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멋진 삶 -하느님 중심의 아름답고 행복하고 자유로운 삶-2019.6.22.연중 제11주간 토요일

by 프란치스코 posted Jun 22,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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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6.22.연중 제11주간 토요일                                                                         2코린12,1-10 마태6,23-26

 

 

 

참 멋진 삶

-하느님 중심의 아름답고 행복하고 자유로운 삶-

 

 

 

참 멋진 삶을 살고 싶습니까? 아름답고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고 싶습니까?

세월흘러 나이들어갈수록 지혜롭고 자비로운 사람,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제 지인이 ‘신부님, 딱 부러지게 말하긴 뭣합니다만, 웬지 외로워하는 것 같습니다.’ 이야기 듣고 속내를 보인 듯 깜짝 놀랐습니다. 

 

외로워서 사람이라는 어느 시인의 말도 있지만 외로움도 그리움도 쓸쓸함도 담담히 편안히 안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엊저녁 공동 휴게시 순대 만들 청량고추들 꼭지를 따면서 노령의 수사님이 하려 하자, ‘수사님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한 수도형제가 말하자, ‘그래.’ 힘없이 답변한후 신문을 보다가 조용히 사라진 수사님이 눈에 밟힙니다. 아마 내심 많이 서운하셨던 듯 합니다. 쉬 외로워하고 서운해 하는 노년의 모습입니다.

 

어제 미국에서 발송한 분도회 계간지 잡지 첫 기사를 보고 가벼운 충격을 받았습니다. 분도회 성규 학자중 참 탁월한 손꼽히는 카르동 신부(1936-2019)가 만 83세로 선종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제가 늘 곁에 두고 참고하는 신부님의 규칙서 해설서입니다. 아주 편안히 마지막까지 일하시다가 잠자는 도중에 선종하셨다는 것입니다. 편집자의 고백입니다.

 

“아, 나는 무엇보다도 카르동 신부를 그리워한다. 그의 지혜, 그의 상식, 그의 격려, 유머, 그리고 신경질적인 면 모두를!”

 

죽음은 멀리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늘 함께 있는 편안하고 다정한 친구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옛 사막수도자들은 물론 사부 성 베네딕도의 이구동성의 권고는 ‘날마다 죽음을 눈앞에 환히 두고 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죽음앞에 환상은 걷히고 본질만 투명히 드러나 선물로 주어진 오늘 지금 여기를 충실히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산상수훈의 주옥같은 예수님 말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영원히 빛을 발하는, 참으로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살아있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도 좋고 코린토 후서 말씀도 좋습니다. 참 멋지고 멋진, 온갖 시련중에도 참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았던 예수님과 바오로 사도였습니다. 두분 다 평생 하늘에 보물을 가득 쌓으며 살았던 분들입니다. 정말 살 줄 알아 참 삶을 사셨던 분들로 삶의 대가이자 삶의 예술가입니다.

 

어제는 ‘하늘에 보물에 쌓는 삶-모든 사랑의 수행들-’이란 주제의 강론이었는데 자신에게도 참 은혜로웠고 여러분들과도 나눴습니다. 두 부류의 사람들, 즉 하늘에 보물을 쌓는 사람들과 땅에 보물을 쌓는 사람들로 나눌수 있을 것입니다. 하늘에 보물을 쌓는 삶, 쉽고 편한 삶이 아니라 하루하루 자신을 비우는 사랑의 수행, 사랑의 노고의 삶입니다. 어제 몇 지인들에게 상기시키며 격려했습니다.

 

“자매님은 참 잘 살고 계십니다. 자매님의 삶은 그대로 하늘에 보물을 쌓는 삶입니다. 자매님 하늘 곳간에는 보물들이 가득할 것입니다. 끝까지 하늘 곳간에 보물을 쌓으시기 바랍니다.”

 

그러고 보니 곳곳에 하루하루 하늘에 보물을 쌓으며 분투하며 그러나 기쁘게 사는 이들이 많습니다. 앞으로 이분들을 만날 때 마다 잘 살고 계시다 꼭 격려해드리고 싶습니다. 하늘에 보물을 쌓으며 참 멋진 삶을 잘 살고 있는 데도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보물을 쌓는 사람들이 진정 자유롭고 아름답고 행복한 내적 부요의 사람들입니다. 재물 중심이 아닌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사는 이들입니다. 하여 노년의 품위 유지의 우선 순위도 1.하느님 중심의 삶, 2.건강, 3,돈임이 단박 드러납니다. 사실 우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습니다.

