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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11. 연중 제28주일                                                                                      지혜7,7-11 히브4,12-13 마르10,17-30


                                                                                          현자賢者가 됩시다


식자識者보다는 ‘현자賢者가 됩시다.’ 오늘 강론 제목입니다. 지식은 깨달음을 통해 지혜가 됩니다. 현자賢者가, 현인賢人이란 말만 들어도 기분이 좋습니다. 이런 말이 나오면 한자를 찾아보며 그 뜻을 다시 새겨보곤 합니다. 모두가 어질고 지혜로운 사람을 뜻합니다. 참으로 현자가, 지혜로운 어른이 그리운 시대입니다. 어른의 특징은 그 지혜로움에 있습니다. 


현재의 우리 가톨릭 교회의 수장이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이야 말로 교회는 물론 전세계가 인정하는 시대의 현자요 어른임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교황님이 반포하신 회칙 ‘복음의 기쁨’ ‘찬미받으소서’가 그 생생한 증거입니다.


눈감으면 떠오르는 이 시대 대한민국의 현자가 있는가 묻습니다. 며칠 전에는 ‘망한민국’이라는 제하의 신문 컴럼을 읽고 깜짝 놀랐습니다. “최근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수사는 ’망했다’인 것 같다. ‘망한민국’이나 ‘헬조선’이나 모두 이런 ‘망했다’는 수사에 기반을 둔 표현일 것이다’로 시작되는 ‘대’가 ‘망’으로 바뀌어 ‘망한민국’이란 황당한 제하의 칼럼이었습니다.


요즘 10년 안팎으로 참 많은 이 땅의 지혜로운 어른들인 현자들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김수환 추기경, 법정 스님, 김대중 대통령, 무위당 장일순, 이영희 사상가, 김준엽 총장, 강원용 목사, 김승훈 신부, 박태준 포철 사장, 박완서 소설가, 선우경식 의사, 제 짧은 기억력에도 주마등처럼 떠오르는 어른들입니다. 당장은 이분들을 대체할 현자인 어른들이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하여 노인은 많은 데 어른이 없다고 개탄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어제 어느 영화평론가의 ‘노장의 품격, 거장의 인문학’이란 제하의 글을 읽으면서도 새삼 어른의 필요성을 절감했습니다. 


-‘매드맥스’ ‘마션’ ‘인턴’ 세 감독 나이를 평균 내 보면 70세, 그들 유연한 생각에 한번 놀라고, 그려내는 삶의 혜안에 두 번 놀란다. 이 세 영화, 세 명의 연출자는 우리 사회에 필요한 노장의 품격과 거장의 지혜를 보여준다. 존경은 나이의 대가가 아니다. 거장 역시 세월로만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 그가 바로 노장이자 거장이 아닐까? 노장이 품격을 갖출 때 거장은 그 자체로 존경받는 인문학일 수 있다.-


현자나 성자聖者가 없다고 탓하거나 마냥 이들을 그리워만할 것이 아니라 내 친히 현자가, 성자가 되려는 노력이 절실합니다. 어떻게 가능하겠는지요. 바로 오늘 말씀이 답을 줍니다. 다음 세 진리를 철저히 깨달아 분투奮鬪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입니다. 이런 ‘거룩한 욕망’은 얼마든지 좋습니다.


첫째, 지혜가 참 보물입니다. 

지혜아닌 보물은 모두 가짜입니다. 가짜 보물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참 좋은 선물이자 보물이 지혜입니다. 바로 오늘 제 1독서 지혜서는 너무 아름다워 읽다 보면 저절로 지혜를 소유하고 싶다는, 또 이런 지혜란 보물은 하느님의 선물이란 생각이 듭니다. 1독서는 그대로 ‘지혜 예찬’이라 할 만합니다. 어느 것도 뺄 수 없어 전문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내가 기도하자 나에게 예지가 주어지고, 간청을 올리자 지혜의 영이 나에게 왔다. 나는 지혜를 왕홀과 왕좌보다 더 좋아하고, 지혜에 비기면 많은 재산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였으며, 값을 헤아릴 수 없는 보석도 지혜와 견주지 않았다.”


