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9주간 목요일
1독서: 2티모 2,8-15 <하느님의 말씀은 감옥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분과 함께 죽었으면 그분과 함께 살 것입니다.>
복음: 마르 12,28ㄱㄷ-34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제목: 설전을 멈추고 서로를 포용하는 교회
1. 두 갈래의 뿌리, 하나의 줄기
수 세기 동안 교회의 영성을 지탱해 온 성 바실리오 성인은 수도 공동체가 왜 존재하는지 그 이유를 복음의 가장 큰 두 가지 계명에서 찾았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첫째 계명은 우리를 세상의 소음에서 벗어나 침묵으로 이끌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둘째 계명은 우리가 홀로 고립되지 않고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게 합니다(마르 12,29-31 참조). 이 두 계명은 서로 다른 의무가 아닙니다. 참된 신앙이라는 하나의 나무를 떠받치는 두 갈래의 뿌리입니다. 하느님을 향한 깊은 내면의 침묵이 없다면 이웃 사랑은 그저 인간적인 봉사에 그치기 쉽고, 반대로 이웃을 향한 구체적인 연대가 없다면 하느님 사랑은 관념적인 자기만족에 갇히고 맙니다.
2. 인내의 일꾼
사도 바오로는 차가운 감옥에 갇혀 죽음을 눈앞에 둔 외로운 처지에서도, 제자 티모테오에게 바로 이 사랑의 일꾼이 되어 달라고 간곡히 당부합니다. 사도는 비록 자신은 쇠사슬에 묶여 있을지언정 "하느님의 말씀은 감옥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2티모 2,9)라는 굳은 확신이 있었습니다. 말씀이 지닌 위대한 생명력 때문입니다. 한겨울 단단히 얼어붙은 땅속에서도 나무의 수액은 보이지 않게 흐르며 봄을 준비하듯이, 박해와 고난의 장벽도 하느님 나라의 진리가 뻗어나가는 것을 결코 막을 수 없습니다. 참된 일꾼은 환경을 탓하지 않습니다. 복음을 위해 기꺼이 고난을 견디어 내는 인내(2티모 2,10 참조)를 통해, 하느님 말씀의 생명력을 삶으로 스스로 증언합니다.
3. 설전을 넘어선 삶의 증언
그러나 오늘날 공동체의 현실은 종종 본질을 흐리는 무익한 논쟁으로 얼룩지곤 합니다. 사도 바오로가 엄숙히 경고하듯, 말다툼과 설전은 아무런 유익이 없고 듣는 이들을 파멸로 이끌 뿐입니다(2티모 2,14 참조). 화려한 말재주로 상대를 굴복시키려는 시도는 하느님의 진리가 아니라,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려는 위선일 뿐입니다. 참된 신앙은 교리적인 논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삶 전체로 사랑을 실천할 때 완성됩니다.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사랑이 더 낫다(마르 12,33 참조)는 율법 학자의 깨달음처럼, 성전에서 바치는 전례는 삶의 현장에서 이웃을 향한 온유함과 자비로 이어져야 합니다. 우리는 말의 승리자가 아니라 삶의 증언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 앞에서 부끄러울 것 없는 일꾼(2티모 2,15 참조)으로서, 무익한 설전을 버리고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전합시다. 내 곁의 형제자매를 온 마음으로 포용하고 사랑하는 실천만이, 묶이지 않는 하느님의 말씀을 세상에 온전히 드러내는 유일한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