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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7.14.연중 제15주일                                                               신명30,10-14 콜로1,15-20 루카10,25-37

 

 

 

어떻게 해야 영생을 받을 수 있나?

-사랑 실천이 답이다-

 

 

 

오늘 율법교사의 예수님께 대한 물음이 불순합니다만 질문 내용은 훌륭합니다. 우리 인간의 근본적 관심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예나 이제나 누구나의 궁극의 갈망은 영원한 생명의 구원입니다. 뭔가 늘 허전하고 부족하기에 끊임없이 찾는 인간입니다. 

 

하여 생명의 하느님을 찾아 영적 목마름을, 배고픔을 해소하고자 이 거룩한 미사축제에 참여하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사실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고해인생을 축제인생으로, 찬미와 감사의 인생으로 바꿔줍니다.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까?” 바꿔 말해,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혹은, “스승님, 제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하고 물을 수 있겠습니다. 좌우간 모두가 구원을 갈망하는 인간의 보편적 물음입니다.

 

어떻게 해야 허무하고 무의미한 삶이 아닌 의미 충만한 삶을 살 수 있겠는가 묻는 것입니다. 그대로 영혼의 갈증을 드러내는 질문입니다. 이런 영적 갈증이, 갈망이 있어서 사람입니다. 참으로 영성적인 것을 찾는 사람들입니다. 요즘 종파를 초월하여 공통적인 주제가 영성입니다. 때로 “영성이 없다!” 개탄하는 현실이 곳곳에서 목격됩니다. 

 

이런 물음에 대한 답도 참 다양합니다. 우리 수도자들이 아침 성무일도 즈카르야의 노래 후렴도, 방금 부른 화답송 후렴도 이에 대한 답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가장 큰 계명이로다.”

“없는 자들아 주님을 찾으라 너희 마음은 살리라.”

 

모두 구원의 길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구원은,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가까이 있습니다. 언젠가의 구원이, 행복이 아니라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명과 사랑의 주님을 만나 구원을, 행복을 사는 것입니다. 이 또한 우리에 대한 주님의 간절한 소망입니다. 하여 다음 행복기도의 고백에 그대로 동감합니다.

 

-“주님/눈이 열리니/온통 당신의 선물이옵니다

당신을 찾아 어디로 가겠나이까/새삼 무엇을 청하겠나이까

오늘 지금 여기가 천국이옵니다

 

곳곳에서/발견하는/기쁨, 평화, 감사, 행복의 구원이옵니다

살 줄 몰라 불행이요/살 줄 알면 행복임을 깨닫나이다.”-

 

그렇습니다.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하늘 나라 구원의 시작입니다. 얼마전 참 열심히, 치열히 살아가는 믿음 좋은 옛 제자와 주고 받은 카톡 메시지도 생각납니다.

 

-“제 힘으로 요즘 제 생활이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느껴요. 박사과정 한 학기 남았어요. 또 사이버 강의도 하나 맡고 다음 학기는 겸임교수도 하게 되었구요. 매일매일 기적처럼 살아요.”

“말그대로 하루하루 은총으로, 참 치열한 노력으로 기적처럼 사는구나! 바로 그것이 구원이다.”-

 

그렇습니다. 예나 이제나 구도자들이 공통적으로 물었던 하늘 나라의 구원은, 영원한 생명은, 행복은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오늘 말씀을 바탕으로 그 구체적 방법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바로 주님을 믿는 이들인 우리의 신원과도 직결됩니다. 

 

첫째, ‘하느님의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람’ 얼마나 영예로운 칭호입니까? 참으로 존엄한 품위의 인간입니다. 그냥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막연하고 추상적입니다. 기준이 없습니다. ‘하느님의 사람답게’, 분명해집니다. 주님의 기도 역시 ‘하느님의 자녀되어, 구세주의 분부대로 삼가 아뢰오니’로 시작됩니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사람입니다. 바로 이것이 존엄한 인간 품위의 근거입니다. 살아있는 사람은 하느님의 영광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하느님의 사람입니다. 여기서 당연히, 자연스럽게 실천해야 할 첫계명이 부여됩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참으로 하느님을 사랑할 때 영혼도 튼튼해지고 삶의 목표, 방향, 중심, 의미도 확고해져 심신의 안정과 평화입니다. 하느님 사랑은 결코 막연하지도 추상적이지도 않습니다. 하느님 사랑은 말씀 사랑과 말씀 실천으로 직결됩니다. 바로 그 말씀은 늘 오늘 우리에게 선물처럼 주어집니다. 모세를 통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계명은 너희에게 힘든 것도 아니고 멀리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하늘에 있지도 않다.---또 그것은 바다 건너편에 있지도 않다.---사실 그 말씀은 너희에게 아주 가까이 있다. 너희의 입과 너희의 마음에 있기 때문에, 너희가 그 말씀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이다.”

 

영생의 구원은, 구원의 행복은 바로 오늘 지금 여기있습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하느님 말씀을 실천하며 하느님의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성 베네딕도 별세 축일 입당송도 생각납니다.

 

“하느님의 사람, 베네딕도는 하느님의 얼을 지니셨기에 세상의 영화를 업신여기고 버렸도다.”

