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9.13. 목요일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344/49-407) 기념일

1코린8,1ㄷ-7.11-13 루카6,27-38



하느님의 소원, 우리의 평생과제이자 목표

-자비로운 사람이 되는 것-



어제 써놓은 짧은 자작시를 나눔으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어제 미사중 문득 떠오른 시입니다.


-“세월흘러/나이들어

  육신肉身은/누더기 옷처럼 되어도

  영혼靈魂의/속옷은

  늘/곱고 부드러우면 좋겠네”-


자비가 답입니다. 자비로운 영혼의 속옷은 늘 곱고 부드럽습니다. 하느님의 소원이자 우리의 평생과제이자 목표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자비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의 강론 제목입니다. 주님의 세 말씀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내가 거룩한 것처럼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라.”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바로 하느님의 소원이자 우리의 평생과제이자 목표입니다. 분리된 셋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하느님을 닮아 거룩한 사람이, 완전한 사람이 되는 것은 바로 자비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이가 진정 성인입니다. 우리 모두 이런 자비로운 성인이 되라 불림 받고 있습니다. 한 번뿐이 없는 우리 고유의 인생, 이것이 우리가 세상에 온 보람이요 의미입니다. 참행복도, 참기쁨도 자비로운 사람이, 성인이 되는 데 있습니다.


이것은 절대 불가능한 꿈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 사랑이신 하느님의 모상대로 지음받았기에 자비로운 사람이, 성인이 될 가능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니 일체의 변명도 핑계도 용납되지 않습니다. 


하느님을 찾는 사람입니다. 하느님을 찾는 우리 영혼입니다. 하느님을 닮고 싶은 본능적 욕구 때문입니다. 참 신기한 것이 집무실 찻잔 주변의 달콤한 냄새를 찾아 멀리 어디선가 찾아 온 작은 개미들입니다. 바로 하느님을 찾는 영혼이 그러합니다. 마음 깊에서 하느님을 찾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복음은 산상수훈의 핵심을 요약합니다. 종파를 초월하여 무수한 영성가들이 감탄하고 공감하는 내용들입니다. 그리스도교 영성 대가들에게 무한한 영감의 원천이 되었던 만고불변의 진리들입니다. 주님은 자비로운 사람이 되는 구체적 처방을 아주 분명하고 세밀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고, 미워하는 자들에게 잘 해 주고, 저주하는 자들을 축복해 주고, 학대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하느님 사랑을 닮은 순수한 아가페적 사랑입니다. 상대방을 살리고 나도 살리는 상생의 윈윈win-win의 사랑입니다. 내 중심이 아니라 상대방 중심에, 하느님 중심에 서서 보면 왜 그렇게 될 수 뿐이 없는 지 원수의 심정도 헤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뺨을 때리는 자에게 다른 뺨을 내밀고, 겉옷을 달라는 자에게 속옷도 가져가게 내버려 두고, 달라고 하면 주고. 남이 우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남에게 해주는 것입니다. 상호주고 받는 사랑이 아니라 일방적 아가페 사랑입니다. 비폭력적 사랑의 저항입니다. 결코 비겁하거나 약한 이들이 아니라 진짜 내적으로 강한 영혼의 사람들입니다. 


비폭력적 사랑의 저항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악의 세력을 무력화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바로 이것이 영적전쟁의 요체입니다. 악과의 싸움에 승리는 장구하고 항구한 여정임을 깨닫습니다. 물론 하느님께서 우리를 통해 하시는 일입니다. 하여 모두가 은총이라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비폭력적 사랑의 저항에 항구한 이가 진정 자비로운 사람입니다. 거룩한 사람입니다. 이런 자비가, 거룩함이 악에 대한 유일한 처방입니다. 발본색원, 폭력적 정의는 악의 힘만 증대시킬 뿐입니다. 괴물과 싸우다 괴물을 닮기 십중팔구입니다. 이미 인도의 성자 간디가, 미국의 마르틴 루터킹이 바로 비폭력적 사랑의 진가를 입증했습니다.


끼리끼리 유유상종의 사랑은 누구도 합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자기에게 잘 해주는 이들에게만 잘 해 준다면, 도로 받을 가망이 있는 이들에게만 꾸어준다면, 무슨 인정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죄인들도 그렇게 합니다.


그러니 원수들을 사랑하고 그에게 잘해주며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줘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받을 상이 클 것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일이 결코 값싼 은총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이런 항구한 사랑의 분투가 있어 비로소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은혜를 모르는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도 인자하십니다. 그러니 우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우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는 것, 바로 오늘 복음의 결론입니다.


참으로 자비로운 사람들은 하느님을 닮아 겸손한 사람들입니다. 자기를 모르는 교만한 사람이 남을 판단하지 하느님을 닮은 자비롭고 겸손한 사람은 절대 남을 심판하지 않습니다. 남을 단죄하지 않습니다. 용서합니다. 줍니다. 


이래야 우리도 심판받지 않고 단죄받지 않고 용서받고, 받습니다. 풍성한 축복이 뒤따릅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니 자비로운 사랑은 심판하지 않는 사랑, 단죄하지 않는 사랑, 용서하는 사랑, 주는 사랑임을 깨닫습니다. 우리 죄의 정체가 환히 드러납니다. 바로 이런 사랑에 거스르는 모든 행위가 죄입니다.


오늘 말씀이 너무 선명한 예수님의 명강론이라 결국 예수님의 강론을 되풀이한 강론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강론 그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제1독서 바오로 사도의 분별의 사랑이 놀랍고 고맙습니다.


지식은 교만하게 하고 사랑은 성장하게 합니다. 사랑없는 교만한 지식은 아무 쓸모 없습니다. 우상에 바쳤던 제물을 먹어야 하느냐, 먹지 말아야 되느냐의 문제는 코린토 교회의 큰 딜렘마 였습니다. 지식은 먹어도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우상은 없고 하느님은 한 분 밖에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느님 아버지 한분이 계실 뿐이고, 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나왔고 우리는 그분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또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 계실 뿐이고 모든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있고 우리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합니다.


이런 진리가, 지식이 확고한 이들은 문제가 없습니다만 믿음이, 양심이 약한 이들에게는 문제이니 이들을 배려하는 사랑이 우선입니다. 믿음이 약한 이들에게 스캔들이 되지 않기 위해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을 먹을 수 있어도 먹지 않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사랑의 분별이자 지혜입니다. 바오로의 열정적 사랑의 마지막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다만 여러분의 이 자유가 믿음이 약한 이들에게 장애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그러므로 음식이 내 형제를 죄짓게 한다면, 나는 내 형제를 죄짓게 하지 않도록 차라리 고기를 영영 먹지 않겠습니다.”


사랑이 답입니다. 사랑밖엔 길이 없습니다. 하느님을 닮아 자비로운 사람이 되는 것은 하느님의 소원이고 우리 모두의 성소이자 평생과제입니다. 주님과 일치를 이루는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날로 주님을 닮아 우리 모두 인자하고 자비로운 사람,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으로 변모시켜 주십니다. 


“하느님, 저를 샅샅이 보시고 제 마음을 알아 주소서. 저를 꿰뚫어 보시고 제 생각을 알아 주소서. 저의 길이 굽었는지 살펴보시고, 영원한 길로 저를 이끄소서.”(시편139,23-2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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