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3.19.화요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

2사무7,4-5ㄴ.12-14ㄱ.16 로마4,13.16-18.22 마태1,16.18-21.24ㄱ

 

 

 

 

불암산 배경같은 성 요셉

-참 크고, 깊고, 고요한 분-

 

 

 

 

오늘 입당성가 280장 성 요셉 찬양은 언제 들어도 신바람이 납니다. 사순시기 우리 마음을 기쁨으로 활짝 꽃피게 합니다.

 

“성 요셉-찬양하세/주님의 양부를/정결하-신/마리아의 정배

 의로우신/성요셉/우리 양자로 삼-아/언-제나 우리 마-음-을

 정결케 하시며/의롭게/생활하-도-록/이끌어 주소서.”

 

오늘은 우리 성 베네딕도회 요셉 수도원의 주보 성인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입니다. 자랑스런 대축일에 참 자랑스런 요셉 성인입니다. 광야의 사순시기 흡사 오아시스처럼 느껴지는 대축일에 화당송 후렴도 우리를 기쁨으로 충만케 했습니다. 

 

“주-여, 넘치도록 자비를 베푸시어 우리 한생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잠시 충격적이며 신선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아주 예전 함세웅 신부님이 선종완 신부님과 함께 구약성서를 번역했던 개신교 구약학 전공의 문익환 목사님과 나눴던 일화입니다.

 

“하루는 문 목사님께서 ‘함신부!’하고 부르시더니, ‘나는 말이야, 예수님이 미혼모 아들인 것 같아.’ 그러시는 거예요. 저희 가톨릭에서 그것은 상상조차 못하거든요. 우리는 항상 ‘동정 성모 마리아’ 이렇게 말했는데---‘구약학 전공하신 목사님이 그렇게 해석하셔도 돼요?’ 그랬더니, ‘나, 그렇게 생각이 들어.’그러셔요. 문익환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셔서 내가 놀랐다는 것을 가톨릭에 소개한 적이 있어요. 놀란 것은 죄가 아니니까 이렇게 소개했지요.”

 

계속 이어지는 함신부님이 전해 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발상 자체가 독특하고, 마리아에 대해 그렇게도 접근하다니 참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했어요. ‘우리 시대의 많은 여성들, 그중에서도 미혼모의 자녀들이 세상을 구할 수 있는 구세주일 수 있다. 구세주를 꼭 하느님의 아들로서 기계적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다. 그런 역사 속에서, 약자 속에서 태어날 수 있다. 그 속에서 세상이 변화되고 구원이 이루어진다.’ 이런 과감한 구원론을 펼치시는 거예요. 그런 논의는 개신교 자유신학에서나 가능하지, 개신교에서도 근본주의에서나, 가톨릭 신학에서는 사실 불가능하거든요. 문익환 목사님의 그런 면모를 통해 신선한 자극을 받기도 하고 배우기도 했어요.”

 

함신부님의 진솔한 고백입니다. 우리로서는 받아들이기 참 거북한 내용이지만, ‘이런 깊고 넓은 측면의 이해도 있을 수 있겠구나!’ 하는 신선한 느낌도 듭니다. 이런 해석이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와 요셉의 성덕에 손상을 주기는 커녕 오히려 ‘우리 하느님의 전능과 자비는 더욱 빛나고 불우한 역경을 이겨낸 예수님과 성모님, 요셉 성인의 산같은 덕은 더욱 우러러 보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언뜩 들었습니다.

 

요셉 성인 하면 우선 연상되는 것이 ‘늘 거기 그 자리’ 요셉 수도원을 품에 안고 있는 듯한 배경의 불암산입니다. 꼭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의 배경이자 품같은, 아니 가톨릭교회의 영원한 배경이자 품같은, 하느님 아버지의 부성을 닮은 성 요셉이란 생각이 듭니다. 아주 예전 저녁 고요한 시간 불암산을 바라보며 써놓은 짧은 시가 생각납니다.

 

-“아/크다/깊다/고요하다/저녁 불암산!”-

 

첫째, 성 요셉은 큰 산같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의 마지막 구절,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하였다.’에서 요셉의 지체없는 순종을 통해 그분의 산같은 믿음이 잘 드러납니다. 말그대로 인내의 믿음, 순종의 믿음, 겸손한 믿음의 큰 산같은 성 요셉의 믿음임을 봅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서도 하느님께서 속내를 다 밝히실만큼 요셉을 깊이 신뢰하셨음을 깨닫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보다시피 나탄 예언자를 통해 주님의 말씀을 전달 받은 믿음의 사람, 다윗을 닮은 요셉입니다. 다윗에게 주어진 다음 약속은 믿음의 성인 요셉을 통해 실현됩니다.