 

둘째,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냥 막연히 사람이 아닙니다. 영원한 비전이, 꿈이, 희망이 있어야 사람입니다. 바로 주님을 향한 비전이, 꿈이, 희망이 사라지면 삶은 서서히 무너져 내리고 부패합니다. 참으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주님을 향한 방향입니다.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은 우리의 영원한 꿈이자 비전이요 희망입니다. 말 그대로 우리 삶은 그리스도 예수님을 닮아가는 ‘예닮의 여정’입니다. 그러니 그리스도 예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성 베네딕도 역시 그 무엇도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보다 앞세우지 말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고백하는 그리스도 예수님은 바로 바오로가 제2독서 콜로새서에서 고백하는 분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모상이시며 모든 피조물의 맏이이십니다. 만물이 그분 안에서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든 땅에 있는 것이든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왕권이든 주권이든 권세든 권력이든 만물이 그분을 통하여 또 그분을 향하여 창조되었습니다. 그분은 만물에 앞서 계시고 만물은 그분 안에서 존속합니다.”

 

존재하는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님을 목표로 향하고 있다는 장엄하고 심원한 고백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은 존재하는 모든 것의 의미이자 중심임을 깨닫습니다. 우리의 그리스도 예수님께 대한 사랑과 믿음의 성장을 위해 이런 상상력도 배워야 하겠습니다. 이어지는 고백도 참 은혜롭습니다.

 

“과연 하느님께서는 기꺼이 그분 안에 충만함이 머무르게 하셨습니다. 그분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평화를 이룩하시어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만물을 화해시키셨습니다.”

 

바오로의 그리스도 예수님께 대한 고백이 참으로 웅대하고 적절합니다. 이런 그리스도 예수님을 사랑하여 주님과 일치의 여정에 항구할 때 평화의 실현에 충만한 삶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은 또한 당신 몸인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교회가 바로 그리스도의 몸이고 우리는 그 지체들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람이자 교회의 사람임을 깨닫습니다. 참으로 그리스도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저절로 교회를 사랑하게 됩니다. 하여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람으로, 교회의 사람으로 살아갈 때 바로 영원한 생명의 구원이요 참 행복임을 깨닫습니다.

 

셋째, ‘이웃의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며 이웃의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막연히가 아닌 내 이웃을 내 자신처럼 사랑하며 사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하며 사는 것입니다. 혼자의 고립단절이 지옥입니다. 삶은 관계의 유대요 연대입니다. 끊어져 단절되면 죽고 이어져 연결되면 삽니다. 혼자라는 개념은 환상이요 착각입니다.

 

이웃없이는 구원도 없습니다. 하느님 사랑은, 그리스도 예수님 사랑은 최종적으로 이웃 사랑으로 검증됩니다. 참으로 하느님의 사람,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람이라면 이웃의 사람으로 확증되어야 합니다.

 

바로 이점에서 복음의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나오는 사제와 레위인은 실패했습니다. 하느님 구원의 시험에 불합격했습니다. 이웃의 사람이 되는 데 실패했습니다. 훌륭한 종교인인지는 몰라도 자비로운 참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참 사람되는 공부보다 어려운 평생공부는 없습니다. 강도를 만나 초주검이 된 이는 말그대로 ‘누가 참사람인가?’에 대한 하느님의 시험문제 였던 것입니다.

 

뜻밖에도 이 참사람의 구원의 시험에 합격한 이는 무시받고 천대받던 무종교인 사마리아인이었습니다. 가엾은 마음, 불쌍히 여기는 마음, 측은히 여기는 마음에 최선을 다해 진정성 가득 담긴 자세로 인간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합니다. 

 

주님은 이 예화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발상의 전환을 촉구합니다. 내 이웃이 누구인가? 라는 내 중심의 사고에서 나는 누구의 이웃이 되어야 하는가? 180도 발상의 전환을 요구합니다. 국적, 종교, 인종, 계층, 신분을 넘어 참으로 곤궁 중에 도움을 청하는 이가 모두 나의 이웃이요 무조건 이를 도우라는 것입니다. 

 

눈만 열리면 곳곳에 도움을 청하는 이웃입니다. 바로 이런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이웃의 사람이 되어야 비로소 영원한 생명의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곤궁중에 있는 이들에 대한 구체적 사랑 실천이 없는 하느님 사랑, 그리스도 예수님 사랑, 교회 사랑은 참 공허할 뿐입니다. 

 

하느님 사랑의 진정성은, 그리스도 예수님 사랑의 진정성은, 교회 사랑의 진정성은, 곤궁중에 있는 이웃사랑의 실천을 통해 입증됩니다. 하느님의 사람이,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람이, 그리고 곤궁중에 있는 이웃의 사람이 되어 사랑을 실천하며 살 때 비로소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영원한 생명의 구원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한결같이 삼중 사랑(하느님 사랑, 그리스도 예수님 사랑, 이웃 사랑)의 실천에 항구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주님께서 오늘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구원의 명령입니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 ?
    고안젤로 2019.07.14 09:12
    오늘 지금 이자리에서 한결 같은 삼중사랑의 실천을 통해 구원의 길을 주십니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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