“온 세상의 금도 지혜와 마주하면 한 줌의 모래이고 은도 지혜 앞에서는 진흙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나는 지혜를 건강이나 미모보다 더 사랑하고, 빛보다 지혜를 갖기를 선호하였다. 지혜에서 끊임없이 광채가 나오기 때문이다.”


“지혜와 함께 좋은 것이 다 나에게 왔다. 지혜의 손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재산이 들려 있었다.”


지혜를 지니는 자는 모두를 지닌 자입니다. 지혜를 시링하는 학문이라 필로소피아, 철학입니다. 지혜란 참 보물을 지닌 자가 진정 현자이자 부자요, 매력적인 ‘빛의 사람’ ‘향기로운 사람’임을 깨닫습니다. 정말 우리 모두가 항구히 추구할 바 지혜요 현자의 삶입니다.


둘째, 말씀이 지혜입니다. 

지혜는 애매하거나 추상적이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바로 지혜입니다. 모두에게 활짝 열려 있는 말씀의 보물입니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지닐 수 있는 말씀의 보물입니다. 말씀은 생명이자 빛입니다. 말씀은 영혼의 식이자 약입니다. 영혼중의 영혼이 말씀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내 발에 등불, 내 길을 비추는 빛입니다. 주님의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를 치유하고 위로하며 정화하고 성화합니다. 


말씀의 효소가 부패인생을 향기 그윽한 발효인생으로 바꿔 줍니다. 새삼 항구한 말씀공부가, 말씀의 학인學人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진정 복자福者요 현자賢者입니다. 오늘 제2독서 히브리서도 말씀의 정체를 환히 드러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


분별의 지혜도, 마음의 순수도 말씀의 은사임을 깨닫습니다. 진정 말씀으로 심안心眼이, 영안靈眼이 깨끗해진 이들은 저절로 다음과 같은 하느님을 깨달아 경천애인敬天愛人, 하느님을 경외하고 사람을 사랑합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어떠한 피조물도 감추어져 있을 수 없습니다. 그분 눈에는 모든 것이 벌거숭이로 드러납니다. 이런 하느님께 우리는 셈을 해드려야 합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히브리서 저자는 현자임이 분명합니다. 하느님 앞에서 늘 깨어 살고자 노력하는 자가 바로 현자임을 깨닫습니다. 말씀의 은총이 우리를 깨끗하게 하고, 깨어 있게 하고, 깨닫게 합니다.


셋째, 예수님이 지혜입니다.

하느님이자 사람이신 예수님이 바로 지혜입니다. 하느님의 지혜이신 예수님입니다. 이런 지혜를 발견하여 따를 때 저절로 자발적 가난입니다. 탐욕으로부터 근원적 자유입니다. 오늘 복음의 부자는 뭔가 큰 착각을 했습니다. 계명을 지켜서가 영원한 생명이 아니라 보물이신 예수님을 따를 때 영원한 생명임을 몰랐습니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바로 하늘에서의 보물이 예수님이요, 이 보물이신 주님을 따를 때 영원한 생명을 지닌 복자요 현자라는 것입니다. 과연 주님의 이 시험에 합격할 자 몇이나 될런지요. 그러나 부자는 재물 욕심에 눈이 가려 참 보물인 주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 또한 우리 인간의 근원적 평생과제입니다. 소유냐 존재냐의 갈림길에서 부자는 예수님의 존재가 아닌 소유를 택했습니다. 그러나 부자가 후에 뉘우쳐 예수님을 추종했는지 결과는 모릅니다. 베드로가 진정 각자覺者요 현자입니다. 예수님이 참 보물임을 알고 모든 것을 버리고 그분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고백하는 베드로에게 주님은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라고 약속하십니다. 참 보물이신 주님을 따를 때 얼마나 큰 축복이 따르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사실 주변에서 이런 축복의 사람들을 자주 목격합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하느님의 지혜이신 당신의 말씀과 성체성혈을 모시는 우리를 복자요 현자로 만드시고 항구히 당신을 따를 수 있는 은총과 힘을 주십니다.


“주님, 아침에 당신 자애로 저희를 채워 주소서, 저희는 날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리이다.”(시편90,1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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