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1독서: 히브 5,7-9 <예수님께서는 순종을 배우셨고,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복음: 요한 19,25-27 <아들 수난 보는 성모 맘 저미는 아픔 속에 하염없이 우시네(‘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부속가).>
제목: 십자가 곁에 서 있음
1. 십자가 곁을 지킨 침묵
교회는 어제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을 지낸 데 이어, 오늘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을 거행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수난과 어머니 마리아의 고통은 결코 떼어놓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골고타 언덕에서 사람들은 침을 뱉으며 돌아섰고, 제자들마저 두려움에 사로잡혀 숨어버렸습니다. 그러나 그 참혹한 사형대 발치에는 물러서지 않고 자리를 지킨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요한 19,25). 이 서 있음은 체념이 아닙니다. 자식이 겪는 극한의 형벌을 온몸으로 마주하며 끝까지 도망치지 않은 굳건한 신앙의 응시입니다. 피 흘리며 죽어가는 외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영혼은 예리한 칼에 온전히 꿰찔렸습니다. 성모님은 피 흘리는 육신의 순교를 겪지는 않으셨지만, 아들의 처절한 죽음을 영혼으로 온전히 받아내시며 죽음보다 깊은 영적 순교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2. 순종으로 완성된 거룩한 고통
이렇듯 성모님이 겪으신 고통은 단순히 자식을 앞세운 한 어머니의 비탄에 머물지 않습니다. 이는 아드님의 구원 사업에 온전히 동참하는 거룩한 순종이었습니다. 히브리서는 주님의 수난을 이렇게 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당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고, 하느님께서는 그 경외심 때문에 들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히브 5,7-8). 예수님께서 눈물과 부르짖음으로 십자가의 순종을 완성하셨듯이, 성모 마리아 역시 그 눈물의 무게를 곁에서 고스란히 나누어 짊어지셨습니다. 처녀의 몸으로 주님의 뜻을 받아들였던 그 첫 순종이, 갈바리아 십자가 아래에서 비로소 완성된 것입니다. 성모님은 이해할 수 없는 비극 앞에서도 하느님의 뜻과 고통의 신비를 마음속 깊이 새기고 묵상하며 끝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모진 슬픔을 겪어내셨기에, 성모님은 오늘날 삶의 무게에 짓눌려 속이 타들어 가는 가장의 침묵과 가족을 잃고 울부짖는 인간의 아픔을 누구보다 깊이 헤아리시는 모성적 위로자로 우리 곁에 머물고 계십니다.
3. 우리 영혼의 집에 모시는 삶
그 모성적 동참의 절정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는 성모님을 향해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요한 19,26) 하고 선포하십니다. 여기서 ‘여인’이라는 부르심은 거리감을 두는 호칭이 아닙니다.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아직 저의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요한 2,4)라고 하셨던 주님께서, 마침내 아버지의 영광이 드러나는 결정적인 구원의 시간에 도달했음을 선언하시는 거룩한 칭호입니다. 구원의 시작을 기다리던 여인은 이제 십자가를 통해 이루어지는 구원의 완성을 증언하며, 온 인류의 어머니로 우뚝 서게 됩니다. 복음은 이어 증언합니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요한 19,27). 제자가 성모님을 ‘자기 집에 모셨다’는 말씀은 단순히 물리적인 거처를 내어드렸다는 뜻에 머물지 않습니다. 자신의 가장 내밀한 영적 공간, 곧 삶의 본질 한가운데로 성모님을 맞아들였다는 깊은 영적 의미입니다. 따라서 신앙인이 성모님을 어머니로 모신다는 것은, 그분이 보여주신 철저한 순종과 사랑을 우리 삶의 중심에 두고 살아내는 일입니다. 고통과 번민 속에서도 도망치지 않고 하느님의 뜻을 기다렸던 성모님처럼, 우리 역시 각자에게 주어진 십자가 곁을 묵묵히 지켜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