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8.8.월요일 성 도미니코 사제(1170-1221) 기념일 

에제1,2-5.24-28ㄷ 마태17,22-27

 

 

그리스도 예수님 중심의 삶

-사랑과 분별의 지혜-

 

 

밤새 풀벌레 찬미 노래에 새벽 4시쯤부터는 줄기찬 매미 찬미 소리에 웬지 서늘한 느낌이 들어 달력을 보니 어제가 입추立秋였습니다. 이젠 가을의 시작입니다. 세월흘러 나이들어갈수록 저의 관심사는, 영원한 탐구 대상은 단연코 ‘사람’입니다. 사람의 신비는 그리스도의 신비요 그리스도의 신비는 하느님의 신비입니다. 사람에 대한 탐구는 끝이없습니다. 결국은 그리스도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하겠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사람이 물음이라면 답은 그리스도 예수님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는 살아계시다! 그분은 우리의 희망이시며, 그리고 놀라운 방법으로 우리 세상에 젊음을 가져다 주신다. 그분께 닿는 모든 것이 젊어지고 새로워지고 생명으로 가득해 진다. 내가 모든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첫말은 이것이다: 그리스도는 살아계시다 그리고 그는 너희가 살아있기를 원한다.”(1항)

 

이미 3년전에 발표한 299항으로 이뤄진 교황님의 “그리스도는 살아계시다(Christ vivit)”라는 사도적 권고의 가르침중 제1항이 새롭게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며칠전 방문했던 젊은이들에게, “예수님이 여러분의 위대한 친구가 되도록 하십시오.”라는 기사를 읽던 중 뒤늦게 발견한 문헌이었습니다. 참으로 살 줄 아는 사람들은, 성인들은 그리스도 예수님을 사랑했고 따랐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을 위대한 친구로, 도반으로 둔 이들은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우며 자유롭고 행복합니까? 마르지 않는 매력의 샘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수도형제가 엊그제 도서관에서 빌려다 준 김준엽 선생의 자서전 장정長征 5권을 어제 새벽부터 틈틈이 읽기 시작하여 오후 4시30분쯤 독료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위인들을 만났는지 모릅니다. 난세에 인물이 난다 했습니다. 아마 한반도의 역사중 가장 위인들을 많이 배출한 때가 임진왜란시의 선조임금 시대와 후의 정조대왕시대, 그리고 일제 강점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현세에서 만나지 못한, 당대 별처럼 반짝였던 위인들을 어제 5권의 독서를 통해 참 많이 만났습니다. 사람만날 욕심에 끊임없이 읽는 사람들에 관한 자서전이나 평전입니다. 

 

아마도 김준엽같은 위대한 대학총장은 앞으로 더 이상 나올수 없겠다는 생각입니다. 이분의 인간관계의 깊이는 참으로 끝이없었습니다. 특별한 운동을 하지 않는다, 음식을 가리지 않는다, 자기를 괴롭히지 않는다 라는 세 건강비법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어제는 성녀聖女처럼 사시다가 만100세로 선종하신 "이순임"고모님의 부음을 들었습니다. 1922년생이니 만 100세입니다. 오늘 아침 일찍 문상할 계획입니다. 3년전 2019년 찾아 뵜던 고모님입니다. 어찌하여 조카인 저를 잊지 않고 병석에서도 제가 걸렸던지 선물금 20만원을 보내 주셨고 감사인사차 찾아뵜던 고모님입니다. 

 

90세까지 매일 성서 필사를 하시며 새벽기도를 바치며 6남매를 가난중에도 훌륭히 키워내신 고모님은 일곱째 오빠인 제 아버지의 바로 밑에 하나뿐인 여동생이었습니다. 참으로 눈물로 성인 아우구스티노를 키워냈던 성녀 모니카처럼 참으로 사랑과 지혜를 겸비했던, 눈물의 기도로 자녀들을 키워냈던 독실한 침례교회 신자였습니다.

 

오늘은 성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이자, 요즘 거의 몇 달 동안 아침 식사후 “십자가의 길” 기도를 소리내어 바치는 문도미니코 수사의 영명축일이라 어제 저녁식사 때는 조촐한 축하식을 갖기도 했습니다. 문수사님의 배경에 어머니 역할을 하고 있는 믿음의 큰 누님을 기억하게 됩니다. 사람은 혼자가, 섬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보이지 않는 무수한 사람들과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습니다. 나타난 것은 빙산의 일각일뿐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를 이루고 있는 형제자매들입니다.

