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희생자 304인을 기억하는 광화문 미사 (2015년 5월 6일 수요일. 부활 제5주간 수요일)

by PACOMIO posted May 2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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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 사도 15,1-6 <할례 문제 때문에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원로들에게 올라가기로 하였다.>

복음: 요한 15,1-8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제목: 제 아버지는 박근혜 대통령을 좋아하십니다.


  제 아버지는 박근혜 대통령을 좋아하십니다. 1998년 박정희의 딸 박근혜를 국회의원 박근혜로 만들어준 대구 달성군의 유권자셨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천주교 신자였던 박근혜 후보가 지역구내 성당을 돌면서 선거 운동을 할 때 일입니다. 당시 본당에서 총회장을 하시던 아버지께 박근혜 후보가 다가와서 손을 잡으며, ’저는 율리안나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라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너무 감동 받으셨어요. 참 좋아하셨습니다.


  아버지는 그밖에도 박근혜 대통령을 미소짓게 할만한 정치적 신념을 많이 가지고 계십니다. 예를 들어, 김대중 대통령은 빨갱이, 노무현 대통령은 등신, 정의구현사제단은 정신나간 사제들, 사대강 개발 반대 세력들은 종북 좌파, 세월호 시위 참가자들은 대한민국 전복을 꿈꾸는 불순세력... 주로 이런 견해들입니다. 그런데 제 고향 경북 대구 지역에 가면 제 아버지와 비슷한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아주 흔합니다. 워낙 이런 분위기가 지역에 깔려 있어서, 저는 고향에 갈 때마다 솔직히 늘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세월호 유가족과 추모객을 경찰 차벽이 가로막았듯이, 정치 이슈만 나오면 경상도 제 가족과 저 사이에 불통의 차벽이 세워집니다. 반공투사 같은 어르신들의 막말은 캡사이신보다 더 독하고, 젊은이들의 정치적 무관심은 물대포보다 더 강력합니다. 변명같지만 그래서 저는 가족을 사랑하면서도 이런 문제에 대해 아버지와 어떻게 대화를 하고 한마음이 될 수 있을지 어린 시절 일찌감치 포기했습니다. 성령의 역사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령의 바람이 부는데 27년이 걸렸습니다.


