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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5.14. 부활 제5주일                                                                           사도6,1-7 1베드2,4-9 요한14,1-12



주님의 집

-지금 여기가 하늘나라이자 주님의 집입니다-



주님의 집, 아버지의 집이란 말만 들어도 기분이 좋고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믿는 이들에게 죽음은 無에로의 환원이 아니라 아버지의 집으로의 귀가歸家입니다. 궁극의 아버지의 집, 주님의 집에서의 삶은 죽음이후 천상에서 펼쳐지겠지만 이미 지금 여기서 시작된 아버지의 집, 주님의 집에서의 삶입니다.눈만 열리면 오늘 지금 여기 내 몸담고 있는 교회가 수도원이 내집이 아버지의 집, 주님의 집입니다.


그러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하늘나라의 행복을, 아버지의 집에서의 행복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지금 여기서 못살면 죽어서도 못삽니다. 3년전 안식년때 800km, 2000리 산티아고 대성전, 주님의 집을 향했던 순례여정을 잊지 못합니다. 정말 주님의 집인 산티아고 대성전에 가까워질수록 힘이 샘솟듯 발걸음도 빨라졌습니다. 2000리 순례여정중 가장 많이 화살기도로 바쳤던 시편 121장1절, “주님의 집에 가자 할제, 나는 몹시 기뻣노라.”의 성구입니다.


매년 마지막 주일 성가정 축일 미사때마다 흥겹게 불렀던 시편 화답송 후렴 “주님의 집에 사는 자 얼마나 행복되리.”도 생각납니다. 전통적으로 여기 수도원은 아버지의 집이라, 주님의 집이라 불려집니다. 지금 여러분은 본향집과도 같은 아버지의 집, 주님의 집인 수도원에서 거룩한 미사를 봉헌합니다. 미사를 통해 살아계신 주님을 만납니다.


그러나 눈만 열리면 언제 어디나 내몸담아 살고 있는 하늘나라요 아버지의 집이요 주님의 집입니다. 참 아름다운 신록의 생명 빛나는, 신록의 향기 그윽한, 계속되는 알렐루야 부활축제시기이자 성모성월 5월입니다. 꽃도 가장 많은 시절이요 새노래 소리도 가장 많이 들리는 지상천국같은 요즘의 자연입니다. 


바로 하느님이 세상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생생한 증거입니다. 세상의 우리들을 믿고 희망하고 사랑하는 하느님이심을 증거합니다. 우리만 하느님을 믿고 희망하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역시 우리를 믿고 희망하고 사랑하십니다. 이런 하느님의 기대를 저버려선 안됩니다. 하느님의 기대에 부응하여 지금 여기서 하느님의 자녀답게 주님의 집을 짓고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요즘은 나라 전체가 어디나 아름답기가 하늘나라 같고 주님의 집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통령 한 분 바뀌니 계속 뉴스가 기다려지고 나라분위기가 완전 바뀐 듯 합니다. 나라도 하나의 커다란 가정이요 집임을 깨닫습니다. 청와대의 음습陰濕하던 분위기도 신선新鮮한 분위기로 바뀌었다고 이구동성 말합니다. 문대통령의 취임사가 구구절절 진정성이 가득했고 감동적이었지만 다음 부분은 더욱 빛났습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동분서주하겠습니다. 필요하면 위싱턴으로 날아가겠습니다. 베이징과 도쿄에도 가고 여건이 조성되면 평양에도 가겠습니다.--- 지역과 계층과 세대간 갈등을 해소하고, 비정규직 문제도 해결의 길을 모색하겠습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만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 정부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마치 나라를 주님의 집으로 바뀌겠다는 포부와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루터의 동시대인인 에라스무스는 ‘가장 나쁜 평화도 가장 좋은 전쟁보다 낫다. 필요하다면 평화를 사라.’하고 말했습니다. 평화를 돈주고 사더라도 전쟁의 비용과 참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몸담고 있는 주님의 집은 어떻습니까? 평화가, 기쁨이, 희망이 있습니까? 분위기는 음습하지 않고 신선합니까? 더불어 생각나는 제 좌우명 자작 애송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의 넷째 연이 생각납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활짝 열린 앞문, 뒷문이 되어 살았습니다. 

