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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기 전에 요한 8,1-11을 최소한 집중해서10번은 읽고 시작하자. 그렇지 않으면 너는 이 글도 지나가는 옆집 수다 정도로 듣고 흘릴테니 말이다. 너 자신을 위해서 그리하면 좋다. 이른 아침부터 나는 성전으로 갔다. 그리고 모여든 이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했지. 무엇을? 죄가 무엇인가를.. 그런데 마침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현장범이라고 하는 여자를 끌고 와서는 자랑스럽게 이야기 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자인데 모세는 이런 여자는 돌로 쳐 죽이라고 했다고 하며 내 의견을 물었다. 나에게 스승이라고 불러가면서까지 그들의 속셈을 감추지만 감추어지지않는 어리석음이었다. 이미 자신들의 불변하는 답을 고집스럽게 먹고 살면서 새삼스럽게 내 생각을 묻는 그들이다. 내 의견을 들을 귀가 없는 그들에게 답하기를 포기하고 나는 땅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똑똑하다는 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하는 내 이야기를 오히려 땅이, 흙이, 하늘의 새가, 바다의 물고기가, 자연속의 작은 존재들이 더 잘 알아듣기에 나는 가끔 그들을 향해 설교하곤 했다. 나는 땅에게 이렇게 속삭였다. ㅡ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다. 자신이 죽이고자하는 저 여자가 바로 자신인것을 모른다. 사람들은 자기본질을 모르고 있어서 눈에 보이는 가아에 속고, 죄에 속고 그래서 참 행복을 잃어버렸다. 하느님 닮은 아름다운 본질, 모두가 하나의 본질인 것을 깨닫기 까지 얼마나 많은 세월이 걸릴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살인이 벌어질지 .. 까마득하구나. ㅡ 그리고 나는 땅 바닥에 이렇게 낙서를 했다. ㅡ 너희들은 모두 한 형제들이다. 너희는 하나의 본질이다.ㅡ 내 낙서에 대해 어떤 이들은 ㅡ자비ㅡ 라고 썼을 거라고 떠들어댄다. 참으로 똑똑한 답이다. 그러나 아니다. 사람세상의 자비와 나의 자비의 차이를 몰라서 하는 소리다. 사람세상의 자비는 고작해야 베푸는 자비다. 죄 안지었다는 인간이 죄 지은 인간에게 베푸는 용서이지. 그러나 나는 말한다. 하느님외에는 누구도 선하지 않다. 이말은 가아는 누구라도 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말이다. 가아를 모르고서는 나의 이 말을 알아들을 재간이 없을 것이다. 결국 너희들은 누구도 단죄할 자격이 없는 가아라는 사실이다. 누군가가 남으로 보일 정도로 눈이 멀은 상태라면 너는 단죄할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가아의 옷을 깨닫기 전에는 진리와는 상관없는 장님인것이다. 나의 자비는 돌을 던질 의인도 돌을 맞아도 되는 죄인도 없는 사랑이다. 곧 본질이다. 그래서 나는 나의 말 한마디로 돌을 던지고 싶어하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도 살인의 어리석음에서 잠시 구하고 여인도 구한 것이다. 여인만을 구하기 위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혼내준 사건이 아니라는 말이다. 나에게는 죄지었다는 여인이나 단죄하고자하는 이들이나 하나의 존재이다. 그래서 누구도 망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답을 재촉하는 이들에게 나는 말했다. ㅡ너희가 그렇게나 원하는대로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여라. 다만 너희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시작해라. ㅡ 그들이 예상했던 답들 안에는 없는 나의 답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 둘 떠나갔다. 오래 살았으니 죄는 더 많이 쌓였고 그래서 나이 많은 이들부터 돌을 버리고 떠난 것 뿐이다. 육체라는 가아를 옷입고 사는 인간이 어찌 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느냐? 가아는 욕망에서 태어난 육체이고 그 육체라는 그릇안에는 성격 신념 지식등등의 세상욕망들로 가득하다. 죄는 무엇이냐? 육체라는 물질속에 담긴 내용물들이 일으키는 연기같은 것에 불과하다. 죄를 무엇에 비유할까? 방귀와 같다. 