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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8.11.목요일 성녀 글라라 동정(1194-1253) 기념일 

에제12,1-12 마태18,21-19,1

 

 

영적혁명의 삶

-끊임없는 기도와 회개가 답이다-

 

 

“당신 얼굴 이 종에게 빛나게 하시고,

 당신 법령을 저에게 가르쳐 주소서.”(시편119,135)

 

계속 내린 폭우로 불암산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우렁찹니다. 바위산이라 아무리 비가 많이 와도 산사태는 없고 물은 맑은 편입니다. 흐르는 물소리에 떠오른 좌우명시 “하루하루살았습니다” 셋째 연입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끊임없이 

하느님 바다 향해 흐르는 강이 되어 살았습니다.

때로는 좁은 폭으로 또 넓은 폭으로

때로는 완만하게 또 격류로 흐르기도 하면서

결코 끊어지지 않고 계속 흐르는 강이 되어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받으소서.”

 

끊임없이 바다 향해 흐르는 강이 상징하는 바, 끊임없는 회개의 삶, 회개의 여정을 상징합니다. 기도처럼 회개 역시 결코 끊어지거나 중단되어선 안될 겁니다. 바로 영적혁명가의 삶이기도 합니다. 강이 끊임없이 흘러야 살 듯 사람도 내적으로 끊임없이 흘러야, 새로워져야 삽니다. 

 

이것이 진정 영적혁명의 삶입니다. 물도 고이면 썩듯이 삶도 고이면 썩습니다. 끊임없이 흘러야 맑은 물이듯 삶도 그러합니다. 예전에도 나눴던 21년전 써놨던 “혁명”이란 시가 생각납니다.

 

“이런게 혁명이라면

가끔은 있었으면 좋겠다.

바짝 마른 바닥에 

잡초와 오물들

대책없이 썩어 악취를 발하던 시내

폭우내리니

말끔히 씻겨 정리되고

하얀 모래에 맑게 흐르는 물

살아 노래하는 시내가 되었다.

이런 게 혁명이라면

가끔은 있었으면 좋겠다.”-2001.7.19.

 

하늘비가 많이 내려야 맑게 흐르는 계곡물이지만, 참 깊은 산은 가뭄에도 흐르는 맑은 물입니다. 정말 끊임없이 회개하는, 깊은 영적혁명가의 삶은 하루하루 평생 맑게 흐르는 강같은 삶일 것입니다. 제가 매일 평생 쓰기로 작정한 강론 역시 쓸 때 마다 하루하루 흐르는 강같은 삶을 염두에 둡니다. 정말 끊기거나 중단됨이 없이 한결같은 삶에, 강론이 소원입니다. 어제 20대 후반 자매와의 면담성사시 뜻밖의 말이 고마웠습니다.

 

“존함이 ‘이’자 ‘수’자 ‘철’자 신부님입니까?”

“예,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입니다.”

“아, 신부님 묵상글 봤습니다. 명료하고 심오했습니다.”

 

명료(明瞭;뚜렷하고 분명함)하고 심오(深奧;깊고 오묘함)하다는 두 말마디가 고맙고 고무적이라 사전을 찾아봤습니다. 강론은 물론이고 삶도 마음도 이랬으면 좋겠습니다. 참으로 회개한 맑고 투명한 영혼에 주어지는 은총의 선물이 명료함과 심오함이 아니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 어느 평신도 신학자의 “1.깊이가 남다르다, 2.쉽다, 3.아름답다, 4.울림(감동)을 준다”라는 평을 읽고 삶도, 마음도 그랬으면 하는 생각도 간절했습니다. 이 또한 회개의 은총이라 생각됩니다. 예전 로마에서 세계 베네딕도회, 시토회, 트라피스트회 수도자 모임시 호주 출신 수녀의 “1.좋은 메시지(good messages)를 준다, 2.다채롭다(colorful), 3.실천적(practical)이다. 4.단순하다(simple)” 제 강론 평에 고무된 일이 생각납니다. 

 

이런 평을 다시 확인하면서 삶도 마음도 영성도 한결같이 그랬으면 하는 간절한 소원이요 끊임없는 기도와 회개의 은총이 이를 가능하게 해주리라 믿습니다. 좌우간 살아 있는 그날까지 한결같이 끊임없이 맑게 흐르는 강같은 삶에 강론이 되길 소원합니다.

