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4주간 화요일
1독서: 호세 8,4-7.11-13 <그들이 바람을 심었으니 회오리바람을 거두리라.>
복음: 마태 9,32-38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제목: 부서진 마음에 머무는 착한 목자의 눈물
1.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일상의 고단함과 거짓 위로
인간은 누구나 삶의 여정에서 마음 한구석이 텅 빈 듯한 쓸쓸함을 마주합니다.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일들 앞에서, 때로는 당장 내일을 알 수 없는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내기도 합니다. 이러한 막막함과 고충 속에서 우리는 종종 눈에 보이는 즉각적인 위안을 찾으려 사방으로 헤매고는 합니다. 세상이 제시하는 물질적 풍요나 인간적인 권력, 혹은 내 불안을 잠재워 줄 무언가를 은과 금으로 정성스레 빚어내며 그것이 나를 구원해 줄 것이라 믿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배제한 채 인간의 야망과 조급함으로 세운 성벽은 그리 오래가지 못합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호세아 예언자는 주님의 준엄한 목소리를 통해 인간이 빚어낸 허무한 우상의 실체를 명확히 고발합니다. "그들은 은과 금으로 신상들을 만들었지만 그것은 망하려고 한 짓일 뿐이다."(호세 8,4) 하느님의 뜻을 묻지 않고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정성을 저버린 채, 눈앞의 안위만을 위해 제단을 많이 만들어 보았자 그것은 도리어 스스로를 가두는 죄짓는 제단이 될 뿐입니다. 삶의 결핍을 채우려 하느님이 아닌 헛된 바람을 심는 이들에게 돌아오는 결말은 냉혹합니다. "그들이 바람을 심었으니 회오리바람을 거두리라. 줄기에 이삭이 패지 못하니 알곡이 생길 리 없다."(호세 8,7) 겉은 화려하지만 내적인 순종과 사랑의 열매가 없는 위선적인 신앙은 결국 우리를 더 깊은 갈증과 영적 파멸로 몰고 갈 뿐입니다.
2. 고통의 터널 속을 찾아오시는 신적 연민과 치유
인간의 이 어리석은 배신과 영적 굶주림을 채우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이 바로 참된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사람들은 마귀 들려 말못하는 사람 하나를 예수님께 데려옵니다. 죄와 악의 세력에 억압되어 자신의 고통을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고 혼자 끙끙 앓고 있는 인간의 비참한 상태를 대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닫혀 있던 혀를 풀어 주시어 다시금 하느님을 찬미하도록 이끄십니다. 주님의 구원 활동은 머나먼 하늘의 선언에 그치지 않고, 우리 일상의 온갖 병고와 허약함을 구체적으로 어루만지시는 가시적인 손길로 나타납니다.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던 주님의 시선이 머문 곳은 다름 아닌 지치고 쇠약해진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마태 9,36) 여기서 가엾은 마음이란 단순히 불쌍히 여기는 표면적 연민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온 존재가 흔들리는 듯한 창자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신적 자비이자, 인간의 고통을 당신의 것으로 완전히 떠맡으시는 깊은 연대감의 눈물입니다. 주님은 삶의 곤경에 처해 방황하는 우리를 결코 무관심하게 내버려 두지 않으시며, 목자 없는 양 떼처럼 기진해 있는 우리의 상처를 당신의 자비로 직접 치유하고자 하십니다.
3. 파스카의 기쁨을 향한 성소의 청원과 자원
예수님께서는 고통받는 이들을 모두 모아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행복으로 이끄시기 위해 제자들에게 가장 시급한 기도를 청하십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마태 9,37-38) 이 말씀은 단순히 먼 과거의 사도들에게만 내리신 당부가 아닙니다. 오늘날 죄의 그늘 아래서 시달리는 수많은 이들을 향해, 하느님의 가슴 아픈 자비를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길 일꾼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탄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우리의 온갖 허약함을 모두 고쳐주실 수 있도록, 세상의 밭에 당신의 신실한 일꾼들을 풍성히 보내달라고 수확의 주인님께 간절히 청해야 합니다. 나아가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방관하는 무관심에서 벗어나, 우리 자신이 직접 목자 없는 양들을 찾아 나서는 자비의 일꾼이 되겠노라고 주님 앞에 기꺼이 자원해야 합니다. 헛된 우상을 허물고 주님의 자비로운 마음에 온전히 응답할 때, 우리는 비로소 이번 미사의 본기도 내용처럼 타락한 세상을 당신 수난으로 다시 일으키신 성자의 구원 역사를 마주하게 됩니다. 고통의 터널 끝에 있는 주님의 밝은 빛을 바라보며, 우리는 죄의 억압에서 완전히 벗어나 파스카의 기쁨을 몸과 마음으로 생생히 체험하고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삶으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