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한 사람에서 자비로운 사람이 되는 길 -기도, 회개, 실천-2021.3.1.사순 제2주간 월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Mar 0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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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3.1.사순 제2주간 월요일                                                      다니9,4ㄴ-10 루카6,36-38

 

 

 

무지한 사람에서 자비로운 사람이 되는 길

-기도, 회개, 실천-

 

 

 

메마른 대지를 촉촉이 적시는 봄비 은총으로 시작되는 3월 첫날입니다. 오늘은 3월 첫날 ‘삼일절’이자 4월4일 주님 부활 대축일을 앞둔 본격적 복된 영적훈련의 ‘파스카의 달’이자 ‘성 요셉 성월’입니다. 본기도중 ‘영혼의 건강을 위하여 육신의 극기를 명하셨으니’라는 대목도 참 적절합니다. 육신의 극기와 직결된 영혼의 건강임을 깨닫습니다. 1년 영적 농사의 성패가 이 한달에 달려 있습니다. 

 

참으로 주님 부활을 앞당겨 파스카의 신비, 파스카의 기쁨을 살아야 할 마음 설레게 하는 3월의 봄날들입니다. 사부 성 베네딕도는 우울하고 어둡게가 아닌 기쁘고 밝게 지내야 할 사순절임을 이미 규칙서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각자는 성령의 기쁨으로 자기에게 정해진 분량 이상의 어떤 것을 하느님께 자발적으로 바칠 것이다. 즉, 자기 육체에 음식과 음료와 잠과 말과 농담을 줄이고 영적 갈망의 기쁨으로 거룩한 부활 축일을 기다릴 것이다.”(성규49,6-7).

 

규칙서에서 기쁨이란 말마디가 오직 ‘제49장 사순절을 지킴에 대하여’라는 장에만 단 두 번 나옵니다. 참으로 파스카의 기쁨을 살아야 할 3월 봄철임을 깨닫습니다. 어제 맨 먼저 영춘화迎春花, 하느님의 봄꽃 선물이 참 반갑고 기뻤습니다. 영춘迎春花, 봄꽃 어감도 말 뜻도 곱고 깊습니다. 겨울에서 봄맞이 영춘화 봄꽃 그대로 ‘파스카의 꽃’이라 명명해도 좋겠습니다. 두분과 주고 받은 메시지입니다.

 

-“영춘화 봄사랑 선물입니다.”

“영춘화가 피었으니 봄이 왔군요. 아, 세월은 어김없이 지나가고 있으니 오늘 그동안 잡고 있던 2월을 또 놓치고 있네요!”

“영춘화! 정말 봄사랑입니다. 노란 영춘화가 가슴을 설레게 합니다. 주님을 바라보는 설레임이랄까, 봄날같은 삶으로, 희망으로---”-

 

은총의 사순시기, 하루하루 놓치지 말고 하루의 선물을 보람있고 기쁘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사람이 좋으면 축복은 저절로 따릅니다. 사람이 희망입니다. 사람이 참 보물입니다. 사람이 참 선물입니다. 아무리 환경 좋고 건물 좋고 전통 좋아도 사람이 없으면 무용지물입니다. 특히 수도형제는 더 그러합니다. 아무리 거금을 주고도 수도자는 스카웃 해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새 지원자 정보영 사도 요한 형제를 공동체에 선물로 보내 주셨으니 참 감사하고 기쁩니다. 전번 예결산 회의를 하면서 수도자 하나하나가 얼마나 수도공동체의 기초와 기반을 튼튼히 하는 보물인지 절감했습니다. 사람이 물음이라면 하느님은 답입니다. 

 

하느님 없이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길이 없습니다. 회개도 겸손도 불가능합니다. 참으로 사람이 하느님을 따르면 사람도 돈도 온갖 축복도 저절로 뒤따릅니다. 결코 걱정하거나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사람이라 다 사람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찾아 하느님을 닮아갈 때 비로소 참 사람입니다. 무지한 사람에게서 자비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참 사람이 되는 것이 우리의 평생과제입니다. 