앞문은 세상에 활짝 열려 있어 

찾아오는 모든 손님들을 그리스도처럼 환대(歡待)하여 영혼의 쉼터가 되었고

뒷문은 사막의 고요에 활짝 열려 있어 

하느님과 깊은 친교(親交)를 누리며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주님의 집은 물론 믿는 이들 하나하나 모두가 지녀할 앞문과 뒷문입니다. 앞문은 세상의 사람들에게, 뒷문의 사막의 하느님께 활짝 열려있어야 신선한 분위기입니다. 오늘은 주님의 집, 아버지의 집에 대한 세측면에 걸친 깨달음을 나눕니다.


첫째, 주님의 집은 물질적으로도 지혜롭게 뒷받침 되어야 합니다.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분배도 정의롭고 공정해야 도래하는 평화입니다. 가난이 앞문으로 들어오면 사랑은 옆문으로 달아납니다. 물론 이런 주님의 집의 중심에는 부활하신 파스카의 예수님께서 자리잡고 있음을 물론이요 모든 주님의 집 형제들도 성령께 순종해야 합니다. 


바로 오늘 사도행전의 공동체가 그 모범입니다. 성령이 충만했던 열두사도의 신속한 분별의 지혜와 결행이 놀랍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식탁봉사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형제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에서 평판이 좋고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 일곱을 찾아 내십시오. 그들에게 이 직무를 맡기고, 우리는 기도와 말씀봉사에만 전념하겠습니다.”(사도6,2ㄴ-4).


분열의 위기를 지혜로운 역할 분담을 통해 말끔히 해소함으로 주님의 집 공동체의 일치를 굳건히 합니다. 수도원의 역할 분담도 유사합니다. 분도 수도원을  일컬어 ‘주님을 섬기는 학원’이라 합니다. 형제들마다 섬김의 역할을 다 다르지만 각자가 받은 은사대로 각자의 역할을 통해 주님과 공동체를 섬깁니다. 


그러니 섬김의 역할은 다양하면서도 우열의 차이가 없고 모두가 평등한 주님과 공동체 사랑의 표현입니다. 말그대로 사랑의 섬김이요, 결과는 공동체의 평화요 명실공히 주님의 집답게 됩니다. ‘답게’라는 표현이 나오니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가 생각이 납니다.


“오늘부터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구시대의 잘못된 관행과 과감히 결별하겠습니다. 대통령부터 새로워지겠습니다. 우선 권위적인 대통령문화를 청산하겠습니다. 준비를 마치는 대로 지금의 청와대에서 나와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열겠습니다.”


나라를 교회로, 대통령을 주교로 바꿔, 주교님들 착좌식때 강론으로 해도 참 복음적이겠습니다. 내 몸담고 있는 주님의 집인 공동체를 주님 중심의 사랑의 섬김의 공동체, 공정하고 정의로운 평화의 공동체를 만들도록 온 힘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둘째, 주님의 집은 영적기반이 튼튼해야 합니다. 

이런 영적기반위에 건실한 물적공동체의 성립니다. 이래야 사상누각 모래위에 집이 되지 않습니다. 명실공히 주님 반석위에 지어진 주님의 집입니다. 바로 제2독서에서 주님은 베드로 사도를 통해 주님의 집의 영적 구성원인 우리 모두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그대로 미사에 참석한 우리 모두를 향한 시공을 초월한 영원한 현재성을 띠는 진리의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그분은 살아있는 돌입니다. 사람들에게는 버림을 받았지만 하느님께는 선택된 값진 돌이십니다. 여러분도 살아있는 돌로서 영적 집을 짓는 데에 쓰이도록 하십시오. 그리하여 마음에 드는 영적 제물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바치는 거룩한 사제단이 되십시오.”(1베드2,4-5).