 

무지에 대한 궁극의 답도 회개뿐임을 깨닫습니다. 회개를 통해 하느님께 가까워질수록 자기를 아는 겸손과 사랑과 지혜입니다. 바로 무지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진 맑은 영혼의 소유자가, 진정한 영적혁명가가 오늘 복음의 예수님이요 제1독서의 에제키엘이요, 오늘 기념하는 성녀 클라라를 비롯한 무수한 교회의 성인들입니다. 

 

우선 복음에서 우리는 “형제의 죄에 대한 용서”와 “매정한 종의 비유”를 통해 예수님이 얼마나 무지한 인간의 실상에 정통한지 깨닫게 됩니다. 참으로 예수님을 닮은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한두번이 아니라 끊임없이 용서할 것이며, 예수님 또한 무한한 용서를 명하십니다. 회개해서 용서가 순서이지만 용서의 사랑이 상대방을 감동시켜 회개에로 이끌기도 합니다. 

 

만탈렌트 빚을 탕감받은 자의 백 데나리온 빚진 자에 대한 무자비한 모습에서 우리는 인간 무지의 절정을 체험합니다. 이렇게 자기를 모를 수 있을까 믿어지지 않지만 자주 겪는 무지의 현실입니다. 만탈렌트 빚진자는 바로 하느님께 무한한 사랑의 빚을 지고 살아가는 우리들을 상징합니다. 살아있음이 사랑의 기적이요 사랑의 은총인데 이걸 까맣게 잊고 무지한, 잔혹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래서 진정 무지에 대한 답은 회개뿐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참 자기를 보고 아는 회개입니다. 회개와 더불어 자기를 아는 겸손과 사랑, 지혜의 선물입니다. 다음 주인의 무지한 이에 대한 질책은 그대로 우리 모두의 회개를 촉구하는 주님의 말씀처럼 들립니다.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오늘 제1독서에서 에제키엘은 주님의 예표를 보여주면서 무지한 백성들의 회개를 촉구하지만 별무소득입니다. 얼마나 완고하고 완강한 무지의 이스라엘 백성들인지 오늘 제1독서 서두 말씀이 입증합니다. 참으로 무지한 이들 한가운데서 고군분투하는 고독한 예언자, 하느님의 전사 에제키엘입니다.

 

“사람이 아들아, 너는 반항의 집안 한가운데에서 살고 있다. 그들은 볼 눈이 있어도 보지 않고, 들을 귀가 있어도 듣지 않는다. 그들이 반항의 집안이기 때문이다.”

 

무지의 사람들! 회개가 불가능한 사람들! 바로 인간의 정의같다는 부정적 생각도 듭니다. 어려서부터 죄에 대해 회개하는 습관을, 마음의 민감성을 키워줘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마음이 굳어져 무디어 지기전 어려서부터 역시 회개의 선택과 훈련, 습관화가 절실하다는 확신입니다.

 

회개의 달인이자 진정한 영적혁명가가 바로 예수님을 닮은 성인들이요, 오늘 기념하는 성녀 글라라가 그 좋은 모범입니다. 회개를 통해 영적혁명의 순결한 삶을 살았기에 평생 성 프란치스코와 깊은 영적우정을 나눌 수 있었음을 봅니다. 

 

성녀 클라라는 42년의 수도생활중 대부분을 병상에서 보내야 할 만큼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봉쇄구역 안에서 오로지 기도에 의지하여 이 모든 일을 이루어 냈습니다. 1253년 8월11일, 성녀 클라라는 마지막으로 “저를 지어내시어 이 삶으로 부르셨으니, 주님, 찬미받으옵소서.”라는 찬가를 부르면서 주님의 품으로 돌아갑니다. 성녀는 선종 2년만인 1255년 교황 알렉산데르 4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고 다음처럼 클라라의 덕을 기립니다.

 

“클라라는 숨어 살았지만 그 생애는 모든 이에게 알려졌고, 침묵하였으나 그 명성은 세상 끝까지 자자했다. 봉쇄 담장 안에 자신을 숨겼으나 곳곳에서 사람들을 가르치게 됐다.”

 

참으로 주님을 닮아 끊임없는 기도와 회개를 통해 영적혁명의 삶을 살았던 성녀 클라라를 비롯한 교회의 참 보물들인 성인들입니다. 새삼 인간 고질병인 무지에 대한 답은 회개를 통한 영적혁명의 겸손과 사랑, 지혜의 삶뿐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주님의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회개를 통해 무지에서 해방되어 영적혁명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무지의 치유에 미사은총보다 더 좋은 처방은 없습니다. 

 

“보라, 신랑이 오신다. 주 그리스도를 맞으러 나가라.”(마태25,6).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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