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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0. 주님 공현 후 토요일(뉴튼수도원 61일째)

                                                                                                                                   1요한5,14-21 요한3,22-30


                                                                                     아름다운 인생

                                                                                     -충만한 기쁨-


오늘도 몇몇 단상으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제가 쓰는 강론은 하루하루 삶의 기록입니다. 특히 안식년 중에는 '순종하는 마음'으로, '밥값(?)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강론 글을 써서 홈페이지에 올립니다. 아버지께 올리는 사랑의 편지이자 형제자매들에게 드리는 사랑의 편지이며 제 사랑의 고백의 일기입니다. 마치 매일 끊임없이 이어지는 강론이 '사랑의 강'처럼 느껴지고 모아진 강론들은 흡사 '사랑의 바다'를 연상케 합니다. 

왜 다산 정약용이 18년 간의 유배지에서 일기쓰듯 많은 글들을 꼬박 썼는지, 왜 토마스 머튼이 매일 일기와 더불어 무수한 글을 썼는 지, 신영복 선생이 20여년의 옥살이에서 '감옥에서의 사색' 같은 주옥 같은 글들을 남겼는지 이해하게 됩니다. 모두가 목숨을 걸고 '살기위하여' 사랑을 다해 쓴 글들입니다.  자기와의 싸움에 치열하고 항구했던, 참으로 아름답게 살았던 인생들입니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고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습니다. 어찌보면 인생은 감옥 같기도 합니다. 도저히 탈옥이 불가능한 감옥입니다. 작은 감옥, 큰 감옥의 차이일 뿐입니다. 길게만 느껴졌던 산티야고 순례도 끝이 있었고, 미국 뉴튼수도원에서의 순례도 이제 끝이 보이며, 1년여의 안식년도 끝이 보입니다. 공동체의 사정에 의해 약간 앞당겨 올 2.28일(토) 요셉수도원에 귀원하여 3.1일 주일 미사를 주례로 다시 원내 생활이 시작됩니다.


어제 빠코미오 원장수사님의 이메일 연락을 받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세월의 무상함을 절감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시간의 감옥'을 탈주할 수 없는 '시간의 수인(囚人)'들임을 깨닫습니다. 하여 요즘은 모두가 가난해 보이고 불쌍해 보입니다. 요셉수도원의 형제들이나 여기 뉴튼수도원의 형제들은 물론이고 생각나는 모든 이들이 그러합니다. 모두 나름대로 힘겹게 제 십자가의 짐을 지고 살아가는 분들이요, 참으로 위로와 격려가, 때로는 실질적인 도움을 필요로 하는 도반들입니다. 저절로 연민의 마음이 울어납니다.


기쁘게 살 때 아름답습니다. 인생 감옥에서의 해방의 자유를 위해 기쁘게 살아야 합니다. 기쁨보다 이웃에게 줄 수 있는 좋은 선물은 없습니다. 기쁨에 저절로 따라오는 평화의 선물입니다. 여기 뉴튼수도원의 사무엘 원장 신부님의 늘 웃음 띈 얼굴로 기쁘게, 긍정적으로, 적극적으로 사는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오후에는 꼭 밖에 나가서 육체노동을 합니다. 선의(善意)의 유모어와 재치도 뛰어나 별명 작명의 대가(?)라 할 만 합니다. 신부님이 작명한 요셉 수도원의 두 형제들의 '나르는 물방개', '불암산 건들 바위'라는 별명은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납니다. 세계 베네딕도회 수도원 및 은인들에게 발송하는 연말편지 중 저에 관한 내용도 긍정적 시각이 빛납니다.


'신부님은 우리의 연중 피정을 지도했고 많은 면에서 우리를 도와줬다. 신부님은 한국의 그 지역 내에서 꽤 유명한 영적 지도자이고 많은 신자들과 사제들, 수도자들이 고백성사를 보기 위해 신부님을 찾아 온다. 신부님은 여기서도 많은 이들을 돕고 있다.'


과찬이지만 이 또한 신부님이 저에게 준 '기쁨의 선물'입니다. 진정 '영적 지도자'다운 삶을 살아야 겠다는 마음을 새로 하게 됩니다. 아름다운 인생은 기쁨의 인생입니다. 기쁨의 빛이 허무의 어둠을 몰아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쁘게 살아야 합니다. 기쁨이야 말로 참 영성의 표지입니다. 기쁨의 선물이 자신은 물론 이웃에게 용기와 격려가 되고 위로와 치유가 됩니다. 오늘은 '기쁨의 아름다운 인생'에 대한 묵상 나눔입니다.


