할 때 마음의 순수요 마음의 순수에서 분별의 지혜도 나오기 때문입니다. 머리가 아닌 가슴의 사랑에서 나오는 지혜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논쟁 대상은 무지의 바리사이들입니다. 바리사이들이 상징하는 바 무지에 눈먼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내버려 두어라. 그들은 눈먼 이들의 눈먼 인도자다. 눈먼이가 눈먼 이를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진다.”

 

대부분이 눈먼 무지의 사람들 같습니다. 참 쉬운 것이 남 판단하는 것이요 참 힘든 것이 자기를 아는 일입니다. 자기를 알 때 겸손과 지혜요, 끊임없는 깨달음의 여정을 통해 마음이 순수해질 때 자기를 아는 겸손과 지혜입니다. 깨달음의 여정은 그대로 회개의 여정과 통합니다. 참으로 깨달음도 회개도 은총입니다. 하느님이 마음을 열어 주셔야 깨달음이요 회개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1독서 예레미야서도 우리를 깨달음의 회개로 이끕니다. 심판과 더불어 구원의 희망의 메시지가 우리를 회개의 열망으로 이끕니다. 

 

“그들의 자손들은 옛날처럼 되고, 그 공동체는 내 앞에서 굳건해지며, 그들을 억압하는 자들은 내가 모두 벌하리라.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그들의 지도자가 되고, 그들 가운데에서 그들의 통치자가 나오리라. 내가 그를 가까이 오도록 하여 나에게 다가 오게 하리라.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느님이 되리라.”

 

바로 우리 교회공동체를 통해 그대로 실현된 예언입니다. 우리의 지도자이자 통치자이신 파스카의 예수님 덕분에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끊임없는 은총의 깨달음과 회개를 통해 순수와 지혜, 온유와 겸손의 사랑을 지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깨달음의 회개를 통해 주님을 닮아갈 때 사랑의 성장과 성숙이요 여기 사랑에서 저절로 샘솟는 순수와 지혜, 온유와 겸손입니다. 바로 오늘 기념하는 교구 본당 사제들의 수호성인인 성 요한 마리 비안에 사제가 그 모범입니다. 잠시 평생 아르스의 본당신부로 살았던 성인의 초인적 사목적 사랑을 소개합니다. 73세에 선종하셨으니 저와 비슷한 나이입니다.

 

“매일 11시에 미사와 강론후 오랜 시간 고백성사를 주었다. 하루 12시간 선종전까지 그랬다. 매해 20000명이 방문했고 어느 때는 하루 16시간 동안 고백성사를 주었다. 성인은 이들의 죄에 대해 몹시 아파했고 점점 인간의 약함에 대해 이해심이 깊어졌고 연민의 마음 또한 한없이 깊어졌다. 성인은 하느님의 사랑과 교회 전례 기도의 힘을 더욱 더 믿게 되었다.”

 

참으로 순수하고 지혜롭고 온유하고 겸손했으며 항구하고 충실했던 성 요한 마리 비안네 사제였습니다. 우리가 평생 매일 규칙적으로 끊임없이 바치는 교회의 공적 공동 전례기도인 사랑의 찬미와 감사의 시편성무일도와 매일미사가 얼마나 우리의 깨달음과 회개의 여정에 결정적 도움을 주는 지 깨닫게 됩니다. 깨달음과 깨어있음, 깨끗한 마음이 하나로 이어져 있음을 봅니다. 

 

요 며칠간 참 많이도 불렀던 ‘푸른잔디’ 동요였고, 순수한 마음의 함양을 위해 오늘은 ‘파란마음, 하얀 마음’이란 동요를 불러볼까 합니다. 참 곱고 아름다운 가사요 곡입니다.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여름엔 여름엔 파랄거여요

산도 들도 나무도 파란 잎으로 파랗게 파랗게 덮임속에서

파아란 하늘 보고 자라니까요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겨울엔 겨울엔 하얄거에요

산도 들도 지붕도 하얀 눈으로 하얗게 하얗게 덮임속에서 

깨끗한 마음으로 자라니까요“-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를 무지의 눈을 밝혀 주시어 순수와 지혜, 온유와 겸손의 사랑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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