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30. 수요일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                                                                 로마10,9-18 마태4,18-22


버림, 떠남, 따름의 여정旅程

-착한 목자 이형우 시몬 베드로 아빠스(1946-2016)를 추모追慕하며-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

 파아란 풀받에 이몸 누여 주시고,

 고이 쉬라 물터로 나를 끌어 주시니

 내 영혼 싱싱하게 생기 돋아라.”


예수님을 닮은 착한목자 사도 축일을 지낼 때 마다 떠오르는 시편구절입니다. 오늘은 시몬 베드로 사도의 아우, 안드레아 사도 축일입니다. 믿는 이들에게는  죽음의 날이 천상탄일天上誕日의 축일입니다. 순교자들은 물론 믿는 모든 이들이 예외 없이 세상을 떠나 주님을 따르는 여정에 충실했습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버림, 떠남, 따름의 여정’이고 오늘 강론의 제목입니다.


어제 2016.11.29일은 참 각별한 체험의 날이었습니다. 왜관 수도원에서 오후 2시 고故 이형우 시몬 베드로 아빠스님의 장례미사가 있었고, 요셉수도원의 여덟 수도형제들이 참석했습니다. 요셉수도원이나 저에게는 잊지 못할 착한목자 아빠스님이셨습니다. 


참 맑고 밝은 춥지도 않은 초겨울 날이었습니다. 아침 제 집무실 창밖에 새롭게 떠오르는 찬란한 일출日出을 보며 죽음이 부활임을 깨달았고 아빠스님의 부활을 직감直感했습니다. 어둠의 죽음을 헤치고 떠오르는 태양이 부활의 승리를 상징하는 듯 기쁘고 힘이 났습니다. “주님의 집에 가자할 제 나는 몹시 기뻤노라.”는 시편 구절처럼 왜관을 향해 떠나는 수도형제들의 모습 역시 흡사 잔치에 참석하는 분위기같이 밝고 활기찼습니다.


믿는 이들에게 삶은 고해苦海가 아니라 축제祝祭요, 죽음은 슬픔이 아닌 기쁨의 천상탄일입니다. 장례미사날 오후 4시쯤 묘지에서의 하관식 분위기도 꼭 신선한 오전의 아침의 분위기였고 일몰日沒의 태양도 일출日出의 태양처럼 느껴지는 오후가 참 신비로웠습니다. 


“어, 이상합니다. 저에겐 고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꼭 오전의 일출 때의 모습같이 느껴집니다.”


수도형제도 공감했습니다. 일몰이 일출처럼 느껴지니 죽음이 부활을 상징하는 듯 생각도 들었습니다. 마침 아빠스님의 노모님의 말씀도 생생합니다. 아빠스님이 선종하던 날 수녀원 아침 주일 미사를 집전하러 가시던 중 여덟 번이나 멈추어 가쁜 숨을 내쉬었고 마지막 두 걸음을 내딛는 순간 넘어지신후 선종하셨다며 갈바리 언덕에서의 예수님의 수난을 생각했다는 노모님의 고백이였습니다. 아빠스님은 재임중 2007년 수도원 대화재로 인한 충격衝擊과 이어 화재의 수습과 수도원 건축(2007-2009)으로 인한 노고勞苦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고 아마 이에서 심신의 건강도 극도로 악화됐던 듯 합니다.


요셉수도원 초창기때 아빠스님은 로마에서 교부학 박사학위를 마치고 얼마동안의 사목경험후 본원의 수련장직을 맡고 계셨습니다. 수련자들을 이끌고 매해 가을이면 배수확 봉사를 위해 요셉수도원을 몇일간 방문하셨고, 1990년 방문하셨을 때는 제 강론을 극찬極讚하신후 본원 양성자들을 위한 연례피정을 부탁하셨고, 1992년 피정후 종신서원 미사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라는 제목의 강론을 했던 추억도 생생합니다. 이때는 제가 내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에 아빠스님의 칭찬과 격려는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또 한 해 전 1989년 종신서원을 앞둔 피정 때에는 저에게 피정자들을 위한 명상기도 지도를 요청하셨고 바로 이때 탄생된 것이 ‘그리스도교 수도승의 삶의 전통에 바탕을 둔 명상기도’ 원고였습니다. 순수한 열정과 항구한 탐구심을 지닌 학자이셨기에 참으로 좋은 많은 글을 쓰셨고 제가 왜관 본원을 방문할 때도 우선 찾아 대화를 나눈 분은 아빠스님이었습니다. 특히 아빠스님은 요셉수도원의 수도원 건축(2005-2006)과 요셉수도원의 자치 수도원 승격(2012)에 결정적 도움을 주셨습니다.


아빠스님으로 재임 중에도 요셉수도원을 사랑하시어 자주 방문하셨고 때로 저와 손잡고 산책하며 대화를 나눴던 기억도 선명합니다. 꼭 형님처럼 다정히 느껴졌던 아빠스님이였습니다. 2013년 퇴임이후 2014년 제가 안식년을 지낼 때, 또 몇 달 전에도 저에게 친히 몸소 안부 전화도 주셨고, 2014년 안식년중 잠시 방문했을 때는 겸손히 고백성사를 요청하여 받기도 하셨습니다. 참으로 고맙고도 따뜻한 추억이 많았던 착한목자 아빠스님이였습니다.


오늘 복음의 주인공은 아빠스님과 이름이 같은 베드로라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입니다. 시몬 베드로 아빠스님 역시 6남매중 맏이로 동생들의 신앙의 모범이었습니다.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그러자 그들은 곧바도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합니다. 오늘 복음의 사도들처럼 버림, 떠남, 따름의 여정에 항구했던 아빠스님이었고 마침내 세상을 떠나 오매불망寤寐不忘 꿈에 그리던 주님의 품에 안긴 아빠스님입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제가 요셉수도원 원장 재직시 아빠스님이 방문하셨을 때 모습도 이와 흡사했습니다. 단순하고 순수하셨기에 저절로 수도형제들의 마음도 기쁨으로 활짝 열리는 분위기였습니다. 하여 어제 아빠스님의 장례미사의 분위기도 조촐한 축제의 분위기였습니다. 결코 슬픈 어둠의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꼭 축제잔치에 참여한 듯 모두의 표정도 맑고 밝았습니다. 세상을 떠나시면서도 남은 분들에게 참 좋은 선물의 추억을 남기신 아빠스님이었습니다. 


주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이 시몬 베드로 아빠스님에게 영원한 빛을 비추시고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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