모퉁이의 머릿돌이, 공동체의 중심이 되신 파스카의 예수님 위에 건축된 주님의 집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집의 거룩한 사제단이 되어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주님의 영적 집을 짓거나 리모델링하는 데 미사전례보다 더 좋은 수행도 없습니다. 이어지는 주님 말씀도 참 고무적이라 새힘이 솟는 느낌입니다.


“여러분은 선택된 겨레이고 임금의 사제단이며 거룩한 민족이고 그분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당신의 놀라운 빛 속으로 이끌어 주신 분의 위업을 선포하게 되었습니다.”(1베드2,9).


바로 이것이 주님의 집의 구성원인 우리의 신원이자 자부심이십니다. 이런 분명한 신원의식이 주님의 집에서 자존감 높은 행복한 삶을 살게 합니다. 


셋째, 오늘 지금 여기 내몸담고 살아가는 집이, 바로 아버지의 집, 주님의 집임을 깊이 깨달아 알고 사는 것입니다. 교회가 수도원이 내 가정집이 모두 아버지의 집, 주님의 집입니다. 궁극에 있을 아버지의 집을, 주님의 집을, 하늘나라를 이미 앞당겨 사는 우리들입니다. 이것이 진정 내적혁명입니다.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러 간다고 말하였겠느냐?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겠다.”(요한14,2-3).


부활하신 예수님 계신 이곳이 바로 거처할 곳이 많은 아버지의 집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공간은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내적공간입니다. 궁극의 아버지의 집을 앞당겨 살기 시작한 여기 현세에서의 아버지의 집입니다. 


참으로 신기한 것이 주님과 사랑의 관계, 믿음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넓은 내적공간이 확보된다는 것입니다. 좁은 물리적 공간에서도 참 자유로운 넓은 내적공간의 자유를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넓고 아름다운 외적환경도 주님과의 관계, 형제들의 관계가 나쁘면 지옥입니다. 


사랑은 연대입니다. 이어져 연결되면 살고, 끊어져 단절되면 죽습니다. 그러니 주님과 형제들과 사랑으로 이어져 연결되면 천국이고, 주님과 형제들과 분열되어 끊어져 단절되면 거기가 지옥입니다. 결국은 사람입니다. 사람이 문제이고 답입니다. 사람이 희망입니다. 


주님과의 사랑의 관계, 믿음의 관계가 깊어질 때 진짜 존재감 충만한 삶, 살아있는 삶입니다. 똑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주님을 잊고, 자기를 잊고,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 존재감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습니다. 어떻게 오늘 지금 여기서 내적공간 드넓은 아버지의 집을  살 수 있겠습니까? 


답은 단하나 파스카의 예수님을 항구히 충실히 열렬히 사랑하는 것입니다. 다음 복음 말씀이 답을 줍니다. 오늘 복음의 절정이며 핵심입니다. 예수님의 신원이 환히 드러납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14,6).


예수님은 길이지 목적지의 끝이 아닙니다. 예수님 길을 따라 아버지의 목적지 끝에 이릅니다. 놀라운 신비가 예수님을 닮아갈수록 우리 또한 길이 되고 진리가 되고 생명이 된다는 것입니다. 바로 지금 여기가 길의 끝인 아버지의 집이 되고 아버지의 집에서 우리 모두 진리가 되고 생명이 되어 내적공간 드넓은 자유인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사랑은 비움입니다. 주님과 사랑의 관계로 일치가 깊어질 때 끊임없이 내적으로 비워지고 비워져, 우리 또한 길이되고 진리가 되고 생명이 되어, 오늘 지금 여기 아버지의 집에서 모두가 드넓은 내적공간의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지금 여기가 하늘나라요 아버지의 집, 주님의 집입니다. 행복은, 평화는 은총이자 선택이고, 멀리 있는 게 아니라 가까이 있습니다. 참으로 주님 사랑에 항구한 노력이 있을 때 선물처럼 주어지는, 발견되는 아버지의 집의 기쁨이요 평화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오늘 지금 여기서 주님의 집의 기쁨과 평화, 행복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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