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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14주간 목요일

1독서: 호세 11,1-4.8ㅁ-9 <내 마음이 미어진다.>

복음: 마태 10,7-15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제목: 거저 받은 사랑, 거저 주는 평화

 

1. 부르심의 시작과 순종의 여정

“이스라엘이 아이였을 때에 나는 그를 사랑하여 나의 그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호세 11,1) 오늘 제1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예언자 호세아의 입을 빌려 당신의 가장 원초적인 사랑을 고백하십니다. 이 말씀은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가장 비참한 노예살이를 하던 시절로 우리를 데려갑니다. 아무런 힘도 없고 스스로를 구원할 수도 없던 가장 나약한 어린아이 같을 때,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먼저 사랑하셨고 이집트라는 고통의 땅에서 불러내셨습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이 구절을 아기 예수님의 이집트 피신과 귀환 사건에 직접 연결하여 고백합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자녀로 불림을 받았음에도 매 순간 불순종하여 주님에게서 멀어져 갔습니다. 부르면 부를수록 바알들에게 희생 제물을 바치고 우상들에게 향을 피우며 참된 아버지를 배반했습니다. 반면 참된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죄와 죽음의 억압에서 일으켜 세우는 구원의 완벽한 모범이 되셨습니다. 이집트에서의 탈출과 새로운 아들의 부르심은 오늘날 우리에게 죄의 종살이에서 벗어나 영원한 행복으로 나아가는 은총의 통로를 열어준 거룩한 사건입니다.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 모여 미사를 봉헌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역시 영적인 이집트, 곧 죄와 불안, 절망과 낙담의 노예살이에서 하느님의 전적인 자비로 불림을 받은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과거를 묻지 않으시고, 오직 사랑 하나만으로 우리를 어둠 속에서 건져내어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2. 하느님의 자애로운 양육과 영적 알츠하이머의 유혹

하느님의 사랑은 단지 우리를 이집트에서 탈출시키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갓난아기를 키우는 부모의 심정으로 우리 삶의 세세한 부분까지 보살펴주십니다. 호세아 예언자는 하느님의 그 애틋한 모습을 이렇게 전합니다. “내가 에프라임에게 걸음마를 가르쳐 주고 내 팔로 안아 주었지만 그들은 내가 자기들의 병을 고쳐 준 줄을 알지 못하였다.”(호세 11,3) 주님은 우리의 손을 잡고 인생의 험한 길을 걷는 법을 가르치셨고, 넘어질 때마다 당신의 강한 팔로 보듬어 안아주셨습니다. 인정의 끈과 사랑의 줄로 우리를 끌어당기셨으며, 마치 젖먹이를 들어 올려 볼을 비비고 몸을 굽혀 먹여주는 어머니처럼 우리를 양육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일상의 분주함 속에서, 혹은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 벅찬 시련을 만날 때 이 가없는 사랑을 너무나 쉽게 잊어버립니다. 마음 한구석이 텅 빈 느낌이 들고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 들 때면, 마치 나 혼자 힘으로 이 세상을 버텨온 것처럼 착각하곤 합니다. 나의 아픔을 고치고 싸매어 주신 분이 하느님이라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는 영적 무지에 빠집니다.

과거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우리가 과거의 죄와 종살이에서 건져진 존재임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 현상을 '영적 알츠하이머'라고 강력히 경고하셨습니다. 자기를 해방해 주신 하느님의 은혜를 망각하는 것이야말로 신앙인이 늘 경계해야 할 가장 치명적인 유혹입니다. 은혜를 잊어버린 마음은 딱딱하게 굳어지며, 스스로 안전지대를 구축하려는 완고한 '파라오주의'로 흘러가기 마련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저는 비참한 종이었는데 주님께서 저를 조건 없이 풀어 주셨습니다" 하고 자기 삶의 여정을 끊임없이 기억하고 고백하는 실천이 필요합니다. 이 기억의 회복이야말로 우리의 신앙생활과 수도 생활의 기쁨을 유지하는 영적 원동력입니다.

