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9.9.연중 제23주간 수요일                                                       1코린7,25-31 루카6,20-26

 

 

 

참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

-하느님 중심의 초연한 깨어 있는 삶-

 

 

 

사람의 진면목은 살아서보다 죽어서 잘 드러납니다. 본인보다 주변에서 인정하고 알아 줍니다. 구상 시인이 그렇고 안병초 수사가 그런 분입니다. 동시대를 살면서도 죽어서야 더 잘 알게 된 분들입니다.

 

“마리아니스트 안병초 수사 평전-참 아름다운 사람, 안병초-“

라는 책을 휴게실에서 발견했습니다. ‘참 아름다운 사람’, 얼마나 좋은 호칭인지요! 후대의 사람들이 그렇게 불러주니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참 아름답게 살다간 영원한 마리아니스트 안병초, 비록 체구는 작았으나 거목巨木이었고, 한국 마리아니스트들의 훌륭한 아버지였습니다.

 

누구나 바라는 바,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입니다. 아름다운 삶은 바로 행복한 삶입니다. 행복한 삶은 사랑하는 삶입니다. 사랑할 때 행복하고 아름답습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을 사랑하고 행복하고 아름답습니다. 참으로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사랑할 때 행복합니다.

 

오늘 복음이 행복한 삶, 아름다운 삶의 비밀을 알려 줍니다. 마태복음과 아주 대조되는 행복선언입니다. 행복선언 넷에 뒤이어 곧장 불행선언 넷이 나옵니다. 오늘 행복선언은 직접 제자들을 보며 하신 말씀입니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너희는 배부르게 될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면, 그리고 사람의 아들 때문에 너희를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아라. 보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예언자들도 그렇게 대하였다.”-

 

행복선언 전반부를 전부 인용했습니다. 결론하여 가난하여 행복하다는 말은 하느님만으로 행복하다는 말입니다. 그대로 우리 자신을 적나라하게 비춰주는, 참으로 주님의 제자들인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말씀입니다. 행복선언을 통해 가난한 예수님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참으로 온통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사랑하기에 역경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것입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역설적인 행복입니다, 세상에 희망을 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희망을 둘 때 이런 행복입니다. 주목할 말마디 ‘지금’입니다.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이 배부르게 되고, 지금 우는 사람들이 웃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앞당겨 체험하니 이런 행복입니다. 참으로 하느님을 순수히 열렬히 사랑할 때 세상에 대한 일체의 원망이나 증오가 없는 이런 참 행복의 가난입니다.

 

이어지는 불행선언은 그대로 자족의 있는 자들에 대한 회개의 촉구입니다. 전반부의 가난한 이들과 연대하여 함께 살라는 회개의 촉구입니다. 거지 나자로와 부자의 예화가 생각납니다. 전반부의 행복선언은 가난한 나자로를 연상케 하고, 후반부는 이름이 없던 부자를 연상케 합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너희는 이미 위로를 받았다.

불행하여라, 너희 지금 배부른 사람들! 너희는 굶주리게 될 것이다.

불행하여라, 지금 웃는 사람들! 너희는 슬퍼하며 울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하면, 너희는 불행하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거짓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그대로 우리를 두고 하는 말씀같아 참 불편하게 들립니다만 우리의 참 모습을 비춰주면서 회개에로 이끄는 충격 요법적 표현입니다. 오늘부터 참 행복선언과 불행선언을 좌우명으로 삼아 살고 싶습니다. 불행한 사람들, 세상 눈으로 보면 행복한 사람들이지만 내면은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자리가 없어, 깨어 있지 못하고 곧 부패하게 되니 참 행복은 불가능합니다. 물이 고이면 썪듯이 부유는 십중팔구 부패로 직결되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가짜 행복의 불행에서 벗어나는 일은 회개하여 가난한 이들과 연대하여 함께 나눔으로 하느님을 만나는 일뿐입니다.

 

모든 사람이 우리를 좋게 말하면 불행하다 합니다. 거짓 예언자들이 그러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칭찬받으려 하거나 맞추려 할 것이 아니라 하느님 진리에 맞춰 살아야 함을 깨닫습니다. 참 예언자들이, 성인들이 그러했습니다. 본당 신부의 말을 들어도 아무리 잘해도 신자들의 반응은 ‘1/3은 찬성, 1/3반대, 1/3중도’ 라 합니다. 마치 1/3보수, 1/3진보, 1/3중도의 비율과 흡사합니다. 

 

과연 우리는 참 행복한 사람인지 혹은 불행한 사람인지 묻게 됩니다. 행복한 사람은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하느님께 희망을 두고 사랑하면서 ‘있는 그대로’의 가난을, 현실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깨어 있고 초연하고 자유롭습니다. 가난한 부자로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절대 부패하지 않습니다. 바로 하느님이 그 빈자리를 채워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1독서 코린토 1서 후반부가 참 행복의 비결을 알려 줍니다. 때가 얼마 안 남았으니 깨어 초연히 자유롭게 살라는 것입니다. 이 또한 참으로 하느님께 궁극의 희망을 둘 때 가능합니다.

