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2. 연중 제1주간 금요일                                                                               사무상8,4-7.10-22ㄱ 마르2,1-12



신정神政이냐 왕정王政이냐?

-제3의 길; 하느님의 나라-



어제 어느 형제와 카톡을 통해 나눈 평범한 대화에 감동했습니다. 15년 이상 하루도 빠짐없이 제 강론을 인터넷에 퍼 나르는 봉사를 하는 ‘말씀봉사자’ 형제입니다. 저녁강론중 정정할 곳이 발생해 연락드렸을 때 답신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식사중인데 끝나고 해놓겠습니다.”

“예, 식사 잘 하세요.”


‘식사중’이란 평범한 말마디에 감동했습니다. 이렇게 모두가 식구食口와 함께 밥을 나누는 기본적 행복이 보장되어야 비로소 구체적 하느님 나라의 실현이구나 하는 깨달음이 깊이 마음에 새겨졌습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몸을 함께 나누는 이 거룩한 미사시간이 하느님 나라의 실현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실현에 결정적 공헌을 하는 매일의 이 거룩한 성체성사시간입니다. 오늘 제1독서 사무엘상권이 매우 중요한 이슈를 다루고 있습니다. ‘신정이냐 왕정이냐?’의 갈림길에 있습니다. 이에 대한 답은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에서 주십니다.


필리스티아인들에 대패한 기억도 있고 사무엘 판관이후가 걱정된 백성들이 신정에서 왕정을 원한 것입니다. 사무엘이 재차 왕정의 폐단을 백성들에게 소상히 밝혀 줍니다.


“이것이 여러분을 다스릴 임금의 권한이오. 그는 여러분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자기 병거와 말 다루는 일을 시키고, 병거 앞에서 달리게 할 것이오. 천인대장이나 오십인 대장으로 삼기도 하고, 그의 밭을 갈고 수확하게 할 것이며, 무기와 병거를 만들게 할 것이오.----여러분의 양떼에서도 십일조를 거두어 갈 것이며, 여러분마저 그의 종이 될 것이오. 그제야 여러분은 스스로 뽑은 임금 때문에 울부짖겠지만, 그때에 주님께서는 응답하지 않을 것이오.”


사무엘상8,11-18절 까지 구구절절 나열되는 왕정의 폐단은 한 둘이 아닙니다. 결국은 백성의 노예화로 이끄는 왕정의 폐단입니다. 인류 역사상은 물론 작금도 무수히 입증되는 왕정이나 국가권력의 횡포가 아닙니까? 다윗이나 세종대왕 같은 성군은 극소수이고 대부분은 부도덕하고 무능하거나 사악한 지도자들입니다. 


참 판단하기 어려운 것이 하느님이 임금이 되어 다스리는 신정이 이상적입니다만 현실은 왕정이라는 것입니다. 현실주의의 입장에서 볼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처지는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법없어도 살 사람’이란 말도 있지만 약육강식弱肉强食의 현실에 ‘법없으면 살 수 없는 착하고 약한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사무엘의 설득에도 백성들은 요지부동 막무가내 완강합니다.


“상관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임금이 꼭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다른 모든 민족들처럼, 임금이 우리를 통치하고 우리 앞에 나서서 전쟁을 이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마치 명분론자와 실용주의자, 이상주의자와 현실주의자간의 대결같습니다. 이상은 ‘하느님’이지만 현실은 눈에 보이는 지도자 나라의 ‘임금’입니다. 이상은 ‘하느님’이지만 현실에서는 ‘돈’입니다. 자식이기는 부모없다고 사무엘의 최종 보고에 하느님도 마침내 백성이 원하는 대로 왕정을 허락하십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예수님께서 신정이냐 왕정이냐의 갈림길에서 제3의 길을 제시하십니다. 바로 하느님의 나라, 이것이 정답입니다. 왕정이나 국가제도속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제3의 길이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예수님의 평생 삶이 하느님 나라 비전의 실현이 아닙니까? 저에겐 오늘 복음도 미사장면을 압축한 듯 보입니다.


“문앞까지 빈자리가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음 말씀을 전하셨다.”


미사중 말씀전례를 연상케 합니다. 하느님 나라는 멀리 있지 않고 이렇게 오늘 지금 여기서 기도하며 하느님의 말씀을 귀기울려 듣고 실행할 때 실현됩니다. 이런 하느님 나라 백성의 모범이 우리 수도자들이고 오늘 복음의 중풍병자를 치유로 이끈 믿음 돈독한 그의 동료들입니다. 이런 믿음의 공동체가 바로 제3의 길 하느님 나라의 실현입니다. 저는 감히 기도와 노동이 균형을 이룬 수도원 일과표를 '하느님 나라의 시스템'이라 정의하고 싶습니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동료들의 믿음을 보신 주님의 응답입니다. 몸과 마음은 하나입니다. 마음의 병인 죄를 용서받아야 몸도 치유됩니다. 하여 미사가 시작되면서 참회예식이 있고 이어 자비송이 뒤따릅니다. 죄를 용서받을 때 자연스럽게 뒤따르는 육신의 치유은총입니다. 죄를 용서함으로 영혼을 치유하신 주님의 최종 전인적 치유선언입니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치유받은 중풍병자와 그의 믿음 좋은 동료들이 바로 하느님 나라 공동체입니다. 영육의 치유의 구원이 일어나는 성체성사의 그 자리가 바로 하느님 나라의 실현입니다. 오늘 복음 역시 그대로 미사장면을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치유를 목격한 회중들은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며 말합니다.


“이런 일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하느님을 찬양하며 미사를 봉헌하는 우리들의 치유 체험의 고백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당신 나라의 일꾼이 되어 제3의 길 하느님 나라를 실현하며 살게 하십니다. 화답송 시편 첫 구절이 참 좋습니다.


“행복하여라, 축제의 기쁨을 아는 백성! 그들은 당신 얼굴 그 빛 속을 걷나이다.”(시편89,16)


매일의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하느님 나라 축제의 기쁨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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