 

복음적 가난과 연구와 설교를 중시했던 도미니코회의 창립자인 성 도미니코 사제는 만51세를 사셨습니다. 성 대 알베르토와 성 토마스 아퀴나스 대학자도 도미니코회 소속입니다. 성인에 관한 일화도 큰 깨우침이 됩니다. “성인은 육류를 피했으며 정해진 단식 시간과 침묵을 준수했고 사치스러운 침소를 피하고 될 수 있는한 가장 누추한 거처와 초라한 옷을 선택했다. 그의 입술은 슬픔이나 다른 부정적인 말 대신에, 오직 하느님을 찬미하는 소리만이 나왔다.” 

 

이어 성인이 임종전 동료 수사들에게 남긴, “형제들간에 서로 사랑하여라. 겸손하여라. 청빈을 자발적으로 실천함으로써 영적인 보화를 만들어 가도록 하라.” 유언도 감동적입니다.

 

오늘날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의 하나인 묵주기도가 가톨릭교회에 널리 확산되어 활발히 보급되기까지 성 도미니코가 지대한 공헌을 하였습니다. 묵주기도가 수세기 동안 도미니코회의 핵심이었으며 교황 비오 12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마리아의 묵주는 성 도미니코의 수도회로 하여금 회원들의 삶을 완전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들의 구원을 얻도록 해주기 위한 원리와 토대로 받쳐지게 되었다.”

 

또 오늘부터는 당분간 제1독서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신비가이자 예언자인 에제키엘을 만납니다. 하느님은 시공을 초월하여 언제 어디서나 당신을 사랑하는, 또 당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 나타나십니다. 바빌론 유배시 외로운 예언자 에제키엘에게 나타나신 주님이십니다. 

 

오늘 제1독서는 “주님의 말씀이 칼데아안들의 땅, 크바르강 가에 있는, 부즈의 아들 에제키엘 사제에게 내리고, 주님의 손이 그곳에서 그에게 내리셨다.” 장엄한 묘사와 더불어 예언자의 생생한 하느님 체험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마지막 대목 체험의 묘사가 아름답습니다. 

 

“사방으로 뻗은 광채의 모습은, 비오는 날 구름에 나타나는 무지개처럼 보였다. 그것은 주님 영광의 형상처럼 보였다. 그것을 보고 나는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다.”

 

지금까지 소개된 모든 분들이 저에게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시공을 초월하여 영적멘토가 됩니다. 사람없다 탄식할 일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무수한 성인들이나 위인들과 친교를 나누면 됩니다. 전임 베네딕도 16세 교황님은 성 아우구스티노와 성 보나벤투라를 멘토로 삼고 있다 합니다. 아마도 현임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영원한 멘토는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일 것입니다.

 

바로 모든 성인들은 물론 모두의 수렴지점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입니다. 참으로 그리스도 예수님 중심의 삶이 깊어질수록 참나의 실현이요 시공을 초월한 무수한 성인들과의 친교입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분별의 지혜가 빛납니다. 언제나 깊은 사랑과 함께 가는 지혜입니다. 언젠가 저녁 불암산을 보고 써놨던 짧은 시가 생각납니다.

 

“아, 크다. 깊다. 고요하다!

 저녁 불암산!”

 

참으로 저녁 불암산처럼, 큰 믿음에 깊은 겸손과 지혜, 그리고 고요한 사랑을 지녔던 그리스도 예수님임을 깨닫습니다. 이래서 제가 늘 사랑하는 침묵의 멘토 불암산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성전세를 바쳐야 하는가 제자들의 물음에 주님은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불필요한 일로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지혜로운 분별의 처방을 주십니다.

 

“자녀들은 면제받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의 비위를 건드릴 것은 없으니, 호수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져 올라오는 고기를 잡아 일을 열어 보아라. 스타테르 한 닢을 발견할 것이다. 그것을 가져다가 나와 네 몫으로 그들에게 주어라.”

 

이런 자연이적은 상징적으로 이해해야 합니다만 사실일 수도 있습니다. 죽으시고 부활하신 파스카의 그리스도 예수님은 하느님의 사랑과 지혜를 그대로 반영하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 전반부에 나오는 주님의 두 번째 수난과 부활의 예고가 의미심장합니다. 제자들은 무지로 몹시 슬퍼했지만, 참 하느님의 사랑과 지혜가, 참 자유인이 되기 위해 그리스도 예수님께는 필히 통과해야할 파스카의 관문이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살아계십니다. 사람들의 신비, 하느님의 신비에 결정적 열쇠가 되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신비입니다. 바로 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우리 모두 삶의 중심에 새롭게 맞아들이는 이 거룩한 미사시간입니다. 제 “예닮기도”중 한 대목으로 강론을 마칩니다.

 

-“주님, 당신은 저의 전부이옵니다.

저의 사랑, 저의 생명, 저의 기쁨, 저의 행복이옵니다.

하루하루가 감사요 감동이요 감탄이옵니다.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는 파스카의 신비, 아름다운 하루이옵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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