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4주간 수요일
1독서: 호세 10,1-3.7-8.12 <지금이 주님을 찾을 때다.>
복음: 마태 10,1-7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제목: 마음의 밭을 깨뜨리는 영혼의 쟁기질
1. 풍요가 독이 될 때
이스라엘은 무성한 포도나무였습니다. 열매가 많을수록 제단도 늘어났습니다. 땅이 좋아질수록 우상의 기둥도 화려해졌습니다. 하느님이 주신 축복이 오히려 독이 되었습니다. 물질적 풍요 속에서 그들의 마음은 갈라졌습니다.(호세 10,2 참조) 갈라진 마음은 하느님과 세상을 동시에 쥐려는 탐욕입니다. 외적인 번영에 안주할 때 영혼은 서서히 굳어갑니다.
하루를 성실히 살고도 문득 막막함이 밀려올 때가 있습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는데 결과가 보이지 않아 지치기도 합니다. 겉으로는 아무 일 없는 듯 웃지만 속으로는 혼자 끙끙 앓으며 버텨냅니다. 열심히 채우려 할수록 오히려 깊은 피로감만 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그랬습니다. 그들은 눈앞의 풍요에 눈이 멀어 참된 평화의 주인을 잊었습니다.
2. 베텔에서 벳 아웬으로
과거 야곱은 돌베개를 베고 자던 광야에서 하느님을 만났습니다. 그곳을 하느님의 집이라는 뜻의 베텔이라 불렀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그 거룩한 곳에 황소 우상을 세웠습니다. 예언자 호세아는 그곳을 더 이상 베텔이라 부르지 않습니다. 대신 죄악의 집, 허무의 집이라는 뜻의 벳 아웬으로 고쳐 부릅니다.(호세 10,8 참조) 하느님의 집이 우상의 집으로 타락한 것입니다.
히브리어로 '베트'는 집을 뜻합니다. '엘'은 하느님입니다. 그래서 베텔은 하느님의 집입니다. 반면 '아웬'은 죄악과 허무를 뜻합니다. 그래서 벳 아웬은 죄악의 집이 됩니다. 이름의 구조는 비슷하지만 그 안의 알맹이는 정반대로 뒤바뀐 것입니다. 삶이 동반되지 않는 미사는 무력합니다. 삶이 빠져나간 기도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합니다.
3. 물 위에 뜬 나뭇가지
그들이 의지하던 임금은 “물 위에 뜬 나뭇가지”(호세 10,7)처럼 힘없이 사라집니다. 거센 격랑 속에서 인간이 세운 권력과 재물은 아무런 구원도 주지 못합니다. 결국 닥쳐올 파멸 앞에서 백성들은 산과 언덕을 향해 절망적으로 울부짖습니다. "우리 위로 무너져 다오!"(호세 10,8) 이 종말론적 비탄은 오늘날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살아가는 우리를 향한 준엄한 경고입니다.
주님을 모신 우리의 내면은 지금 베텔입니까, 아니면 벳 아웬입니까. 하느님을 향한 첫사랑과 봉헌의 순수함을 잃어버렸다면, 우리 역시 갈라진 마음에 시달리는 길 잃은 양일 뿐입니다. 외적으로 그럴듯한 종교적 형식에 안주하기보다, 무너진 내면의 영성을 정직하게 직시해야 할 때입니다.
4. 사도적 가난과 헤세드의 친밀함
예수님은 이 갈라진 마음을 치유하러 오셨습니다.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어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마태 10,6) 보내십니다. 그들에게 치유의 권능을 주시며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10,7)고 선포하게 하십니다. 이 파견 명령은 가톨릭 역사 속에서 사도적 삶의 원형이 되었습니다.
중세 교회가 부유함으로 영적 위기를 맞았을 때,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와 탁발 수도자들은 이 말씀에 인생을 걸었습니다. 금도 은도 지니지 않는 철저한 가난을 선택하며 세상 밖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온전히 비우고 오직 하느님만을 신뢰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이 바라시는 참된 회개의 태도입니다.
하느님은 계약 관계 속에서 백성을 끝까지 책임지시는 뜨겁고도 변함없는 사랑의 하느님이십니다. 성경은 이 사랑을 헤세드라는 말로 요약합니다. 히브리어 구문 안에서 헤세드는 단순한 감정이 아닙니다. 계약을 바탕으로 상대를 결코 저버리지 않는 '충실한 자애'이자, 자식이 부모를 배반해도 끝내 품어 안는 '조건 없는 신의'를 뜻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집착을 내려놓고 사도적 가난을 살아갈 때, 비로소 이 위대하고 풍요로운 헤세드의 친밀함이 회복됩니다.
5. 지금이 주님을 찾을 때
"너희는 정의를 뿌리고 신의를 거두어들여라. 묵혀 둔 너희 땅을 갈아엎어라."(호세 10,12)
정의를 뿌리고 하느님의 충실한 자애인 헤세드를 거두라는 이 말씀은, 겉치레뿐인 종교적 행위를 멈추고 삶의 뿌리부터 하느님과의 인격적인 신뢰를 회복하라는 깊은 뜻을 담고 있습니다. 오랜 고집과 타성으로 단단하게 굳어버린 마음의 밭을 깨뜨려야 합니다. 익숙해진 안락함과 갈라진 마음의 흔적들을 과감히 쟁기질해야 합니다. 회개는 입술의 고백을 넘어 삶의 자리를 뒤엎는 실제적인 행동입니다.
"지금이 주님을 찾을 때다."(호세 10,12) 더 이상 세상이 주는 일시적인 가짜 위로나 안도감에 기대지 말고 오직 주님의 얼굴만을 구해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이 주님이 주신 은총의 기회입니다. 고통의 터널 끝에는 언제나 주님의 밝은 빛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교만을 버리고 메마른 영혼을 주님 앞에 내어놓을 때, 그분께서는 우리 위에 구원의 정의를 비처럼 아낌없이 내려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 약속을 굳게 믿고, 우리의 삶을 주님께 온전히 맡겨드려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