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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 연중 제1주간 목요일                                                                            사무상4,1ㄴ-11 마르1,40-45



 회개와 겸손

-주님과 신망애信望愛의 관계가 답이다-



겸손이 답입니다. 회개할 것이 있으면 주님께 겸손히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하느님을 알고 나를 아는 것이 진정 겸손이자 지혜입니다. 무지無知의 병에 대한 유일한 답은 겸손하나 뿐입니다. 어제 읽은 불가의 글귀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중생의 병은 무지에서 오고, 보살의 병은 ’대비심大悲心;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에서 온다. 중생이 아프니 그도 아프지 않을 수 없다.’


중생은 바로 무지의 사람을, 보살은 오늘 복음의 예수님으로 바꿔 이해해도 잘 어울립니다. 중생인 우리가 아프니 예수님도 아픈 것입니다. 바로 나병환자가 상징하는 바 무지의 우리 사람들입니다. 깊이 들여다 보면 우리의 모든 병은 무지에서 기인함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을 모르고 나를 모르는 무지가 ‘만병萬病의 근원根源’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마음은 사랑입니다. 측은히 여기는 마음, 불쌍히 여기는 마음, 가엾이 여기는 마음, 바로 이런 연민의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이를 일컬어 예수님의 대비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여 회개하는 겸손한 자가 주님께 바칠 유일한 기도는 자비송 하나뿐입니다.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겸손이 답입니다. 기도가 답입니다. 겸손한 자가 기도합니다. 무지의 병에 대한 치유의 길은 겸손히 기도하는 일뿐입니다. 참으로 대자대비大慈大悲하신 주님을 만날 때 무지의 병과 더불어 영육의 치유도 뒤따릅니다. 이런 면에서 예수님께 겸손히 무릎을 꿇었던 오늘 복음의 나병환자는 지혜로웠습니다. 자녀들에게 우선 가르칠 것은 주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경건한 기도의 자세일 것입니다.


마침 수도원에 피정을 신청한 개신교 신학대학생들의 지도교수가 청한 특강 제목 ‘공동체와 경건敬虔’이란 말마디가 생각납니다. 오랜만에 듣는 경건이란 말마디가 신선했습니다. 주님 향한 존경과 사랑의 태도를 의미합니다. 거룩한 삶, 거룩한 예배, 건강한 영성을 총칭하는 말마디로 개신교 영성에서 귀하게 쓰이는 말마디가 경건입니다. 


하느님을 닮아갈 때 경건한 삶입니다. 경건훈련원이란 곳도 있는데 영성훈련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경건훈련은 바로 영성훈련과 직결됩니다. 여기서 각별히 유념할 바, '사랑이 빠진' 바리사이의 '위선적 경건'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바로 주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겸손한 기도자세가 경건의 핵심입니다. 나병환자는 참으로 경건했고 주님을 만났습니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무지의 병을 치유받을 수 있는 가능성이 우리 모두 안에 내재해 있습니다. 바로 치유를 원하는 주님을 향한 무한한 갈망입니다. 주님을 향한 무한한 신망애의 갈망이 이 한마디 안에 녹아있습니다. 나병환자의 순수하고 겸손한 신뢰심 가득한 고백에 감동하신 대자대비하신 예수님의 즉각적 반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주님의 구원의 말씀입니다. 미사에 참석한 무지의 영적 나병환자들인 우리 모두를 향한 말씀입니다. 이 한 말씀으로 영육의 치유는 물론 무지의 병까지 치유받은 나병환자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이 삼박자 구원요소입니다.


‘1.예수님의 가엾이 여기는 마음, 2.사랑의 스킨쉽, 3.능력의 말씀’, 


이 셋이 하나되어 나병환자의 온전한 전인적 치유였다는 것입니다. 주님과 신망애의 관계가 깊어져 주님과 하나될 때 우리 사랑의 행위도 이렇게 치유의 기적을 발생할 것입니다. 우리의 가엾이 여기는 마음에서 나오는 능력의 치유행위는 그대로 우리를 통한 주님의 사랑의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떠나가서 이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퍼뜨리기 시작했다.’


치유받은 나병환자는 복음 선포자로 돌변합니다. 바로 전인적 치유, 육신의 나병은 물론 무지의 병으로부터 완전 치유받았음을 입증합니다. 무지의 병의 결정적 치유를 입증하는 것이 이런 복음선포의 삶입니다. 참으로 대자대비하신 주님을 만나 치유 받는 것이 우선이요 이에 전제되는 바 주님 앞에 무릎을 꿇는 회개와 겸손의 경건한 자세입니다.


그 무엇도 이런 주님 향한 진심의 자세를 대신하지 못합니다. 세상 그 무엇도 구원의 보장이 되지 못합니다. 바로 오늘 제1독서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필리스티아인들에 대패한 이유도 여기 있음을 봅니다. 대패의 원인을 제공한자는 엘리요 그의 두 아들의 죄입니다. 


“이리하여 대살육이 벌어졌는데, 이스라엘군은 보병이 삼만이나 쓰러졌으며, 하느님의 궤도 빼앗기고 엘리의 두 아들 호프니와 피느하스도 죽었다.”


사필귀정입니다. 참혹한 패배입니다. 하느님 탓이 아닌 엘리와 그의 아들들의 업보 때문입니다. 이런 근원적 이유 때문에 하느님의 마음이 떠난 ‘주님의 궤’는 무용지물無用之物이 되고 말았습니다. 


회개와 겸손이 없는, 보이는 그 무슨 거룩한 성물도 구원의 보장이 되지 못함을 통절히 배웁니다. 바로 ‘회개와 겸손의 삶’없이 성물聖物에 의존하는 것, 바로 이것이 미신행위인 것입니다. 무엇보다 우선할 것이 주님과 관계의 회복입니다. 끊임없는 주님과 만남을 통해 신망애信望愛의 관계를 깊이하는 것이 유일한 처방입니다. 


오늘 복음의 마지막 주님에 대한 묘사,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드러나게 고을로 들어가지 못하시고, 바깥 외딴곳에 머무르셨다.’라는 대목이 의미심장합니다. 치유이적으로 군중들의 화제와 호기심의 대상이 된 유혹의 순간 즉시 그자리를 떠나 외딴곳에 머무르시는 예수님의 분별의 지혜에서 노자의 ‘공성이功成以不居;공을 이루되 그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라는 교훈을 배웁니다.


마치 오늘 복음 장면이 이 거룩한 미사장면을 상징하는 듯합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당신을 만나 당신께 경건히 무릎꿇는 우리 모두의 ‘영육의 병’과 더불어 ‘무지의 병’을 치유해 주시어 복음선포자로 각자 삶의 자리로 파견하십니다. 우리가 바칠 마지막 유일한 기도를 화답송 후렴이 요약합니다.


“주님, 당신 자애로 저희를 구원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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