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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7.연중 제30주일                                 집회35,15ㄴ-17.20-22ㄴ 2티모4,6-8.16-18 루카18,9-14

 

 

 

참 아름다운 삶

-사랑하라, 회개하라, 겸손하라-

 

 

 

오늘 미사에 참석한 분들은 참 행복한 분들입니다. 일년중 가장 아름다운 기도의 계절 가을에, 가장 아름다운 하느님의 집인 수도원에, 가장 아름다운 미사 전례중에, 가장 아름다우신 분 주님을 만나, 가장 아름다운 분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여 오늘 강론 제목은 참 아름다운 삶으로 정했습니다. 순간 개신교 형제들이 좋아하는 성가, ‘참 아름다워라’는 곡과 더불어 우리 가톨릭 성가 ‘오 아름다워라’ 성가 402장도 생각났습니다.

 

-“참 아름다워라/주님의 세계는/저 솔로몬의 옷보다 더 고운 백합화

주 찬송하는 듯/저 맑은 새소리/내 아버지의 지으신/그 솜씨 깊도다”-

 

-“오 아름다워라/찬란한 세상/주님이 지었네/오 아름다워라 찬란한 세상

주님과 함께 살아가리라/온 세상 만민이여/주를 찬양하라

그분의 위대하심을/높이 찬양하라”-

 

하느님의 사랑은 세상 피조물의 아름다움으로 표현되기 마련입니다. 인간 세상은 어지럽고 혼란해도 하느님의 한결같은 사랑은 변함없는 아름다움으로 온누리에 환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보이는 신구약성경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자연도 그대로 하느님의 살아 있는 성경책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여 세상을 사랑할 때 아름다운 세상이요 인생을 사랑할 때 아름다운 인생입니다. 하느님 없이는 사랑도, 아름다움도 없습니다. 사랑과 아름다움의 체험은 그대로 하느님 체험입니다.

 

“사람은 못되더라도 괴물은 되지 말라.”

 

어디선가 읽은 구절도 생각납니다. 참으로 사람답게, 하느님의 자녀답게, 참 아름다운 품위있는 삶은 누구나의 소망일 것입니다. 참 사람되기 힘든 세상입니다. 제대로 미치면 성인이지만 잘못 미치면 폐인도 괴물도 광인도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지위, 명예, 권력에 상관 없이 참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평생공부보다 더 중요한 공부는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참 아름다운 삶을, 하느님의 품위 있는 자녀다운 삶을 살 수 있겠는지요? 오늘 말씀을 바탕으로 세 측면에 걸쳐 답을 찾아냈습니다. '사랑하라', '회개하라', '겸손하라'입니다. 단적으로 말해 하느님 없이는 회개도 겸손도 없다는 것이 제 지론입니다. 회개와 겸손의 뿌리에 하느님과의 만남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첫째, “사랑하라!”입니다.

우선적으로 하느님을,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늘 평생 매일 만나야 하는 하느님이요 평생 공부해야 하는 하느님입니다. 참으로 하느님 공부에 늘 초보자인 우리들입니다. 이런 하느님 공부에 기본적인 것이 사랑과 기도입니다. 

 

기도는 사랑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사랑할 때 기도하게 되고 기도할 때 살아계신 하느님을 만납니다. 하느님 사랑은 저절로 찬미와 감사로 표현되기 마련입니다. 오늘 화답송 시편 첫 구절 역시 아름다운 하느님 찬미입니다.

 

“나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니, 내 입에 늘 찬양이 있으리라.

내 영혼 주님을 자랑하리니, 가난한 이는 듣고 기뻐하여라.”

 

하느님 사랑의 찬미요 찬미의 아름다움, 찬미의 기쁨입니다. 이런 하느님 찬미가 우리 삶을 아름답게 기쁘게 합니다. 찬미의 기쁨으로 살아가는 우리 수도자들이요, 찬미의 기쁨, 찬미의 행복을 능가하는 것은 없습니다. 

 

저에게 바오로 사도의 고백도 그대로 하느님 찬미의 고백처럼 들립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에 항구했을 때 이런 아름다운 고별사의 고백입니다. 얼마나 장엄하고 품위 있는 고백인지요! 티모테오뿐 아니라 미사에 참석한 우리 모두를 향한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나는 이미 하느님께 올리는 포도주로 바쳐지고 있습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가 다가온 것입니다. 나는 훌륭하게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 의로운 심판관이신 주님께서 나에게 주실 것입니다. 나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나타나시기를 애타게 기다린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항구히 열렬히 사랑했기에 ‘주님의 전사’로 영적 승리의 삶을 살았던 바오로 사도입니다. 이어지는 바오로 사도의 고백도 얼마나 주님과 일치의 삶을 살았는가에 대한 생생한 증언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굳세게 해 주셨습니다.---나는 사자에 입에서 구출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앞으로도 나를 모든 악행에서 구출하시고, 하늘에 있는 당신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무엇보다 하느님 사랑이 우선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께 끊임없이 기도를 바쳐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가난한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부당한 대우를 받은 사람의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고아의 간청을 무시하지 않으시고 과부가 쏟아 놓는 하소연을 들어 주십니다. 

 

둘째,“회개하라!”입니다.

하느님을 만날 때 저절로 회개입니다. 만남과 동시에 이뤄지는 회개요 참 나의 발견입니다. 무지로부터의 해방도 회개뿐입니다. 하느님을 모르면 나도 모릅니다. 회개는 ‘하느님 얼굴의 거울’에, ‘예수님 얼굴의 거울’에 나를 비춰보는 것과 같습니다.

