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27.목요일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                                                           1요한1,1-4 요한20,2-8

 

 

 

'사랑의 사도'가 됩시다

-‘무지의 너울’을 날로 얇게 해주는 사랑의 수행-

 

 

 

어제 오전 반가운 분들이 주님의 집 수도원을 찾았습니다. 제 가문중 가장 어른이신 97세 큰 댁 사촌 사도 요한 형님과 두 조카 남매분입니다. 사촌형님이지만 아버지뻘 되는 분이시고 큰 딸 글라라 조카도 저보다 나이가 많아 존대말을 씁니다. 멀리 미국에서 연로하신 부모님과 잠시 지내러 온 효심 깊은 글라라 조카입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한달 조금 못되게 지내봅니다. 부모님이 많이 연로하셔서 다른 곳에는 아무 것도 알아 보려고도 하지 않고 지냈습니다. 같이 시간 보내는 것이(quality time) 제일이라고 우선 순위로 했습니다. 신부님의 많은 기도 부탁드립니다.”

 

미사예물과 함께 받은 소박한 편지글입니다. 사랑은 함께 하는 것입니다. 우리와 늘 함께 계신 주님처럼 얼마 동안이라도 사랑하는 노부모님과 함께 지내러 온 조카님입니다. 

 

오늘은 성 요한 사도 복음 사가 축일입니다. 전통적으로 요한 사도는 요한복음의 저자이자 사랑의 사도로 간주됩니다. 또 전통은 요한은 사도들중 오직 유일하게 순교하지 않고 천수를 누린 분이라 말합니다. 새벽 강론 쓰는 이제야 어제 다녀 가신 사도 요한 형님의 축일을 상기하고 불야불야 축하드리는 마음으로 서두에 인용했습니다. 

 

연로하실수록 어린이처럼 너그럽고 착해지셔서 만날 때 마다 꼭 사랑의 감사금을 선물하시는 형님이십니다. 이 또한 주님 사랑의 표현입니다. 떠나실 때는 고백성사도 보시고 보속으로 1년치 ‘말씀 처방전’(루카1,28)도 받아가셨습니다. 성 요한 사도를 닮아 장수하시면서도 몸도 마음도 건강하시고 사랑도 많아지시니 하느님의 은총을 가득 받은 형님이십니다. 

 

사랑이 답입니다. 사랑의 사도 요한은 우리 믿는 이들의 모범입니다. 우리 모두 ‘사랑의 사도’가 되라고 불림 받았습니다. 주님 안에서 형제들과 충만한 기쁨의 사랑의 친교를 나누는 이가 사랑의 사도입니다. 

 

참으로 주님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고 누구보다 주님을 사랑했던 요한 제자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에서 성모님과 함께 자리를 지켰던 분이고 부활후 호수에서 고기잡이 하실 때도 맨먼저 주님을 알아보았던 요한이었습니다. 이 모두가 사랑의 표현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애제자 요한의 사랑의 탁월함이 그대로 입증됩니다. 마리아 막달레나가 전한 빈무덤 소식에 놀란 요한은 무덤을 향해 전력질주하는데 베드로보다 앞섭니다. 이 또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수제자 베드로가 먼저 무덤에 들어간 후 무덤에 들어가는 애제자 요한입니다. 이 또한 사랑의 배려입니다. 수제자와 애제자가 경쟁하지 않고 평화롭게 서로 보완, 공존하는 사랑의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사랑의 사도 요한입니다. 주님의 전부를 사랑했고 주님의 전부를 알았던 요한입니다. 제1독서 요한의 편지가 이를 입증합니다. 그대로 오늘의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이신 주님을 선포하는 요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처음부터 있어 온 것, 우리가 들은 것, 우리가 눈으로 본 것, 우리가 살펴보고 우리 손으로 만져 본 것, 이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 그 생명이 나타났습니다. 우리가 그 생명을 보고 증언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영원한 생명을 선포합니다.”

