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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4.12. 성주간 수요일                                                                                  이사50,4-9ㄴ 마태26,14-25



"들어라!"

-행복하여라, 주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사람!-



들음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합니다. 우리 그리스도교는 들음의 종교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들음은 영성생활의 기초입니다. 대화의 전제조건도 잘 듣는 것이요 주님과의 대화인 기도에서도 주님의 말씀을 잘 듣는 것이 우선입니다. 잘 듣기 위한 침묵이요 잘 들어야 순종도 겸손도 뒤 따릅니다. 얼마전 읽은 다음 내용에 전적으로 공감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체험한 바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하느님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오직 한 가지, 듣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신앙고백이 “이스라엘아, 들어라!”(신명6,4)라는 요구로 시작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자신의 동포들에게 언제 어디서도 순종을 요구한 적이 없다는 것 역시 분명히 우연이 아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이렇게 외치셨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들어라!”(마르4,9)’


무슨 반문이 필요하겠는지요. 수도승의 성독인 렉시오 디비나 역시 ‘들음-묵상-기도-관상’의 구조로 전개됩니다. 분도규칙서 역시 맨 처음 ‘들어라!’로 장엄하게 시작됩니다.


“들어라! 오 아들아, 네 스승의 가르침에 네 마음의 귀를 기울이며 어진 아버지의 훈시를 기꺼이 받아들여 보람있게 채움으로써, 불순종의 나태로 물러갔던 그분께 순종의 노고로 되돌아 가거라.”(성규;머리1,1-2).


제가 요즘 청력이 약해져서 어려움이 만만치 않습니다. 마음의 귀, 사랑의 귀라도 활짝 열어 온마음, 온몸으로, 하느님처럼 전존재가 귀가 되어 들어야 겠다는 다짐을 하곤 합니다. 


오늘 제1독서 이사야서는 어제 ‘주님의 종’의 둘째 노래에 이은 ‘주님의 종’의 셋째 노래입니다. 여기서 주님의 종은 제자의 귀와 혀를 지닌 자로 묘사됩니다. 원래 히브리어에서 ‘제자’란 단어는 ‘가르치다’라는 단어의 수동태입니다. 즉 제자는 가르침을 받는 자로 하느님의 말씀에 그의 귀가 열린 자를 뜻합니다. 이사야서의 주님의 종 역시 참 제자의 전형입니다.


“주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제자의 혀를 주시어 지친 이를 말로 격려할 줄 알게 하신다. 그분께서는 아침마다 일깨워 주신다. 내 귀를 열어 주시어 내가 제자들처럼 듣게 하신다.”(이사50,4).


흡사 예수님은 물론 주님의 제자들인 우리의 고백처럼 들립니다. 이런 귀(耳)와 입(口)을 왕(王)처럼 지닌 이가 성인(聖人)입니다. 진정 행복한 주님의 제자들입니다. 거룩할 성(聖)자의 의미가 참 심오합니다. 이어지는 말씀도 은혜롭습니다. 제자들의 자세에 대한 언급입니다.


“주 하느님께서 내 귀를 열어 주시니, 나는 거역하지도 않고 뒤로 물러서지도 않았다. 나는 매질하는 자들에게 내 등을, 수염을 잡아 뜯는 자들에게 내 뺨을 내맡겼고,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이사50,5-6).


제자인 종은 공격자에 어떤 저항도 하지 않습니다. 그는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지 않습니다. 이것은 약함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위대한 내적 힘과 평화를 뜻합니다. 주님의 참 제자는 바로 이런 위대한 내적 힘과 평화를 지닌 자라는 것이며 예수님이 바로 그런 분이셨습니다. 바로 그 다음 구절이 그 비밀을 해명해 줍니다.


“그러나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나를 의롭다 하시는 분께서 가까이 계시는 데 누가 나에게 대적하려는가?---보라,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 주시는데 나를 단죄할 자 누구인가?”(이사50,7ㄱ.8ㄱ.9ㄱ).


누가 뭐래도 하느님께서 보아주시고 알아주시고 배경이 되어 주시니 내적 안정과 평화입니다. 참 대단한 제자의 내공입니다. 어떤 모욕과 폭력도 제자의 내적현실을 바꿀 수 없습니다. 궁극적으로 하느님이 그의 편이기 때문입니다. 모욕들은 참이든 거짓이든 둘 중 하나일 것입니다. 참이라면 그것은 모욕이 아니라 사실의 진술일 것이며, 거짓이라면 무시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떤 경우든 폭력으로 응답하는 것은 자신의 약함과 불안정을 보이는 것입니다. 저항이 있다면 오직 비폭력적 사랑의 저항뿐입니다.


우리는 바로 오늘 복음의 예수님에게서 이런 참 제자로서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반면 제자직에 실패한 전형적 인물인 배신자 유다를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의 탄식에 유다에 대한 깊은 안타까움이 배어 있습니다.


“사람의 아들은 자기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대로 떠나간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마태26,24).


예수님께서는 유다를 저주하지도 단죄하지도 않으시고, 오직 그가 처한 불행한 상황을 확인하실 따름입니다. 평소 하느님의 말씀을 깊이 경청하셨던 예수님이기에 이런 초연한 자세임을 깨닫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이 말씀 안에는 유다의 배신의 행위가 그의 책임임이 암시되고 있습니다. 


하느님 탓이 아니라 유다의 탓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예수님의 제자답게 늘 주님의 말씀을 귀기울여 듣고 말씀대로 살았다면, 하여 그의 자유의지를 하느님의 뜻에 따라 제대로 발휘했다면 결코 스승 예수님을 배신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유다의 배신 역시 우리 모두의 가능성으로 우리의 경각심을 일깨워줍니다. 


과거 없는 성인은 없고 미래 없는 죄인도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귀기울여 들을 때 회개의 실천에 이어 늘 새롭게 열리는 구원의 현실입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주님의 말씀을 잘 듣고 실행하는 주님의 참 제자가 되어 살게 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은 내 발에 등불, 나의 길을 비추는 빛이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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