첫째, 주님을 사랑할 때 기쁨의 아름다운 인생입니다.

주님을 사랑함이 우선입니다. 주님을 사랑할 때 샘솟는 기쁨이요 아름다운 인생입니다. 주님 향한 열렬한 사랑은 성덕의 잣대입니다. 마음 착해서 성인이 아니라 하느님 향한 열렬한 사랑 있어 성인입니다. 사랑만이 허무를 몰아냅니다. 모든 성인들의 우선적 특징도 하느님 사랑에 있습니다. 베네딕도 성인 역시 수도형제들에게 그 무엇도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보다 앞세우지 말라 권고합니다. 


오늘 복음의 요한이 그 생생한 증거입니다. 마치 제자들과 함께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는 모습이 서로 경쟁자처럼 느껴지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스승님, 요르단 강 건너편에서 스승님과 함께 계시던 분, 스승님께서 증언하신 분, 바로 그분이 세례를 주시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분께 가고 있습니다.“

인기가 예수님께로 집중되고 있으니 요한에겐 질투심이 끓어 오를 법 한 위태로운 상황입니다. 그러나 요한은 주님을 사랑했고 누구인지 알았습니다.


"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다.“

요한은 즉시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았습니다. 바로 하느님으로부터 오신 분임을,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예수님의 은사임을 알아 챈 요한입니다. 주님을 사랑했기에 이런 깨달음입니다. 이런 '깨달음의 빛'이 질투심의 어둠을 몰아내고 관대한 사람으로 만듭니다. 요한의 넉넉하고 관대한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둘째, 자신을 사랑할 때 기쁨의 아름다운 인생입니다.

주님을 알 때 자신을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됩니다. 바로 주님을 앎으로 자신을 아는 것이 겸손입니다. 자신을 알 때 자신을 더욱 사랑하게 됩니다. 예전 마르꼬 수사님에게 써드린 자중자애(自重自愛)란 글귀가 생각이 납니다. 정말 자존감 약해 가는 현대인들에게 주고 싶은 말입니다. 하느님 사랑 다음으로 자중자애의 자기 사랑입니다. 진정 주님을 사랑할 때 자기를 아는 겸손과 지혜요 자중자애의 사람이 됩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분에 앞서 파견된 사람일 뿐이다.“

자기의 신원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는 겸손한 요한입니다. 그리스도 없는 요한은 상상할 수 없듯이 그리스도 없는 우리 또한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와 사랑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자중자애의 겸손이요 참 나의 발견이요 실현입니다. 겸손할 때 아름다운 인생이요 겸손에서 샘솟는 참 기쁨입니다.


셋째, 작아질수록 기쁨의 아름다운 인생입니다.

겸손은 사랑으로 작아지는 것이요 비워가는 것이요 낮아지는 것입니다. 모든 수행이 궁극으로 목표하는 바입니다. 진정 사랑의 성장은 겸손의 성장입니다. 살아갈수록 작아질 때, 비워갈 때, 낮아질 때 아름다운 인생입니다. 텅 빈 충만의 아름다움에서 샘솟는 충만한 기쁨입니다. 신랑(예수님)과 신랑 친구(요한)의 비유를 통해 자신의 기쁨을 피력하는 요한의 모습은 얼마나 행복하고 아름다워 보이는지요.

"신랑 친구는 신랑의 소리를 들으려고 서있다가,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내 기쁨도 그렇게 충만하다.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한다.“


바로 여기 행복한 삶, 자유로운 삶, 기쁨의 삶, 아름다운 삶의 비밀이 있습니다. 신랑 예수님의 친구들인 우리 모두의 고백으로 삼아도 너무 좋은 고백입니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에 참여한 기쁨도 이래야 합니다.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바로 참된 영적여정을 요약하는, 평생 마음에 새기고 살아야 할 말씀입니다. 우리 영적 삶의 유일한 목표입니다.


바로 요한 세례자처럼, 우리 교회의 성인들처럼 아름다운 인생을 사는 사람이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입니다. 1독서 사도 요한의 말씀처럼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우리는 모두 세상을 이기며 죄를 짓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태어나신 분,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시어 악마가 손을 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시간, 우리 모두 참 하느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신 주님을 모심으로 기쁨 충만한 아름다운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주 내 하느님은 나의 힘이시며, 나를 사슴처럼 달리게 하시고 산 봉우리로 나를 걷게 하시나이다."(하바3,1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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