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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8.2. 연중 제17주간 수요일                                                                           탈출34,29-35 마태13,44-46



우리는 언제 ‘너울(veil)’을 벗을까?

-주님을 만날 때-



우리는 모두 각자 고유의 너울을 쓰고 살아 갑니다. 너울을 벗었을 때 참 나의 얼굴, 주님의 얼굴입니다. 그러나 평생 자기 고유의 너울을, 베일을 쓰고 살아갑니다. 갈수록 너울을, 베일은 더 두꺼워지고 강화될 수 있습니다. 성형수술 한다하여 참 얼굴이 아니라 베일만 변형한 것일 뿐입니다. 아무리 곱게 화장해도 너울은 너울일 뿐입니다. 두가지 예화가 생각납니다.


어느 구도적 열정이 가득한 젊은이가 인도를 여행하던중 어느 구루, 영적지도자 비슷한 이가 젊은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왜 가면을 쓰고 살아가느냐? 흡사 자네 얼굴이 가면을 쓴 것 같네.’라는 말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젊은이는 너무 큰 충격에 자기 얼굴이, 진짜 자기 얼굴인지 잘 들여다 보는 습관을 갖게 됬다는 일화입니다. 어쩌면 어렵고 복잡한 세상이기에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상황에 따라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지도 모릅니다. 사실 가면을 쓰지 않고 참 나의 얼굴로 사는 이들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또 하나는 ‘시詩’라는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 여배우 윤정희 씨에 대한 예화입니다. 유명한 피아니스트 백건우 씨의 부인으로 부부 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입니다. 감독은 ‘시’ 영화의 여주인공을, 얼굴에 손을 대지 않은 본래의 자연스런 얼굴을 지닌 70대의 노 여주인공을 찾다보니 파리에 거주하고 있는 윤정희 씨에게 부탁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일화를 어디선가 읽은 적이 생각납니다.


오늘 탈출기의 내용이 참 아름답고도 재미있습니다. 풍부하고 신비로운 묵상자료입니다. 어제 탈출기 독서의 마지막 절은 모세가 주님과 함께 밤낮 사십일을 지내며 빵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고 십계명을 판에 기록하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증언판 두 개를 들고 내려 올 때 얼굴의 살갗이 환히 빛났다는 내용입니다. 바로 너울을 벗었을 때의 빛나는  얼굴, 이것이 바로 모세의 참 얼굴이었던 것입니다.


하여 백성들은 모세 가까이 가기를 두려워하였고 모세는 너울로 얼굴을 가렸다 합니다. 주님을 만났을 때 빛나는 자기 참 얼굴을 가리기 위해 자기 고유의 너울을 써야 했던 모세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기 얼굴의 살갗이 빛나는 것을 보게 되므로, 모세는 주님과 함께 이야기하러 들어갈 때까지는 자기 얼굴을 다시 너울로 가리곤 하였다 합니다. 일종의 가면이라 할까요.


예수님의 타볼산에서 변모체험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 제자들만이 순간 너울을 벗은 예수님을 본 것입니다. 하느님 안에서 모세와 엘리야와 대화를 나눌 때 바로 환히 빛나는 예수님의 참 얼굴, 하느님의 얼굴이 순간 계시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후 그분의 빈무덤을 제자들이 찾았을 때 너울과 옷은 곱게 접혀져 있다는 기사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느님 아버지를 직접 뵈옵기에 너울이, 베일이 더 이상 필요없게 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평생 빛나는 얼굴을 가리기 위해 너울을 쓰고 살았던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래도 예수님의 너울은 엷어서 아버지의 얼굴이 환히 드러났을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언제 어디서나 현존하십니다. 아버지 앞에서는 너울을 벗고 계시지만 우리 각자의 너울 안에 우리의 참 얼굴로 현존하시는 주님이십니다. 하여 지극히 작은 이들에게 해주는 것이 예수님 당신께 해주는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베네딕도 성인께서 찾아오는 모든 손님들을 그리스도처럼 맞이하라는 말씀도 찾아오는 손님들이 바로 베일을 쓴 예수님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또 우리 교회공동체를 ‘그리스도의 몸’이라 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는 공동체의 너울을 쓰고 계심을 의미합니다. 하여 예수님을 섬기듯 형제들을, 형제들의 공동체를 겸손한 사랑으로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우리 본래의 참 얼굴, 그리스도의 얼굴에 각자 고유의 너울을 쓰고 살아갑니다. 주님을 은총으로 만날 때 순간 너울을 벗지만 대부분 너울을 쓰고 살아갑니다. 미사중 사제의 ‘그리스도의 몸’과 동시에 주님의 성체를 받아 모실 때는 순간 너울을 벗고 본연의 빛나는 참 나의 얼굴이 드러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어려풋이 보지만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것입니다. 내가 지금은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때에는 하느님께서 나를 온전히 아시듯 나도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1코린13,12).