3. 미어지는 신적 연민과 은총의 무상성

인간의 끊임없는 배신과 망각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사랑은 결코 중단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죄악과 완고함이 임계점에 달해 심판이 눈앞에 닥친 순간에도, 하느님의 본심은 벌이 아니라 언제나 용서와 구원을 향해 요동칩니다. 하느님께서는 탄식하십니다. “내 마음이 미어지고 연민이 북받쳐 오른다.”(호세 11,8) 자식의 잘못 때문에 가슴이 찢어지면서도 차마 그 자식을 외면하지 못하는 어버이의 심정입니다.

하느님은 선언하십니다. “나는 타오르는 내 분노대로 행동하지 않고 에프라임을 다시는 멸망시키지 않으리라. 나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다. 나는 네 가운데에 있는 ‘거룩한 이’. 분노를 터뜨리며 너에게 다가가지 않으리라.”(호세 11,9) 인간의 본성은 배신당하면 복수와 타격을 갈망하지만, 하느님의 거룩하심은 인간의 좁은 인과율을 완전히 초월합니다. 하느님의 거룩함은 범접할 수 없는 두려움이 아니라, 인간의 죄악보다 훨씬 더 거대하여 그 어떤 허물도 품어 안아버리는 '무한한 자비'로 완성됩니다. 그분은 매정하고 엄격한 심판관이 아니라, 현실의 고단함 속에 혼자 끙끙 앓고 있는 우리에게 다가와 분노의 발걸음을 멈추고 치유의 손길을 내미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파견하시며 주시는 지침 역시 이 하느님의 조건 없는 자비와 완벽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말고,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말라고 하십니다. 들짐승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최소한의 도구마저 내려놓으라는 이 극단적인 무소유의 명령은, 세상이 주는 인위적인 안전장치에 의존하지 말고 오직 자애로우신 하느님의 섭리에만 모든 것을 의탁하라는 초대입니다. 내 손에 쥔 모든 방어벽을 비워낼 때, 비로소 하느님께서 일 하시기 시작합니다. 제자들이 행하는 치유와 구마의 권능은 그들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거저 베풀어진 신적 선물입니다.

4. 파견자의 사명과 삶의 전례

우리는 매 미사 전례 안에서 하느님의 구원과 그리스도의 사랑을 아무런 대가 없이 거저 받았습니다. 우리가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매일의 삶 안에는 주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과 섭리가 가득 차 있습니다. 주님의 성체성사를 통해 영적인 위로와 새 생명을 가득히 받은 우리는 이제 성전 문을 나서서 세상이라는 삶의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미사 끝에 선포되는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라는 파견의 말씀은, 우리를 복음의 메신저로 세상에 보내시는 주님의 생생한 명령입니다.

우리는 이제 일상 속에서 '삶의 전례'를 성실히 수행해야 하는 파견자의 사명을 지닙니다. 우리가 머무는 가정과 직장, 고을마다 들어가 하느님 나라의 온전한 구원과 안식을 뜻하는 "평화를 빕니다"라는 인사를 담담히 건네야 합니다. 마음의 고생과 막막함으로 신음하는 이웃들의 고충에 깊이 공감하고, 그들의 수고를 인정해 주며, 고통의 터널 끝에 있는 주님의 밝은 빛을 함께 바라보아야 합니다. 은총의 현존을 증거하고, 나그네의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오시는 그리스도를 환대하며, 이웃의 상처를 은밀히 고치고 싸매어 주는 치유의 병원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내 힘과 내 소유로 세상을 살아가려 할 때 영적 알츠하이머의 유혹이 찾아옵니다. 우리는 매순간 내가 어디서 구원받아 이 자리에 서 있는지 그 첫 마음과 본래의 자리를 기억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영원에서 영원까지 지속됩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당신의 사랑을 거저 받은 우리가, 세상 속에 나가 아낌없이 그 사랑을 흘려보내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하신 거룩한 사명과 최종 선언을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엄숙한 희망으로 새겨둡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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