 

하루에도 얼마나 많이 들여다 보는 거울의 내 얼굴인지요! 육신의 얼굴을 바라보듯 내 영혼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끊임없는 사랑의 회개를 통해 예수님을 닮아가며 참 아름다운 삶이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회개없이 무지에서 벗어날 길은 없습니다. 사람이 될 길도 없습니다. 정말 하느님을 모르고 나를 모르는 무지의 병보다 치명적인 것은 없습니다. 무지의 대한 유일한 처방제는 회개뿐입니다. 참으로 회개도 은총임을 깨닫습니다. 정말 회개를 잘하고 고백성사 잘 볼 수 있는 은총을 청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복음의 바리사이가 바로 무지한 사람의 전형입니다.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바리사이입니다. 누구보다 자기를 잘 아는 사람같은데 전혀 자기를 모르는 무지의 사람입니다. 모두가 자기를 아는 데 자기만 자기를 모르는 바리사이입니다. 하느님을 모르고 자기를 모릅니다. 

 

하느님을 부르지만 하느님과 전혀 무관한 기도입니다. 이건 기도가 아니라 자기자랑의 독백입니다. 하느님과 전혀 무관한, 하느님이 전혀 필요없는  자기도취, 자기착각의 독백입니다. 바리사이는 꼿꼿히 서서 혼잣말로 기도합니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남 판단함으로 죄짓는 기도요 자기 자랑의 기도입니다. 연민의 사랑이 추호도 없습니다. 저는 이 기도문을 읽으면서 바리사이가 구제불능의 ‘괴물’처럼 생각되었습니다. 영적 엘리트주의에 도취되어 있는 신앙귀족처럼 생각되었습니다. 

 

말그대로 하나마나 기도입니다. 전혀 하느님을 모르고 자기를 모르는 무지의 사람, 바리사이입니다. 겸손이라곤 추호도 느낄 수 없습니다. 이 또한 우리에게 반면교사가 됩니다. 우리 또한 이런 기도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겸손하라!”

하느님을 사랑하여 참으로 만날 때 저절로 회개를 통한 자기발견의 자기인식이요 겸손과 지혜입니다. 그러니 하느님 없이는 애당초 회개도, 겸손도, 지혜도 없습니다. 도대체 자기를 비춰볼 수 있는 영혼의 거울 하느님이, 예수님이 없는데 어디다 자기를 비춰볼 수 있겠는지요! 하여 하느님 없이는 참으로 무지의 괴물이, 광신, 광란, 광분의 괴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겸손할 때 참 매력적이고 아름답습니다. 겸손은 중용이자 참 내 얼굴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치우치지 않고 지적하는 일도, 판단하는 일도, 자랑하는 일도, 과장하는 일도 없습니다. 겸손은 영성의 잣대입니다. 정말 하느님을 만나 회개했는지 진위는 겸손을 통해 드러납니다. 겸손한 사랑, 겸손한 믿음, 겸손은 성덕의 잣대입니다. 참으로 회개 은총이 예수님을 닮아 온유와 겸손, 지혜와 자비의 사람으로 변모시켜 줍니다.

 

오늘 세리의 기도가 감동적입니다. 바리사이와는 너무 대조적입니다. 멀찍이 서서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합니다. 그대로 미사가 시작되면서 바치는 우리의 참회고백에 이은 자비송입니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참으로 하느님을 알고 자기를 아는 겸손한 세리입니다. 참으로 절실하고 간절할 때 기도는 짧고 순수합니다. 주보에 나온 신달자 엘리사벳 시인의 글 주제도 간절함이었고 이렇게 고백하고 있었습니다.

 

“부족한 저는 단 한마디 ‘간절함’으로 살려 합니다. ‘간절함’이 제 자산의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바리사이에게는 결정적인 이 간절함이 없는 반면, 세리에게는 이 간절함이 가슴 먹먹하게 하는 감동을 줍니다. 참으로 주님이 도와 주실 수 있도록 자기를 텅 비운 겸손의 세리의 기도입니다. 이래야 텅 빈 충만의 사랑이 될 수 있습니다. 

 

바리사이의 기도가 ‘텅 빈 허무’와 같다면 반대로 세리의 기도는 ‘텅 빈 충만’의 사랑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최종 판결 말씀이 우리에게 평생 화두가 됩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겸손하라는 권고입니다. 자기 행동으로 의로움을 획득하는 게 아니라 겸손할 때 하느님이 부여하시는 의로움의 은혜입니다. 겸손한 이의 기도는 구름을 거쳐서 그분께 도달하기까지 위로를 마다합니다. 그는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살펴 주실 때까지 그만두지 않으니 그분께서 의로운 자들의 송사를 듣고 판결해 주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집회서의 말씀은 그대로 오늘 복음의 세리에 해당됩니다.

 

참 아름다운 행복한 삶을 살고 싶습니까? 하느님의 자녀다운 품위 있는, 매력적인 삶을 살고 싶습니까?

 

1.하느님과 이웃을 끊임없이 사랑하십시오. 저절로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2.끊임없이 회개하십시오. 무지에 대한 유일한 처방은 회개 하나뿐입니다.

3.끊임없이 겸손하십시오. 회개와 더불어 겸손의 선물입니다. 참으로 매력적인 사람이 겸손한 사람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사랑과 회개, 겸손의 삶에 항구함으로 날로 당신을 닮게 하십니다. 아멘.

 

  • ?
    고안젤로 2019.10.27 09:41
    사랑하는 주님, 주님 주신
    거룩한 이 시간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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