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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6.12.연중 제10주간 수요일                                                                    2코린3,4-11 마태5,17-19

 

 

 

사랑-예수님

-율법의 완성이자 분별의 잣대-

 

 

 

어제 장기간 유럽 여행중인 분으로부터 카톡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여행을 하면 가족의 사랑이 새롭게 보입니다. 아기들을 보면 지나간 시간이 보이고, 노부부를 보면 다가올 시간도 보입니다. 여행은 사랑입니다.”

 

‘여행은 사랑입니다.’ 새롭게 마음에 와닿은 말마디였습니다. 내가 사는 곳이 절대적인 곳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어디서나 자기 직분을 묵묵히 수행하며 기쁘게 사는 사람들을 보면 참 아름답고 하느님은 이런 사람들 있는 곳에 함께 계심을 깨닫습니다. 사람이, 사랑이, 꽃이 있는 곳에 하느님은 계시고 바로 거기가 하늘나라임을 깨닫습니다.  

 

어제 휴가 끝날 예산에 있는 금오산 향천사香泉寺라는 절에 들렸습니다. 대개가 명산을 배경한 명찰임을 깨닫습니다. 이런 면에서 불암산을 배경한 우리 요셉수도원은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백제 의자왕 16년 서기 656년 의각선사께서 창건한 절이라 하니 무려 1400년된 절입니다. 절의 자산은 노목과 노승이라 했습니다.인내의 사랑을 상징하는 278년 수령의 느티나무 보호수가 향천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마침 점심때가 임박한 때 였고 스님 한 분이 지나길 래 합장으로 인사했습니다. 

 

“점심이나 들고 가시죠?”

 

친절한 인사말이 참 마음 편안하게 했습니다. 환대의 사랑을 새롭게 체험했습니다. 곳곳에 발견되는 이런저런 크고 작은 사랑이 모두 하느님 사랑 안에 하나의 인류 가족임을 깨닫게 합니다. 아마도 여행이나 휴가는 이런 하느님 사랑의 체험 학습장이란 생각도 듭니다.

 

평생 배워야 하는 사랑입니다. 인생은 사랑의 학교입니다. 끝없는 사랑이요 사랑에는 영원한 초보자인 우리들이며 평생 사랑의 학인인 우리들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과 율법에 대한 내용입니다. 예수님의 율법에 대한 생각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깊이 들여다 보면 율법이나 예언서 모두가 하느님 사랑의 표현입니다. 하느님 사랑의 정신이 담겨있습니다. 사랑엔 크고 작은 것이 없듯 율법도 크고 작은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의 율법 사랑이, 예언서 사랑이 얼마나 단호한지 깨닫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이나 예언서의 문자 넘어 하느님 사랑을 직관하고 계십니다. 이어지는 예수님의 단호하고 분명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 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 나라에서 큰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악마는 디테일 안에 있다는, 지도자는 디테일이 강해야 한다는 말도 문득 생각이 납니다. 작다하여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어느 계명이나 율법이든 사랑의 표현이기에 소홀히 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하여 사랑은 모든 분별의 잣대임을 깨닫습니다. 

 

휴가중 작은 사랑의 깨달음도 잊지 못합니다. 휴가 첫날 목적지에 일착으로 도착했고 다음 번에 도착한 생일이 한달 늦은 사촌 동생이 “형님, 커핀 한 잔 드시겠어요.” 친절히 사다 준 커피 한 잔의 고마운 사랑이 휴가 내내 행복하게 했습니다. 

 

이어 차 안에서 마침 빵이 한 개 있어 반쪽을 혼자 먹고 나누기가 쑥스러워 남은 반쪽 마져 혼자 먹으려다 반쪽의 반을 그 사촌 형제와 나누었더니 반갑게 받아 먹었습니다. 아차 싶었습니다. 혼자 다 먹었으면 큰 일 날번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옆자리의 사촌 형제는 옆에서 제가 먹고 있는 것을 다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이 답입니다. 마음만 있으면 사랑 실천은 무궁무진합니다. 돈이 없어서 사랑을 못하는 게 아니라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깨어 있게 하고 이웃을 배려하게 합니다. 또 하나의 깨달음도 잊지 못합니다. 

 

옛 고향집 자리에 들렸다가 옆에 귀향하여 혼자 사는 친지분을 방문했습니다. 갑작스런 방문에 반갑게 맞이하였지만 풀어진 모습, 무너진 모습이 너무나 완연하여 충격을 받았습니다. 잘못하면 무질서한 삶으로 폐인이 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혼자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위태한 일인지 한눈에 배울 수 있었습니다.

 

최소한 둘이라도 함께 공동체를 이루어 살면서 서로 버팀목이 되는 상호사랑이 참으로 절대적임을 깨달았습니다. 공동체란 안전망의 사랑이, 일과표에 따른 규칙적인 질서있는 삶이, 그리고 우리의 수도복이 참으로 든든한 사랑의 버팀목임을 깨닫습니다.

 

제 옛 고향집은 주인이 바뀌어 주말 농장집처럼 바뀌었고 많이 비워진 탓에 흡사 그 옛날의 영혼과 깊이, 의미를 완전히 상실한 죽은 집처럼 보였습니다. 사랑이 빠지면 자연도 집도 생명과 빛이 사라져 죽은 듯 보이니 시골의 모습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모든 율법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요약됩니다. 바로 이런 율법의 완성이 예수님이심을 깨닫습니다. 예수님의 전생애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하여 우리는 예수님을 하느님의 말씀이자 지혜이시며 우리의 영원한 길이자 생명이요 진리라 고백합니다. 그러니 율법의 완성인 예수님이 모든 분별의 잣대임을 깨닫습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겠는가 생각하면 저절로 옳고 그른 것은 분별이 되기 마련입니다. 

 

제1독서에서 바오로가 말하는 새 계약의 일꾼, 성령의 직분, 의로움에 이르는 직분도 제가 보기엔 결국 사랑의 직분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새 계약의 일꾼이 되는 자격을 주셨습니다. 이 계약은 문자가 아니라 성령으로 된 것입니다.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성령은 사람을 살립니다.---성령의 직분은 얼마나 더 영광스럽겠습니까?---의로움으로 이끄는 직분은 더욱더 영광이 넘칠 것입니다.---곧 사라질 것도 영광스러웠다면 길이 남을 것은 더욱더 영광스러울 것입니다.”

 

성령은 사랑입니다, 성령을 사랑으로 바꿔 말해도 그대로 통합니다. 사랑만이 영원합니다. 주어진 사랑의 직분에 충실한 이들을 통해 빛나는 하느님의 영광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새 계약의 일꾼이 되어 성령의 직분, 사랑의 직분에 충실한 삶을 살게 해 주십니다. 아멘.

 

 

 

  • ?
    고안젤로 2019.06.12 09:57
    주님, 주님께서 저희에게 주신 사랑을 세상 모든것과
    나누면서 살아가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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