 

“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 아내가 있는 사람은 아내가 없는 사람처럼, 우는 사람은 울지 않는 사람처럼, 기뻐하는 사람은 기뻐하지 않는 사람처럼, 물건을 산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처럼, 세상을 이용하는 사람은 이용하지 않는 사람처럼 사십시오.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바오로 당시 신자들은 예수님 재림이 곧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하여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 생각했습니다. 이런 재림이 아니더라도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처럼 하루하루 처음이자 마지막처럼 종말론적 삶의 자세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언제 갑자기 들이 닥칠 죽음일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무시나 거부가 아니라 세상에 빠지지 않고 소유되지 않고 깨어, 집착함이 없이, ‘세상의 종’이 아니라 ‘세상의 주인’이 되어 초연한 자유로운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몸은 지상의 현실에 두지만 마음은 하늘의 하느님께 두고 살라는 것입니다. 이상적 현실주의자로 살라는 것입니다. 이래야 참 행복에 아름다운 삶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 전반부의 참 행복의 원리와 똑같습니다.

 

참으로 경계할 바 사람을 폐인이나 괴물로 만드는 중독과 부패입니다. 돈중독, 일중독, 사람중독, 인터넷 중독등 중독 아닌 것이 없습니다. 참으로 하느님 사랑에 깨어 있을 때 초연하게 되고 자유로워질 수 있으며 중독도 부패도 예방되고 치유될 수 있습니다. 

 

참으로 끊임없이 매일 규칙적으로 반복하여 평생 바치는 하느님 찬미와 감사의 공동성무일도 은총이,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깨어 참 행복의 초연한 자유로운 삶을 살게 합니다. 세상 것들에의 중독과 부패 방지는 물론 치유와 더불어 초연하고 자유로운 삶에 이 거룩한 미사은총보다 더 좋은 처방은 없습니다. 아멘.

 

 

 

  • ?
    고안젤로 2020.09.09 08:10
    "참으로 끊임없이 매일 규칙적으로 반복하여 평생 바치는 하느님 찬미와 감사의 공동성무일도 은총이,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깨어 참 행복의 초연한 자유로운 삶을 살게 합니다. 세상 것들에의 중독과 부패 방지는 물론 치유와 더불어 초연하고 자유로운 삶에 이 거룩한 미사은총보다 더 좋은 처방은 없습니다." 아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 참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 -하느님 중심의 초연한 깨어 있는 삶-2020.9.9.연중 제23주간 수요일 1 프란치스코 2020.09.09 108
1301 사랑의 예닮 여정 -무지와 허무에 대한 답은 예수님뿐이다-2020.9.10.연중 제23주간 목요일 ​​​​​​​ 1 프란치스코 2020.09.10 98
1300 개안開眼의 여정 -무지로부터 깨달음의 앎으로-2020.9.11.연중 제23주간 금요일 1 프란치스코 2020.09.11 100
1299 반석 위의 인생 성전聖殿 집 -말씀과 기도, 성찬례 실행의 생활화-2020.9.12.연중 제23주간 토요일 1 프란치스코 2020.09.12 114
1298 어떻게 살 것인가? -사랑하라, 화내지 마라, 자비로워라-2020.9.13.연중 제24주일 1 프란치스코 2020.09.13 137
1297 성 십자가 예찬 -기도와 회개의 표징이자 구원의 이정표-2020.9.14.월요일 성 십자가 현양 축일 1 프란치스코 2020.09.14 169
1296 아, 어머니! 고통의 성모 마리아님! -관상, 연민, 비움, 초월-2020.9.15.화요일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1 프란치스코 2020.09.15 190
1295 선물이냐 짐이냐? -하느님이, 기도와 사랑이 답이다-성 고르넬리오 교황(+253)과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258) 기념일 1 프란치스코 2020.09.16 128
1294 부활 은총의 삶 -사랑, 만남, 회개, 용서, 구원-2020.9.17.연중 제24주간 목요일 1 프란치스코 2020.09.17 133
1293 더불어 여정 중의 공동체 -중심(믿음), 비전(희망), 역할(사랑)-2020.9.18.연중 제24주간 금요일 1 프란치스코 2020.09.18 106
1292 참된 수행자의 삶 -희망, 간절함, 항구함, 인내-2020.9.19.연중 제24주간 토요일 프란치스코 2020.09.19 107
1291 구원의 여정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2020.9.20(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1821-1846)와 성 정하상 바오로(1795-1839)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 1 프란치스코 2020.09.20 149
1290 부르심의 여정 -부르심, 들음, 따름-2020.9.21.월요일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프란치스코 2020.09.21 112
1289 멋지고, 맛있고, 아름다운 삶 -말씀 예찬-2020.9.22.연중 제25주간 화요일 1 프란치스코 2020.09.22 118
1288 파견된 복음 선포자의 삶 -선물, 비전, 믿음, 환대, 활동-2020.9.23.수요일 피에트첼치나 성 비오 사제(1887-1968) 기념일 1 프란치스코 2020.09.23 117
1287 충만한 삶 -허무와 무지에 대한 답은 하느님뿐이다-2020.9.24.연중25주간 목요일 1 프란치스코 2020.09.24 122
1286 때를 아는 지혜 -모든 것은 다 때가 있다-2020.9.25.연중 제25주간 금요일 1 프란치스코 2020.09.25 100
1285 기억하라, 사랑하라, 찬미하라 -창조주 하느님, 파스카 예수님을!-2020.9.26.연중 제25주간 토요일 1 프란치스코 2020.09.26 105
1284 참 멋지고 아름다운 삶 -끊임없는 회개-2020.9.27.연중 제26주일(이민의 날) 1 프란치스코 2020.09.27 106
1283 하느님의 종 -믿음의 대가;예수님과 욥-2020.9.28.연중 제26주간 월요일 1 프란치스코 2020.09.28 118
Board Pagination Prev 1 ... 100 101 102 103 104 105 106 107 108 109 ... 170 Next
/ 170
©2013 KSODESIGN.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