 

인간의 고질적 마음의 병인 무지에 대한 궁극의 처방도 자비뿐임을 깨닫습니다. 자비롭고 너그럽고 지혜로운 하느님을 닮아가는 길뿐입니다. 사순시기 3월 첫날의 복음이 흡사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는 ‘3월의 말씀’처럼 생각됩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바다같이 넓고 깊은 자비로운 아버지처럼 자비로운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지난 토요일 마태복음의 아버지같이 완전한 사람이 되라는 말씀과도 일맥상통합니다. 무지한 사람에서 완전한 사람, 자비로운 사람, 너그러운 사람, 거룩한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지난 토요일 강론중 일부가 생각납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예수님을 닮아갈수록 거룩함holiness이자 온전함wholeness이요 영어 발음도 같습니다. 바로 아버지를 닮은 ‘완전함perfection’은 그대로 ‘거룩함’과 ‘온전함’과 ‘자비로움’은 하나로 통함을 봅니다. 지난 밤 정월 보름달처럼 원숙, 원만圓滿한 둥근 모습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을 닮을수록 둥근 마음, 둥근 삶이 됨을 깨닫습니다. 둥근 해, 둥근 달, 가을철 둥글게 익은 원숙圓熟한 열매들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참으로 이렇게 무지에서 벗어나 너그럽고 자비롭고 지혜로운 노년의 둥근 인생이라면 얼마나 멋있고 아름다울런지요!”

 

우리 하느님만을 찾는 수도승들의 궁극의 꿈이자 목표이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하느님을 닮아갈 수 있을런지요? 이의 결정적 롤모델이 가엾이 여기는, 불쌍히 여기는, 측은히 여기는 자비로운 사랑의 예수님이십니다. 바로 오늘 말씀이 답을 줍니다. 기도와 회개, 그리고 자비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삶이자 사랑입니다. 하느님과 생명과 사랑의 소통입니다. 기도없는 인간은 애당초 성립되지 않습니다. 기도할수록 자비로운 하느님을 닮아 참 사람의 내가 됩니다. 제1독서 다니엘서는 매년 사순시기 1000년동안 계속된 말씀입니다. 매해 들을 때 마다 감동입니다. 

 

그대로 기도와 동시적으로 이뤄지는 회개가 우리의 공동전례 기도를 닮았습니다. 우리의 평생 끊임없이 하루하루 바치는 시편과 미사의 공동전례 기도가 ‘회개의 일상화’를 가능하게 함을 깨닫습니다. 회개의 일상화를 가능하게 하는 ‘회개의 시스템’같은 일과표가 고맙습니다. 다니엘의 감동적 기도 일부를 그대로 소개합니다.

 

“아, 주님! 위대하시고 경외로우신 하느님,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 이들에게 계약과 자애를 지키시는 분! 저희는 죄를 짓고 불의를 저질렀으며 악을 행하고 당신께 거역하였습니다.---주님, 당신께서는 의로우십니다. 그러나 저희는 모두 오늘 이처럼 얼굴에 부끄러움만 가득합니다. 저희가 당신께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주 저희 하느님께서는 자비하시고 용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저희는 주님께 거역하였습니다.”

 

참으로 이런 진정성 가득한 겸손과 경배, 고백과 탄원의 회개의 기도가 무지의 병을 치유하여 자비하신 주님을 닮아가게 합니다. 자비롭고 너그럽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유일한 길은 기도와 회개뿐임을 깨닫습니다. 전환과 개혁, 변화의 회개입니다. 여기에 반드시 추가되어야 할 하나의 결정적 요소가 자비의 실천이요 오늘 복음이 가르쳐줍니다. 아주 간단한 처방이나 늘 걸려 넘어지는 자비의 수행입니다.

 

“1.남을 심판하지 마라. 2.남을 단죄하지 마라. 3.용서하여라. 4.주어라.”

 

넷입니다. 최종적 심판이나 단죄는 일단 무조건 보류하고, 결론내리지 말고 활짝 열어 놓으라는 말씀입니다. 경솔한 심판이나 단죄의 죄로 뒤늦게 후회하는 경우는 얼마나 많습니까! 비상한 자비행이 아니라 심판이나 단죄를 하지 않는, 용서하는, 소소한 일상의 평범한 자비행이요 이들이 완덕에 도달한 성인입니다. 

 

마지막 ‘주어라’는 대목도 너무 중요합니다. 인색하지 말고 돈과 물질의 재물을 나누는 자선이 자비행의 결정적 요소라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렇게 살 때 저절로 축복입니다. 우리는 심판받지 않고, 단죄받지 않고, 용서받고, 하느님은 또 넘치도록 후하게 우리 품에 담아 주십니다. 

 

무지에서 벗어나 자비로운 사람이 되는 길은 오직 기도와 회개, 자비의 실천뿐이요 우리 모두의 평생과제입니다. 말그대로 기도의 여정, 회개의 여정, 자비의 여정을 살아가는 우리들이요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이런 성공적 인생 여정을 살게 하십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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