  지난 주일에 아버지께서 수도원에 오셨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어린이날을 맞아서 어제까지 저와 함께 지내셨습니다. 어린이 보러 오셨지요. 그런데 아들 보는 기쁨만 생각하시다가 그만 제 가슴에 달려있는 노란 리본을 보시고는 그만 충격에 빠지셨습니다. 광화문에서 세월호 미사도 주례하는 괴수라고 말씀 드리니까 할 말을 잃으셨습니다. 아버지를 이해시켜 드리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이제 저도 나이를 먹고 했으니까 조금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좀 용기도 생깁니다. 그래서 대화를 많이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알고 있는 것과 아버지께서 알고 계신 것이 참 많이 달랐습니다. 제가 듣다가 듣다가 질문했습니다.'아버지 지금 알고 계신 거 다 어디서 알게 되셨습니까? 그러자 아버지께서 '티비에서 봤다, 신문서 읽었다, 사람들이 그러더라' 하셨습니다. 제가 또 질문했습니다. '아버지 그러며는 신문은 어떤 신문을 보십니까?’ '조.선.일.보', 아버지 답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저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지 실마리가 보이는 듯 했습니다. 그리하여 , '아버지 정말 진실을 알고 싶으세요?' 했더니 '그래 말해봐라' 하셨습니다. 제가 일제강점기부터 시작을 했습니다. 한국근현대사를 죽 거쳐가지고 마지막 골인지점이 세월호 시위 현장이었습니다. 앞의 것을 모르면 뒤의 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 다 아시는 역사이지만 저는 철저하게 민초의 입장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제 아버지는 을중의 을입니다 한 번도 갑 근처에 가보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철저하게 갑의 논리에 살고 계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칠십 평생 살아 오시면서 진실이라고 굳게 믿어 오신 것들을 아들인 제가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아버지 그동안 정부권력에 속으신 거에요. 아버지, 나쁜 언론들에 세뇌 받으신거에요' 라고 호소했습니다. 아버지는 너무 당황하시고, 아버지 생각이 다 틀렸다고 하니까 너무 놀라셨습니다. 저는 제가 이런다고 아버지가 바뀌시지 않을텐데 괜히 정신적 혼란감과 자책감만 심어 드린 것이 아닌가 죄송한 생각이 참 많이 들었습니다. 내가 참 불효자구나. 사시면 얼마나 더 사신다고 내가 이럴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짜로 성령의 역사에 맡기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요즘 전례 하면서 부활시기에 매일 듣는 독서 사도행전이 저에게 위로를 줍니다. 성령께서 어떻게 불통을 소통으로 바꾸어 가시는가를 보여주십니다. 구약 율법의 준수가 의무라고 믿던 예루살렘 신자들이 안티오키아 교회 신자들을 보고 충격을 받습니다. 신자들의 기본중의 기본이 할례입니다. 우리에게 신자들의 기본이 세례인 것처럼. 그런데 할례를 받지 않고 신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 중의 누가 안티오키아에 가서, '모세의 관습에 따라 할례를 받지 않으며는 여러분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라고 말하면서 율법을 강요했습니다. 이방인 신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그들은 율법의 세세한 규정을 알지도 못했고 할례를 받지 않았다고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사실 예수님을 따라 이웃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사랑을 하든말든 모세의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는 논쟁거리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시 유다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중대한 문제였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소위 예루살렘 공의회가 열립니다. 안티오키아 교회 신자 대표들과 예루살렘 교회 신자들이 이 문제를 검토하려고 모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들도 답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결과가 어땠습니까? 회의를 마치고 바오로와 바르나바가 안티오키아로 돌아갑니다. 그 때 사도들이 편지를 줍니다. 그 내용이 이렇습니다. '우리 가운데 몇 사람이 우리에게서 지시를 받지도 않고 여러분에게 가서 여러가지 말로 여러분을 놀라게 하고 정신을 어지럽게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먼저 사과 한 것입니다. 그리고 권위를 가지고 회의 결정사항을 말해 줍니다. 구원을 받느냐 못 받느냐 하는 문제는 아니지만, 어기게 되면 예루살렘 신자들에게 적어도 스캔들이 될 만한 규정이 있습니다. 문화적 충격을 받을 만한 것들이지요. 최소한 그런 것들은 좀 지켜달라고 합니다. 그것이 세가지입니다. 그런데 '성령과 우리가 결정했다'고 합니다. 자기들이 회의했는데 성령이 함께 결정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성경에 없는 말을 합니다. '우상에 바쳤던 제물과 피와 목졸라 죽인 짐승의 고기와 불륜만 멀리하라', 이것말고 다른 율법 규정은 안 지켜도 된다, 이런 결정입니다. 사도들이 구약율법을 넘어간 겁니다. 그때 그들은 성령 안에서 말한 것입니다. 증거가 어디 있습니까? 아무 증거 없지요. 증거가 뭐냐 하면 그로 인한 결과입니다. 두 교회가 화해합니다. 일치를 이룹니다. 그리고 깨닫습니다. 그 때까지는 예수님께서 구약율법을 이어가는 예언자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결정을 하면서 우리의 구원은 예수님 한 분 뿐이고, 그 분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나머지는 다 부차적인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성령의 인도입니다. 이렇게 자신들 안에서 활동하시는 성령의 인도를 믿고 상호 희생함으로써 공동체는 일치되었고 그리스도를 믿고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의 수가 세상 곳곳에 점점 커져갔습니다. 자칫 두 개로 쪼개질 뻔 했던 교회가 분쟁을 통해 성장했고 논란을 거쳐서 평화와 일치를 향해 나아갔습니다. 분쟁, 논란, 회의, 합의같은 인간적인 활동들을 하면서도 그들은 자신들이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있고 그리스도의 영께서 자신들의 말과 행동 속에 함께 한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왜냐? 그리스도의 죽음이 그들을 하나로 만들었고 그리스도의 부활로 그들은 사랑과 기쁨과 일치를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이 시대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특히 저는 프란치스꼬 교황의 모범을 보면서 복음대로 성령의 인도대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씩 체험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 인터넷신문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서 박문수 박사님도 고백하신 것 처럼, 저도 ‘교황덕에 옳고 좋은 일은 눈치보지 말고 즉각 실천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마음을 먹고 있던 중 세월호 참사가 터졌고 저는 너무나 두렵고 떨렸지만 수도원 형제들을 설득해서 수도원 마당에서 ‘세월호, 잊지 않겠습니다' 라는 피켓을 들고 사진을 찍고 인터넷에 올리고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고 마당에 노란 리본 도배를 했습니다. 솔직히 처음부터 우리 모든 형제들이 한마음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주도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모르고 피켓 드신 분도 있었습니다. 사진 찍히고 보니 세월호 피켓이었습니다. 하지만 점점 세월호 참사의 심각성을 깨닫고 유가족분들의 아픔을 진심으로 아파하는 형제들이 늘어났습니다. 저희 지금 열두 명 사는데 아홉 명이 여기 와 있습니다. 저희 관상수도원입니다. 보통 이런데 안 나옵니다. 매일 나오지 않습니다. 정말 큰 맘 먹고 나왔습니다. 나오라고 한 적 한 번 없습니다. 자발적으로 나왔습니다. 일년 전만 해도 우리, 회의 했습니다, 우리가 왜 이런 거 해야 하느냐고. 저가 이런 걸 경험하면서 부족한 제 안에서 성령이 활동하신다는 걸 깨닫습니다. 그러자 그 중 한 형제는 (지금 여기 나와 있습니다) 자진해서 유민아빠와 함께 무기한 단식농성을 하겠다고 나왔습니다. 저 정말 걱정했습니다. 정말 죽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오일만에 끝났습니다. 수도원을 찾아 오던 소위 열심한 신자들이 뒤에서 수근대기 시작했습니다. 형제들도 불안해 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너무 앞서 나가는 거 아니냐, 사회가 이럴수록 교회가 이럴수록 우리는 균형을 찾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고요히 항구에 정박해 있던 수도원 배가 뒤뚱뒤뚱 흔들렸습니다. 저도 날마다 처음 해보는 일이라 항상 떨립니다. 우리가 복음을 제대로 살고 있는건지, 또 사회 현실을 제대로 알고 있는건지, 이러다가 나도 모르게 정말 좌파가 되는 건 아닌지... 날마다 불안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일년을 흔들흔들하면서 살아 왔습니다.