무엇을 먹었느냐에 따라서 얼마나 많은 음식을 먹었느냐에 따라서 냄새가 다르고 횟수가 다르고 강도가 다르고 소리도 다르다. 방귀를 끼고도 안 낀척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소리 안나는 방귀를 만드느라 애쓰는 이도 있고 아무도 없는 곳에서만 방귀를 뀌는 사람도 있고 대놓고 자랑스럽게 끼는 사람도 있다. 밤에 잠자는 중에 이불속에서만 나오는 방귀라서 자신은 방귀를 안 뀐다고 착각하는 이들도 많다. 고기를 많이 먹는 이들의 방귀와 야채만 먹는다는 이들의 방귀는 냄새도 다르다. 그러나 방귀는 곧 사라진다. 누가 방귀를 끼었느냐고 찡그리다가도 곧 잊어버린다. 죽일듯이 끝까지 수색하지는 않는다. 웃고 지나가 버리지. 왜? 방귀는 고작해야 육체속의 일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죄가 그렇다. 죄라고하는 것을 뚜껑을 열어봐라. 무엇이 보이느냐? 손에 잡혀서 묶을 무엇이라도 있더냐? 죄라는 말은 인간의 신념이다. 그리고 그 죄라는 것의 뒤를 밟아들어가다보면 결국 마음속의 욕망이고 더 깊이 들어가보면 가아라는 육체의 일이다. 마음이 일으키는 환상같은 것이다. 이 환상에 빠져보지 않아서 죄가 없다고 말할 자가 누구냐? 죄는 방귀처럼 냄새도 다르고 크기도 다르고 강도도 다르고 색깔도 다르지만 사라진다. 그런데 사람은 그 죄라는 방귀에 이름을 붙이고 벌을 주고 사형도 시키고 혹은 스스로 자책하기도 하고 자살도 한다. 그렇게 육체라는 가아를 벌준다고 사람이 달라지더냐? 아니다. 달라질 수 없다. 방귀를 한번 끼고 다시는 안끼는 것이 아니듯이 마찬가지다. 음식을 먹고 사는 육체가 죽지 않는 한 방귀는 반복된다. 그렇듯이 죄도 그렇다. 가아를 깨닫기 전 까지는 죄는 벗어나지 못한다. 욕망이 아비인 육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죄 짓는 것이 문제가 아니고 다만 죄를 통해 깨달으면 된다고. 죄를 안짓게 해달라고 나에게 기도랍시고 하는 사람은 죽여달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육체가 없어져야 하니 말이다. 그러니 죄를 안지으려고 헛고생하지말고 너의 아름다운 본질을 깨닫고자 촛점을 맞춰라. 너 자신이 누구인가를 궁굼해하고 답을 찾으라는 말이다. 죄 지었다는 사람을 잡아다 두들겨 패주거나 분노가 심해서 사형을 시킨다고 하자. 그렇게 누군가를 죽이고나면 해결이 되더냐? 아니다. 아니다. 절대 해결이 아니다. 너의 분노로, 세상의 분노로 잔인하게 죽여서 시체로 남은 누군가의 육체를 보면서 무엇을 느끼겠느냐? 공허감이다. 마귀에게 속은 공허감에 또다시 시달린다. 너의 마음에서 ㅡ 죽이고 싶다, 패주고 싶다, 앙갚음하고 싶다...ㅡ라고 감정을 속삭이는 것은 마귀이다. 마귀는 서로 죽이고 죽이다가 마침내는 자신을 죽이는 낭떠러지로 유인해왔다. 그러니 누군가 참으로 죽이고 싶어서 미치겠거든 조용히 눈을 감고 숨을 크게 한 번 쉬고 나서 나를 불러라. ㅡ 주님, 도와주십시오.ㅡ 이 한마디만 해라. 내가 너대신 그 분노를 갚아줄것이다. 너의 손에 피를 묻히지 마라. 나에게 넘겨라. 너도 살리고 너의 원수도 살리는 길을 내가 알고 있다. 앙갚음은 더 강한 앙갚음을 키워낸다. 세상은 그래서 죽어가는 중이다. 너희들이 말하는 죄의 근원은 욕망이라는 마음인데 엉뚱하게 그 마음을 담았다는 그릇인 육체가 형벌을 받느라 고생한다. 죄는 손주가 지었는데 가족이라는 그릇때문에 할 아버지가 사형을 받는다면 손주가 달라지느냐? 모순 투성이 세상이다. 가아 세상이라서. 간음은 혼자 하느냐? 남녀라는 육체가 만드는 환상이다. 그럼에도 현장범이라고 여자만 붙들려 왔다. 그리고 그 여자를 죽여야한다고 돌을 집어든 이들은 남자들이다. 남자들의 욕망이 만든 죄를 남자들이 죽이겠다고 돌을 치켜들었는데 돌에 맞아 죽어야하는 것은 여자구나. 본질에는 없는 남성이라는 이름과 여성이라는 이름이다. 육체를 가진 덕분에 만들어진 환상이고 쾌락을 부르는 이름이다. 나와 친해질수록 성을 벗어나 자유로워진다. 모세는 죽이라고 명령한 것을 나는 단죄조차도 하지 말라고 말한다. 나는 율법을 완성하러 왔다. 사랑이다. 본질이다. 모세가 말한 법들은 사람의 완고함때문에 주어진 불완전한 세상 법에 불과하다. 나는 이제 그 세상 욕망의 법을 부수고 사랑을 세운다. 너의 가아를 깨닫지 못하는 한 구원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이제는 본질을 드러냈다. 사람이 스스로 깨닫기에는 무수한 세월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세상은 발 디딜 틈이 없을 만큼 악이 짙어졌기 때문이다. 세상의 빛이라는 것이 어둠이기 때문이다. 알아들을 귀가 있는 이들은 알아듣고 깨달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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