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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6.24. 토요일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이사49,1-6 1요한4,7-16 마태11,25-30



‘생각’에 대한 묵상



오늘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강론은 생각에 대한 묵상으로 시작할까 합니다. 어제도 종일 생각에 대해 묵상했습니다.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라는 고 함석헌 옹의 유명한 책 이름도 생각납니다. ‘생각이 없는 사람’ ‘영혼이 없는 사람’이란 말도 요즘 사람들을 지칭해 흔히 사용됩니다. ‘생각하는대로 살고 사는 대로 생각한다.’ 우선적으로 생각하며 살아야 것을 권고한 말입니다. 

어제 카톡으로 받은 ‘커피’라는 시도 생각납니다.


-커피에/설탕을 넣고/크림을 넣었는데/맛이 싱겁군요

 아--/그대 생각-을 빠뜨렸군요.-윤보영


생각이 없을 때 조건반사적 감정적 반응이요 생각이 있을 때 상대방을 배려한 예의바른 인격적 응답입니다. 세상이 편리하고 쉽고 빨라질수록 오히려 역설적으로 바빠지는 세상입니다. 생각할 시간이 없어 날로 가벼워지고 얕아지는 삶입니다. 생각의 훈련이, 묵상의 훈련이 참으로 필요한 시대입니다. 이러저런 정보를 채우고 모으고 쌓기에 분주할뿐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아니 생각할 시간이 없습니다.

눈으로 보고 읽는 것은 익숙한데 생각은 거의 하지 않는 것이 현대인의 특성같습니다. 휴대폰, 인터넷이 깊은 생각에는 장애물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혹자는 ‘생각없이 말할 수는 있어도, 생각없이 글을 쓸 수는 없다.’고 말하며 독서와 더불어 글을 쓸 것을 권합니다.


어느 두분의 대화 모습을 묘사한 글이 생각납니다.


-둘은 매사에 신중하다. 말이 적다. 좋아도 빙그레 웃을 뿐 소리가 안 난다. 특히 마음이 상해도 불편함을 내보이지 않는다. 열심히 남의 얘기를 경청하고 자기 말은 적게 한다. 부정적인 말도 없지만, 소란스런 긍정의 말을 나열하지도 않는다.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한다. 남을 생각하고 배려한다.-


와닿은 대목은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렉시오디비나 역시 읽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읽고 생각(묵상)하고 기도하고 관상하고 실천하고’의 일련의 단계를 밟습니다. 심사숙고란 말도 있듯이 비단 성서뿐 아니라 모든 독서나 일에 있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깊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멈추고 하느님 나를 알라.”는 시편 말씀도 아무리 바쁜 중에도 잠시 멈춰 생각하거나 기도할 것을 권하는 내용입니다. 인디언들에게는 말을 타고 달리다가도 잠시 멈춰 영혼이 따라올 때까지 기다린다는 속담도 있습니다. 며칠전 그리스도의 성체성혈 대축일 강론들을 읽으며 생각의 중요성을 깨달은 두 대목이 생각납니다.


‘매일미사와 주일미사를 꼬박꼬박하고 성체를 열심히 영한다 해도 이웃의 행복과 사회적 평화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지 못한다면 그게 바로 ‘모령성체(冒領聖體)가 된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하시던 예수님처럼, ‘타인을 다 내 밥으로 생각하는’ 세상에서, 모든 이를 위하에 자신을 희생하신 그분처럼 ‘타인의 밥’이 되어야 한다. 


위 두 대목을 읽으며 제 강론중 부족했던 분을 깊이 생각했습니다. 주님의 성체공경은 살아있는 성체들인 사람공경에 이르러야 성체신심의 완성이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성서의 사람들은 거의가 기도의 사람들, 생각의 사람들입니다. 지식은 짧았을지 몰라도 생각은, 지혜는 깊었습니다. 예전 강론중 생각나는 대목이 있습니다. ‘부부자격시험이 있었으면 좋겠다. 부모자격시험이 있었으면 좋겠다. 부부자격 미달되는 사람들이, 부모자격 미달되는 사람들이 부부가, 부모가 됨으로 얼마나 많은 문제들이 파생되는가?’라는 내용입니다.


문제 아이에 문제 부모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학생수가 많았을 때엔 한 반에 1-2명의 문제아가 있었는데 오늘은 25명 정도의 반아이들이 모두 문제아란 말을 현직 교사에게 들었습니다. 얼마전 북아메리카 분도회 장상들의 모임에 강사없이 한 주제를 놓고 집중적으로 의견을 나누었다 합니다. 