  아직도 세월호 진실규명은 요원하고 정부 권력의 노골적 방해는 날마다 끝이 없습니다. 악은 점점 커져가고 우리 안에서는 선도 점점 커져 갑니다. 밤이 깊어갈수록 새벽이 밝아 왔습니다. 저는 이것이 성령의 증언이라 생각합니다. 청와대에서 아무리 꿈적 안한다고 해서 그것이 악의 승리의 표시가 아닙니다. 여기에 오는 사람이 늘어나는 거, 그리고 이런 말을 듣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그리고 저처럼 떨던 사람들이 여기에 많아지는 것이 성령의 증거입니다. 날마다 어두움을 체험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복음의 기쁨을, 그리고 박해속에서 피어나는 부활의 기쁨을 날마다 체험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결합되어 고통받는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하여 우는 사람들이 날마다 늘어나고 있음을 봅니다.


  저는 이런 기적을 어제 아침 아버지를 통해서도 발견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제가 생각지도 안했는데,'최신부, 이제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하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애써 기쁨을 감추며 두 가지 말씀을 드렸습니다. 첫째, 당장 조선일보을 끊고 다른 신문 보시기를 부탁드렸습니다. 둘째, 아버지 연세 많으시니까 하실 일 없습니다, 집에서 세월호 유가족들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라고 부탁드렸습니다. 이틀 동안 아버지 마음을 몹시 아프게 해 드렸지만 아버지께서는 성령을 통해서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부활하시는 파스카의 신비의 길로 인도되셨습니다. 이런 사랑의 기적을 날마나 체험하도록 세월호의 표징을 통해서 믿는 우리들의 눈을 열어 주셔서 하느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참으로 주님은 부활하시어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알렐루야!


<동영상 보기>
http://cafe.daum.net/cmsmonk/coGT/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