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2.28. 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                                                          이사58,1-9ㄴ 마태9,14-15

 

 

 

참된 수행자의 삶

-'생명을 보살피는 사랑'이 답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참으로 오랜 만에, 아니 생전 고요한 분위기에서 지냈습니다만 마음은 내내 편치 않았습니다. 죽음과 같은 침묵의 분위기 같다고 할까요, 흡사 전쟁중인 느낌도 들었습니다. 사실 경북-대구 지역은 코로나 19 전염병과 치열한 격전激戰중입니다. 

 

보이는 적보다 더 무서운, 참으로 대책이 힘든 자연의 역습의 보복과도 같은 이런 보이지 않는 적과의 전쟁입니다. 이제 우리의 회개는 우리 인간은 물론, 자연도 함께 사는 생태적 회개에 까지 이르는 전방위적 회개이어야함을 깨닫습니다. 어제 읽은 기사도 나눕니다. 

 

“2018년 한 해동안 노동현장의 사고 사망자 수는 971명, 산재로 죽은 노동자는 2142명, 자살로 숨진 사람은1만367명이었다. 비정규직 하청노동자의 노동현장은 바이러스 감염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작년 한해동안 도축된 돼지는 1800만마리, 닭은 무려 10억 마리에 이른다. 

이 세계가 켜켜이 쌓이는 죽음위에서 만들어지는 풍요로운 세계라는 것을 누구나 안다. 누적된 불안이 임계점에 다다르면 미칠 듯이 터져나와 때릴 곳을 찾기 마련이다. 광기는 언제나 약한 곳을 향해 터져나간다. 그 마지막에 파시즘과 전쟁이 기다리고 있다.

재난이 일상을 중단시키면 우리가 얼마나 연결되어 있는 존재인지 생각하게 된다. 이 재난은 함께 살자는 물음을 가지고 돌아오는 추방자들의 귀환이자, 일상을 중단 시키는 ‘자연의 파업’인지도 모른다. 그 물음에 답하지 않는다면 자연은 더욱 강력한 경고를 보낼 것이다.

과잉생산, 과잉소비, 거대한 낭비위에 굴러가는 성장의 경제를 멈추지 않으면 재난도 멈추지 않는다. 우리는 자본주의에 너무 오래 감염되어 있다.”

 

참으로 전방위적 회개를 촉구하는 온세계가 직면한 절박한 현실입니다. 우리는 코로나 19의 사태를 통해 ‘원헬스(One Health;전 세계 사람-동물-환경의 건강이 밀접히 연결돼 있다는 개념) 시대에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햇빛, 공기, 물, 땅이 오염되어 있는 환경에서 사람도, 동물도 건강할 수 없습니다. 바로 이 오염과 재앙의 중심에 사람이 있습니다.

 

새삼 작금의 위기 현실을 통해 참된 회개와 더불어 참된 수행, 참된 단식을 생각하게 됩니다. 마침 제1독서 이사야서의 소주제 역시 참된 단식입니다. 참된 단식에 앞서 참된 수행에 대해 생각합니다. 한 마디로 수행 자체가 절대적 가치가 아니라는 자각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를 통해 주일 미사는 물론 모든 활동의 중단을 단행한 한국 가톨릭 교회의 현명한 결단을 통해 새삼 모두가 ‘생명을 보살피는 사랑’의 절대적 가치 앞에 상대화되는 대상들임을 깨닫습니다. 구체적 수행으로, 즉 전례, 기도, 침묵, 자선, 주일준수, 규칙준수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사랑 실천으로 구원받기 때문입니다.

