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3.주일 주님 세례 축일 

이사42,1-4.6-7 사도10,34-38 루카3,15-16.21-22

 

 

하느님의 자녀답게 삽시다

-위로와 치유, 기쁨과 평화-

 

 

오늘은 주님 세례 축일입니다. 성탄시기를 마감짓는 참 반갑고 기분 좋은 축일입니다. 내일부터는 다시 연중시기가 시작됩니다. 저녁 성무일도 찬미가도, 성모님의 노래 후렴도 참 아름답고 흥겨웠고, 방금 부른 화답송도 참 은혜로웠습니다. 

 

“구원자 주님이여 간구하오니, 우리게 인자로이 내려오시어

 우리의 마음속에 천상밝은빛, 가득히 넘치도록 내려주소서.”

 

“묵은 사람을 세례의 물을 통해서 새롭게 하시고

 우리에게 불멸의 옷을 입혀 주신 우리 구원자 께서

 오늘은 요르단강에 오시어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도다.”

 

“하느님이 당신 백성에게 평화의 복을 주시리라-”

 

주님 세례 축일에 주님께서 친히 주시는 아름다운 노래입니다. 전례의 아름다움은 찬미의 아름다움이고 말씀의 아름다움이며 주님의 아름다움입니다. 우리 모두 아름답고 행복하길 바라시는 주님이십니다. 

 

새벽에, 미사 참석할 형제자매들에게 드릴 무슨 좋은 선물 없을까 생각하다 2006년 자작 시집, ‘산은 나이도 먹지 않나 보다’를 펴는 순간, ‘언제나’라는 시가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주님 세례 축일에 주시는 주님의 참 좋은 선물이라 생각되어 나눕니다.

 

-언제나

 높이보다는 깊이를/화려함보다는 소박함을/드러나기 보다는 숨겨짐을

 복잡함보다는 단순함을/특별함보다는 평범함을/큰 것보다는 작은 것을

 시끄러움 보다는 고요함을/외적인 것보다는 내적인 것을

 부수적인 것보다는 본질적인 것을/보이는 것보다는 보이지 않는 것을

 추구하라!

 언제나

 하느님만을 추구하라!

 

 “오, 주님을 찾는 마음은 즐거워하여라”(시편105,3ㄴ)

 “늘 그분의 얼굴을 그리워하여라”(시편105,4ㄴ)

 

참 반갑고 고마운 주님 축일의 선물 시詩 ‘언제나’입니다. 저는 주님 세례 축일이 꼭 우리들 세례 축일처럼 생각됩니다. 사람이 되신 하느님이, 우리의 존엄한 품위의 원천이 예수님이십니다. 

 

주님께 세례 받아 죄를 용서 받고 주님과 하나되어 새사람이 된 우리들입니다. 이제 예수님을 닮아 예수님처럼, 하느님의 자녀답게 사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평생과제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우리의 운명이자 사랑이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의 세례보다 엄청난 사건이 어디 있겠습니까? 완전히 육적본능과 욕망의 동물적 삶에서 고귀한 품위의 하느님 자녀로서의 삶으로 격상된 것입니다. 완전히 운명이 바뀐 것입니다. ‘언제나’ 시에서처럼 완전히 인생관이,가치관이 바뀐 것입니다. 내적, 영적 세계로의 여정이, 무지의 어둠에서 벗어나 빛과 생명에로의 여정이 시작됐음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놀라운 은총의 선물로 세례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부질없는 상상이지만 한 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세례 받지 않았다면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말입니다. 평생을 살아도 하느님을 모르고 나를 모르는 무지의 삶이라면 얼마나 허무하고 억울하겠는지요. 

 

마침 주님 세례 축일을 맞이하여 가톨릭 평화신문과 가톨릭 신문이 동시에 1면 톱기사로 유아 세례의 필요성을 다루고 있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과 어느 사제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감했습니다.