 

“너의 집안과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굳건해지고, 네 왕좌가 영원히 튼튼하게 될 것이다.”

 

다윗에 버금가는 하느님의 신뢰를 한 몸에 받았던 믿음의 성인 요셉입니다. 또한 제2독서에서 바오로가 소개하는 아브라함의 믿음에 버금가는 요셉 성인의 믿음이었음을 봅니다.

 

“아브라함은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너의 후손들이 이렇게 많아질 것이다.’ 하신 말씀에 따라 ‘많은 민족의 아버지가 될 것을 믿었습니다.”

 

이런 믿음의 성 요셉을 참으로 사랑하셨던 성 요한 23세 교황님입니다. 교황님의 진솔한 고백도 감동입니다.

 

“성 요셉, 나는 이 성인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 나는 제일 먼저 성 요셉의 이름을 부르고 성 요셉의 일을 사랑하지 않고는 내 하루의 일을 시작할 수도 끝낼 수도 없을 정도로 성 요셉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둘째, 성 요셉은 참 깊은 연민의 사람이었습니다.

좋은 산은 높은 산이 아니라 깊은 산이라 합니다. 좋은 사람 역시 높은 사람이 아니라 깊은 사람입니다. 깊은 산에 맑은 물이듯 깊은 사람에 맑은 영성입니다. 산처럼, 바다처럼 깊은 사람이 성 요셉입니다. 바로 가이없이 깊은 하느님을 닮은 연민과 겸손의 성 요셉입니다. 

 

바로 곤경에 처한 마리아에 대한 섬세한 배려에서 성 요셉의 연민의 깊은 사랑이, 참으로 겸손한 사랑이 잘 드러납니다. 그대로 하느님 같은 마음입니다.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성 요셉을 통해 참 사람 하나 만나는 느낌에 기분이 좋습니다. 참으로 연민의 사랑, 겸손한 사랑이 있어 비로소 의로운 사람임을 봅니다. 오로지 하느님같은 마음으로 마리아편에 서서 그를 보호한 의인 요셉의 고귀한 인품이 감동적입니다.

 

셋째, 성 요셉은 참 고요한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기도가 답입니다. 요셉 성인은 평소 끊임없는 기도로 하느님과의 관계를 깊이해 왔음이 분명합니다. 바로 이런 기도가 성 요셉을 큰 산같은 믿음의 사람, 깊은 바다같은 연민의 사람으로 만들었음을 봅니다. 요셉의 고요한 밤샘 기도중 꿈에 나타난 주님 천사의 전갈입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밤샘 고요한 기도중에 들려온 주님의 말씀입니다. 새삼 주님과 얼마나 깊은 관계의 친교를 나눈 성 요셉인지 깨닫게 됩니다. 요셉은 ‘하느님을 돕다.’라는 뜻입니다. 평생 하느님을 돕듯이 성가정을 돕고 보호하는 데 한평생 항구하고 충실하셨던 성 요셉이었습니다.

 

교구설정 50주년을 맞이한 안동교구는 ‘존천안빈存天安貧’을 그 영성 모토로 택했다 합니다. ‘하늘의 뜻을 가슴속에 간직하면서 가난을 편안하게 여기고 하느님의 가르침을 즐기며 살아가는 정신’이라 합니다. 그대로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너그러움과 사랑, 청빈의 정신을 담은 존천안빈의 영성입니다. 부전자전입니다. 바로 성 요셉의 존천안빈 영성을 그대로 닮은 예수님의 영성을 살려는 안동교구입니다.

 

참 자랑스럽고 매력적인, 하느님 아버지를 그대로 닮은 아버지의 영원한 롤모델인 성 요셉입니다. 요셉 수도원 배경의 산처럼 크고 깊고 고요한, 믿음과 연민, 기도의 사람, 성 요셉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또한 성 요셉같은 크고 깊고 고요한 믿음과 연민, 기도의 사람으로 변모시켜 주십니다. 성 요셉 성월의 3월, 성 요셉에게 바치는 기도로 강론을 마칩니다.

 

“우리 주 예수님을 기르신 아버지시오

 정결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이시며

 임종하는 이의 수호자이신

 성 요셉에게 청하오니

 하느님께 빌어 주시어

 저희가 예수님을 사랑하며 충실히 따르게 하소서.

 또한 죽을 때에 저희를 지켜 주소서.” 아멘,

 

  • ?
    고안젤로 2019.03.19 08:40
    주님, 오늘 주신 말씀처럼
    살기위해 제 생활에서 비우면 비워지고
    놓으면 놓아지는
    생각으로 살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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