주제는 ‘문제 수도등들problem monks’ 이었다 합니다. 예전 큰 공동체일 때는 문제가 안됐는데 공동체가 소형화되면서 문제 수도승은 공동체에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종신서원을 하면 살아가야 할 날이 길기에 문제수도승이 되기 쉽다는 것입니다. 결론은 ‘모두가 죄인이다.’ ‘모두가 문제 수도승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답은 하루하루 지칠줄 모르는 열정으로 하느님을 찾고 자기를 찾으며 깊이 생각하며 사는 길뿐이겠습니다.


기도하는, 생각하는 부부와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부모에 그 자식입니다. 오늘 복음의 세례자 요한의 출생 내용을 읽으면서 요한의 아버지 즈카르야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이미 요한이란 이름은 천사로부터 받았지만 불신의 벌로 요한이 탄생할 때까지 그 긴 세월을 벙어리가 되어 지냈습니다. 


하느님의 교육방법이 참 오묘합니다. 즈카르야를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로 만들기 위해 깊이 생각할 기회를 준 것입니다. 오히려 즈카르야에게 벙어리 기간은 긴 시야로 보면 전화위복의 시간이 되었음에 분명합니다.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그러자 모두 모두 놀라워 하였다. 그때에 즈카르야는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였다.’(루카1,63-64).


오늘 복음에는 생략됐지만 바로 즈카르야의 오랜 침묵과 생각중에 발효되어 나온 우리 수도자들이 아침성무일도 끝무렵에 바치는 그 유명한 찬미가 즈카르야의 노래입니다. 생각과 함께 가는 기억입니다. 아마 이런 요한 탄생시의 강렬한 기억은 평생 즈카르야를 인도했을 것입니다. 


기억은 과거보다 미래를 위한 것입니다. 기억은 미래를 지향합니다. 기억은 과거를 보존하는 능력이 아니라 미래를 계획하는 능력입니다. 폴 발레리는 ‘기억은 과거의 미래다.’로 기억을 정의합니다. 어제 읽은 기억의 중요성을 환기시키는 내용입니다. 그러니 자녀들에게, 또 만나는 이들에게 좋은 기억을, 좋은 추억을 제공하는 것보다 더 좋은 선물도 없습니다.


영적지도자의 두 역할은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안내해 주는 것, 또 하나는 자기가 누구인지 알게 해주는 것이라 합니다. 그러나 이 둘은 구별할 수 있을지언정 분리할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할수록 참 나에 대한 앎도 깊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대로 부모의 역할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함과 더불어 자신이 무의미한 존재가 아니라 참으로 필요한 의미있는 존재로 자기를 알아가게 함으로 정체성 또렷한, 자존감 높은 자녀로 키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한의 부모 즈카르야와 엘리사벳 부부가 분명 그랬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마지막 대목도 의미심장합니다.


‘아기는 자라면서 정신도 굳세어졌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날 때까지 광야에서 살았다.’(루카1.80).


하느님의 은총과 신심깊은 부모가 요한의 성장과정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을 봅니다. 요한은 부모의 사랑의 기억과 추억을 먹고 자라면서 정신도 굳세어졌음이 분명합니다. 술도 때가 되어야 익습니다. 과일도 봄, 여름, 가을 때가 되어야 익습니다. 설익은 사람들이 너무 판치는 세상입니다. 요한은 즈카르야 아버지처럼 긴 인고의 세월을 광야에서 발효의 숙성기간동안 깊이 생각하고 기다리며 하느님을 뜻을 찾으며 마침내 참 나를 발견했을 것입니다. 이사야서의 말씀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모태에서부터 부르시고, 어머니 배 속으로부터 내 이름을 지어 주셨다.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의 종이다. 이스라엘아, 너에게서 내 영광이 드러나리라.”(이사49,1ㄷ.3).


이어 사도행전에서처럼 요한이 예수님의 선구자로서 자신의 신원을 자각할 수 있었던 것도 깊은 생각과 기도의 결과임을 봅니다.


“너희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그분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내 뒤에 오시는데, 나는 그분의 신발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사도13,25).


진정 하느님을 알고 자기를 아는 것이 지혜요 겸손입니다. 행복은 추억에, 기억에 있습니다. 좋은 추억이, 좋은 기억이 나쁜 추억을, 나쁜 기억을 치유해 주며 미래를 열어줍니다. 하루하루 좋은 기억을, 좋은 추억을 쌓아가는 것이 진짜 보물을 쌓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날마다 좋은 기억을, 좋은 추억을 축적하도록 도와 주십니다.


“오묘하게 지어 주신 이 몸, 당신을 찬송하나이다.”(시편139,14ㄱ).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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