 

-교황님은 “우리가 한 아이에게 세례를 주면, 성령께서 그 아이 안에 들어가 아이 안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성덕을 자라나게 하고 번성하게 돕는다.”라 말씀하셨고, 또 유아세례를 미루거나 자녀에게 종교를 선택할 권리를 주장하는 젊은 부부에게 어느 사제는 “성령께 대한 믿음이 없는 것이다. 어린 아기들의 예방접종을 할 때 자녀들의 의사를 알아보느냐?”말했다 합니다.-

 

우리는 이미 세례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됨으로 평생 하느님을 공부하고 나를 공부하는 평생학인이 되었습니다. 이게 진짜 공부입니다. 아무리 세상 공부 많이해도 하느님도 모르고 자기도 모르는 공부라면 헛공부요, 무지의 어둠속에 살기 마련입니다.

 

삶은 선물이자 과제입니다. 세례의 선물을 받았다 하여 당장 예수님처럼, 하느님의 자녀답게의 삶이 아니라 평생 예수님을 닮아 가면서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여정중의 우리라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예수님의 삶은 우리의 영원한 롤모델이 됩니다.

 

우선 부각되는 예수님의 겸손의 덕, 비움의 덕입니다. 아름다운 노년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품위, 유머, 겸손을 지녀야 한다 합니다. 세례자 요한의 겸손도 참 기분좋습니다. 주님 앞에 자기를 아는 것이 바로 겸손이자 지혜요 참 자유와 행복의 지름길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고백입니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오신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이런 지극한 겸손한 고백이 주님을 감동시키고 또 주님을 만나게 합니다. 세례자 요한에게 자원하여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시는 예수님 역시 자기비움과 겸손의 극치입니다. 정말 덕중의 덕이, 겸손의 덕, 비움의 덕입니다. 참으로 겸손의 여정, 비움의 여정에 항구하고 충실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의 세례 장면은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흡사 하늘문이, 하늘길이 활짝 열린 느낌입니다. 성령께서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분 위에 내리시고 하늘에서 들리는 하느님의 음성입니다. 이렇게 하늘과 소통해야 영혼이 삽니다. 세례를 통해 예수님의 신원이 환히 드러납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바로 이사야 예언의 실현입니다. 마치 미사에 참석한 우리 모두를 향한 주님의 말씀처럼 들립니다.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이 세례 받아 예수님과 하나되어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의 신원입니다. 우리 역시 하느님이 사랑하는, 마음에 드는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 수 있는 은총을 받았으니 이제 하느님의 자녀답게 사는 것이 우리의 평생과제가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처럼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사랑의 화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하시고 악마에게 짓눌리는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분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 임마누엘 예수님과 하나된 우리들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예수님처럼 삽니까? 바로 이사야 예언자가 답을 줍니다. 예수님은 물론 우리를 향한 말씀입니다.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바로 이것이 우리의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운 신원입니다. 그러니 주님의 종답게, 하느님의 자녀답게 사는 것입니다. 다음 이사야서 말씀이 참 고무적입니다. 그대로 우리가 닮아야 할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그는 외치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며 그 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도 않으리라.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그는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
 

이처럼 온유와 겸손, 자비와 지혜, 인내와 공정의 예수님을 닮아 성실히 지치지 않고 기가 꺾이는 일 없이 세상에 공정을 펴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의 빛이 되어 사는 것입니다. 무지의 어둠을 밝히는 주님의 빛이 되어, 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 갇힌 이들을 감옥에서,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을 감방에서 풀어 주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은 오늘 날을 현대판 신분사회, 노예사회라 합니다. 눈이 있어도 온갖 편견으로 보지 못하는 이들, 온갖 이념이나 고정관념으로 인해 자기감옥에 갇힌 수인들, 무지의 어둔 감방에 사는 이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주님은 이런 우리를 해방시켜 당신의 빛으로 살게 하십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세상의 빛이 되어 예수님의 해방의 구원활동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 세례 축일이 참 고맙고 반갑습니다. 주님은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도록 우리 모두를 격려합니다. 한 번의 세례지만 끊임없이 세례의 은총을 새롭게 해야 할 것입니다. 바로 주님의 이 거룩한 평생성사인 미사은총이 우리의 세례를 날로 새롭게 하면서 주님과의 일치를 날로 깊게 해 줍니다. 아멘.

 

 

 

 

 

 

 

 

  • ?
    고안젤로 2019.01.13 08:08
    주님, 주님이 저희에게 주신
    세례의 선물로 평생 예수님을 닮아가면서 하느님의 자녀가 되도록
    매일 주시는 말씀의 양식으로 영육간 지체를 튼튼하게 보존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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