 

말많은 직업의 사람들에게 침묵은 필요하지만 말없이 외롭게 지내는 독거 노인들은 침묵이 아닌 말을 해야 합니다. 잘 먹어 영양과잉의 사람들에겐 단식은 정말 필요하니, 그래야 배고픈 이들과 연민과 유대감을 지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배고픈 이들이나 육체 노동자들은 단식이 아니라 살기 위해, 일하기 위해, 잘 쉬고 잘 먹어야 합니다. 참으로 힘들게 쉴사이 없이 일하는 이들은 기도가 아닌 심신의 휴식이 필요합니다. 자선도 있는 자들은 반드시 해야 하지만 가난한 이들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모든 수행이, 계명이나 율법, 규정, 법규 모두가 다분히 상대적임을 깨닫습니다. 절대적인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있다면 단 하나 ‘생명을 보살피는 사랑’뿐입니다. 사랑이 절대적 분별의 잣대입니다. 사실 참된 수행은 모두가 사랑의 표현이요, 참된 수행은 사랑의 실천으로 표현되기 마련입니다. 모든 계명이나 율법 역시 사랑의 정신이 그 중심에 자리합니다.

 

예수님이나 예언자들은 단식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사랑이 없는 무분별한 생각이 없는 획일적 단식을 거부했습니다. 단식을 한다하면서 구체적 이웃사랑의 실천에 소홀한 이들을 꾸짖었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를 통한 주님의 말씀은 얼마나 통쾌한지요!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불의한 결박을 풀어 주고, 멍에 줄을 끌러 주는 것,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 주고, 네 혈육을 피하며 숨는 것이 아니겠느냐?”

 

얼마나 통쾌한 직격탄 같은 말씀인지요! 아마 오늘날 같으면 예언자의 관심의 범위는 더욱 확장되어 사람은 물론 자연과 동물, 식물등 모든 피조물들에게까지 미칠 참된 단식의 정신이겠습니다. 널리 깊이보면 수도원 경내에서 함께 살아가는 개들과 고양이들, 다양한 종류의 무수한 새들 역시 사랑으로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생명들입니다. 이어지는 다음 말씀은 참된 단식뿐 아니라 참된 회개와 참된 수행에 따른 축복의 약속 말씀입니다.

 

“그리하면 너의 빛이 새벽빛처럼 터져 나오고, 너의 상처가 곧 바로 아물리라. 너의 의로움이 네 앞에 서서 가고, 주님의 영광이 네 뒤를 지켜 주리라. 그때 네가 부르면 주님께서 대답해 주시고 네가 부르짖으면 ‘나 여기 있다.’하고 말씀해 주시리라.”

 

이사야 예언자의 참된 단식의 정신을 고스란히 이어 받은 예수님이심이 분명합니다. 먹보요 술꾼이요 죄인들의 친구라는 별명에서 보다시피 예수님은 모두로부터 참으로 자유로웠던 분이셨습니다. 예수님께 유일한 판단의 잣대는 생명을 보살피는 사랑, 하나뿐이었습니다. 참된 단식이나 참된 수행의 거부가 아닌  사랑이 없는 무분별한 단식이요 수행들에 대한 가차없는 질책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의 요한의 제자들과 예수님의 대화를 통해 요한의 제자들의 영적 시야가 얼마나 협소한지 깨닫습니다. 고작 제기한 물음이 자기들과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을 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단식 자체의 수행이 절대가 된 자기도취의 단식의 수행, 예수님 보시기엔 참으로 답답했을 것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습관화된 단식의 프레임에 고착되어 굳어진 이들, 오늘말로 하면 꼰대입니다. 예수님의 답변이 참으로 유연하고 지혜롭습니다.

 

“혼인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느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축제인생 맘껏 누리고, 단식의 때가 되면 바로 그때 지체없이 단식하라는, 단식에도 분별의 지혜가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참된 단식의 정신에도 불구하고 실제적인 단식, 감쪽같이 숨겨진 겸손한 단식이 절실한 시대가 아닌가 싶습니다. 영양결핍이 아니라 영양과잉 시대에 병도 많고, 마트에 가도 온통 먹을 것뿐이요, 배달되는 택배도 대부분 식품들이고, 도처에 널려 있는 참 많은 식당들입니다.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는 얼마나 많은지요!

 

참된 회개, 참된 수행, 참된 단식을 실천해야 하는 사순시기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사순시기 깨어 절제, 자제, 극기중에 참된 사랑의 수행자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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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안젤로 2020.02.28 08:01
    사랑하는 주님, 주님 주신
    사순시기에 기도와 묵상을 통해 저희가 주님의 뜻을
    충분히 이해하고 따르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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