 

참으로 주님을 사랑했기에 오관 모두를 통해 주님을 속속들이 체험한 요한은 생생히 실감나게 주님을 증언합니다. 영원한 생명이신 주님과 사랑의 친교를 통해 아버지와 또 교우들과 친교를 나눔으로 충만한 기쁨을 누리도록 우리 모두를 인도하는 요한입니다. 오늘 복음의 마지막 두 구절에서도 요한의 주님 사랑이 환히 드러납니다.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곳에 개켜저 있었다. 그제야 무덤에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수제자 베드로에 이어 무덤에 들어가 상황을 보는 순간 전광석화電光石火, 보고 믿었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믿었습니까? 사랑의 눈이 번쩍 열리는 순간 주님의 부활을 믿은 것입니다. 수제자 베드로는 이 경지까지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이런 주님 사랑 역시 은총임을 깨닫습니다.

 

어제 복음 주석을 참고하던 중 참 깊고 재미있는 내용이 있어 나눕니다. 예전에도 읽은 적이 있지만 어제 다시 읽으니 마치 처음 읽는 것처럼 새롭게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예수님을 모세에 비교한 것입니다.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의 얼굴을 뵙고 난 후, 얼굴의 광채로 사람들이 눈부셔서 볼 수 없게 되자 자기 얼굴을 너울로 가렸습니다. 예수님 역시 눈부신 당신 얼굴을 가리고자 평소에 너울을 쓸 수 뿐이 없었고 이제 부활하셔서 직접 하느님을 뵙게 되었으니 너울을 벗어놔도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복음의 무덤 한곳에 곱게 개켜져 있는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이 평소 예수님의 빛나는 얼굴을 가렸던 너울의 상징이라는 기상천외한 영적 해석이었지만 저는 공감했고 매우 기뻤습니다. 

 

아마 우리는 모두 각자 너울을 쓰고 있는지 모릅니다.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빛나는 얼굴을 가리고 있는 ‘무지의 너울’입니다. 예수님을, 하느님을 사랑해가면서 알아갈수록 점차 얇아져 가는 무지의 너울이요 마지막에는 완전히 사라져 주님을 직접 뵈옵게 된다는 것입니다. 

 

며칠전 어느 부자분이 성탄 인사차 저에게 들렸습니다. 함께 한 사랑하는 착한 아들이 월급 받은 돈으로 먼저 번은 커피를 사왔고 이번에는 케이크를 선물했고, 이어 두분에게 나눈 덕담입니다.

 

“형제님은 4/5는 성인이 되었고 이제 남은 동안 1/5만 잘 지내면 성인이 됩니다. 아드님은 1/5성인이라 앞으로 남은 동안 4/5를 잘 살아야 성인이 되니 그때까지 잘 살아 성인이 되십시오.”

 

요지의 덕담이었습니다. 살아갈수록 성인이 되어가는 여정이라면, 그와 더불어 얇아져 가는 무지의 너울일 것입니다. 무지의 너울을 얇게 하여 마침내 성인이 되게 하는 것은 한결같은 사랑의 수행뿐입니다. 무지의 너울이 완전히 걷혀 하느님의 얼굴을 뵈옵는 경지를 바오로 사도가 잘 보여줍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어렴풋이 보지만(무지의 너울로),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것입니다. 내가 지금은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때에는 하느님께서 나를 온전히 아시듯 나도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가지는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1코린13,12-13).

 

아, 이 사랑 실천의 항구한 수행이 우리를 성인이 되어 마침내 무지의 너울을 완전히 거둬버리고 하느님을 얼굴을 직접 뵈옵게 할 것입니다. 하여 하느님도 나도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주님 사랑의 미사은총이 우리 무지의 너울을 나날이 얇게 해 주시어 주님 얼굴을 점차 뚜렷이 보이게 해 주십니다. 미사후 때로 형제들의 얼굴이 은총으로 환히 빛나는 모습에서 무지의 너울이 많이 얇아졌음을 실감하기도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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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안젤로 2018.12.27 07:37
    사랑하면 사랑스러워지고
    그런 사랑을 하면 할수록
    닮아가는 진리를 주님을 통해 주님을 닮아갑니다
    그런 사랑으로 무지의 너울을 나날이 얇아지면서
    주님 얼굴이 보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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