“주님은 영이십니다.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너울을 벗은 얼굴로 주님의 영광을 거울로 보듯 어렴풋이 바라보면서, 더욱더 영광스럽게 그분과 같은 모습으로 바뀌어 갑니다. 이는 영이신 주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2코린3,17-18).


참 은혜롭고 고무적인 말씀입니다. 주님을 만나면서 우리는 그분을 닮아 너울은 점차 엷어져 가고, 마침내 너울을 벗은 얼굴로 주님의 얼굴을 마주 보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면에서 오늘 보물을 발견한 이와 진주를 발견한 하늘 나라의 비유가 선명히 이해 됩니다.


밭에서 우연히 보물을 발견하고 가진 것을 다 팔아 보물밭을 산 이가 상징하는 바 뜻밖의 은총으로 영원한 참 보물이신 주님을 발견했음을 의미합니다. 순간 주님을 만난 기쁨에 너울은 벗겨지고 제 본연의 참 얼굴이 됐을 것입니다. 누구나 보고 싶어하는 궁극의 갈망이 주님의 얼굴, 참 나의 얼굴입니다.


값진 진주를 발견한 이는 끊임없이 항구히 영원한 보물이신 주님을 찾았던 이를 상징합니다. 참 보물이신 주님이란 진주를 발견했을 때 역시 그의 너울은 순간 벗겨지고 기쁨으로 환히 빛나는 참얼굴이 드러났을 것입니다.


바로 영원한 참 보물이신 주님을 만나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 나선 우리들입니다. 우리의 너울은 예전 너울이 아니라 많이 엷어져 너울을 통해 은연히 빛나는 주님의 영광입니다. 끊임없이 평생, 매일 주님을 만나면서 날로 엷어져 가다가 결정적으로 주님을 만나는 날 우리는 완전히 너울을 벗고 참 나의 얼굴인 주님의 얼굴을 마주 볼 것입니다. 말그대로 지복직관至福直觀의 천복을 누릴 것입니다. 


파스카의 예수님은 각자 너울 안에, 공동체의 너울 안에 현존하십니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이들은 실제 파스카의 예수님인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 건강하고 온전한 신비주의입니다. 멀리 계신 주님이 아니라 각자의 너울안에, 공동체의 너울 안에 언제나 현존하시는 파스카의 주님이십니다. 하여 주님을 섬기듯 형제들을, 공동체를 겸손한 사랑으로 섬기라 하는 것입니다. 


이 거룩한 미사시간 우리 모두 주님과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는(face to face)’ 시간입니다. 각자 고유의 너울을 벗고 주님의 얼굴을, 참나의 얼굴을 보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이런 매일미사의 은총으로 우리 각자의 너울은 날로 엷어져 점점 주님의 영광으로 빛나는 주님의 얼굴, 참 나의 얼굴로 변모되어 갑니다.


“주님께 청하는 오직 한 가지, 나 그것을 얻고자 하니, 내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사는 것이라네.”(시편27,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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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녜스 2017.08.02 09:22
    미사 참례의 소중함을 다시금 생각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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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주 2017.08.02 21:11
    이 발전된 세상에 하루에만 수 만의 아이들이 먹을것이 없어서
    굶주림에 공포에 시달리다 죽어버리는 세상에서 과연 누가
    천복을 누릴 수 있을까요?
    교황이 천복을 누릴 수 있습니까? 그건 착각일 뿐입니다

    입으로는 좋은 말이란 말은 다하고, 자나 깨나 기도, 묵상에 푹 빠져 사는 사람들이
    자기가 가진 것에 절반만 떼서 오늘 굶주림에 공포에 떨며 죽어간 아이들 좀 살려 보자고 하면,
    발작을 일으키는 세상입니다.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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