 

모든 재앙과 불행의 원인은 바로 하느님 중심의 삶의 실종에서 시작됩니다. 내 중심의 삶, 재물 중심, 세상 중심의 삶, 땅에 보물을 쌓는 삶에서 시작됩니다. 하여 점증하는 불안과 두려움, 혼란과 복잡함, 걱정들입니다. 내적평화와 자유도, 기쁨과 감사도 없습니다. 하여 하느님 중심에 깊이 뿌리내리지 못하고 표류, 방황하는 많은 영혼들입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주님은 나의 목자 걱정할 것 없어라.”

“주님은 나의 목자 두려울 것 없어라.”

“주님은 나의 목자 불안할 것 없어라.”

 

하느님 중심의 삶이 삶을 단순히 정리해 줍니다. 오늘 지금 여기서 하늘에 보물을 쌓는 본질적 삶에 충실하게 합니다. 주님은 하느님 중심의 삶에 항구할 때 모든 것을 곁들여 받게 될 것이고 모든 일이 잘 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

 

그러니 앞날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은 시간과 에너지 낭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많이 여기에 빠져 살아가는 지요. 우리는 하늘의 새들을, 들판의 꽃들을 지켜 바라 보라고 하느님 마련해 주신 삶의 축제에 초대 받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로 존재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 하느님 친히 그들을 돌보시기에 본래의 모습대로 새답게, 꽃답게 삽니다. 하늘에 계신 하느님만으로 만족하고 행복하기에 그리도 아름답고 자유롭습니다. 이런 새들을, 꽃들을 보고 배우고 깨닫고 알라는 것입니다. 

 

아, 이들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들의 때가 오면 그들은 소리없이 사라집니다. 마침 얼마전 산책중 화사했던 담벽의 장미꽃들이 지는 모습도 아름다워 사진에 담았습니다. 때되어 시들어 죽는 모습도 아름답습니다. 제 집무실 안에는 시들어 죽은 꽃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나무는 꽃은 풀은 죽어도 향기롭고 정갈합니다.

 

우리는 너무나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걱정하기에 결코 삶을 즐기지 못합니다. 기쁨과 행복은 오직 현재에 있고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현재’가 ‘선물’이라 영어 단어 ‘present’도 두 뜻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과거를 계속 지켜보고 미래를 계속 내다 보며 집착한다면 결코 행복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행복은 매일 매순간 포착되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지금 행복해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갖고 있습니다. 말그대로 살 줄 몰라 불행이요 살 줄 알면 행복입니다. 만일 우리가 이 진리를 그대로 믿는 다면 우리 삶은 얼마나 놀라운 변형이 이루어 지겠는지요! 행복은 오직 지금 여기 있기 때문입니다. 

 

어제의 행복은 지나갔고 내일의 행복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내가 지금 행복하지 않다면, 나는 결코 행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 내일을 걱정하지 맙시다.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할 것입니다. 그날 고생은 그날로 충분합니다. 얼마나 멋진 예수님이신지요! 참으로 믿는 이들에게 삶은 고해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기쁘고 행복하게 살라 주신 축제의 선물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행복에 겨운 자랑은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요. 고통과 시련중에도 꽃처럼 피어난 기쁨과 행복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아십니다.” 저리도 당당하고 자유로운 비결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에 항구했을 때 비로소 주님은 바오로의 고통의 정체를 알려 주십니다.

 

“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복에 넘친 바오로의 고백이 참으로 아름답고 감동적입니다. 하늘에 보물을 쌓는 하느님 중심의 삶에, 그리스도 중심의 삶에 항구하고 충실했기에 이런 은총의 선물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힘이 나에게 머무를 수 있도록 더없이 기쁘게 나의 약점을 자랑하렵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약함도 모욕도 재난도 박해도 역경도 달갑게 여깁니다. 내가 약할 때 오히려 강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인생 축제 선물의 삶을, 참으로 멋진 하느님 중심의 아름답고 행복하고 자유로운 삶을 살게 하십니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행복하여라, 그분께 몸을 숨기는 사람!”(시편34,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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