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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6.17.연중 제11주간 수요일                                                     2열왕2,1.6-14 마태6,1-6.16-18

 

 

 

농부 하느님

-겸손과 온유, 진실과 지혜-

 

 

 

"내 마음이 당신을 향하여 있사오니, 주여, 이 종의 영혼에게 기쁨을 주소서."(시편86,4)

 

수도원 농장에 살면서도 어제는 참 부끄럽게도 오랜만에 야외 농장에서 오전 한나절 매실 수확을 도왔습니다. 책 몇권 읽은 것보다 많은 깨달음을 얻은 날입니다. 하루 11193보를 걸었고 체중도 1kg 줄었습니다. 역시 자연은 살아있는 성서요, 자연속에서 함께의 농사 노동은 사람들에게 참 바람직한 일임을 새삼 깊이 깨달았습니다. 겸손의 눈이 열리니 온통 배울 것뿐이요, 흡사 깨달음의 선물들을 줍는 느낌이었습니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요한15,1)

 

예수님은 하느님을 농부 아버지라 고백합니다. 농부들에게는 얼마나 고마운 복음 말씀이겠는지요. 온몸과 온맘으로 정직하고 진실하게 살아가는 농부들을 볼 때마다 창백한 이론의 한계와 더불어 늘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어제 읽은 글도 나눕니다.

 

“소유와 소비가 삶의 질을 좌우하는 도시적 삶을 거부하고 땅으로 돌아간 사람을 나는 ‘미래를 먼저 사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내게는 저 지역들이 아직은 미미하지만 ‘좋은 삶’의 발상지로 보인다. 가난하지만 의미를 추구하는 삶들이 모여 공생공락하는 사회가 탄생하는 곳말이다.

석유가 발견되면서 벼락부자가 된 중동 지역에서 널리 알려진 우화가 있다. 할아버지는 낙타를 타고 아버지는 자동차를 타고 아들은 비행기를 탄다. 아들의 아들은 다시 낙타를 타게 될 것이다. 의미심장한 경고다. 

우리의 할아버지는 농업을 하고 아버지는 상업을 하고 아들은 서비스업을 한다. 우리 아들의 아들은 아마 다시 농업을 하게 될지 모른다. 미래를 먼저 사는 사람들을 새삼 눈여겨 본다.”(경향6.16.이문재)

 

사막의 교부 아르세니우스의 일화입니다. 어느 날 압바 아르세니우스가 어떤 연로한 농부에게 자기 생각들에 관해 조언을 구했습니다. 누군가 그것을 보고 후에 압바에게 물었습니다.

 

-“압바. 아르세니우스님, 그렇게 훌륭한 교육을 받은 압바가 어째서 이 농부에게 당신 생각들에 관해서 묻는 것입니까?”

아르세니우스가 대답했다.

“나는 참으로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배웠지만 이 농부의 알파벳조차 모릅니다.”-

 

자연성서속에서 살아 오며 삶의 지혜를 터득한 농부들이야 말로 누구보다 하느님을 가장 많이 닮은 사람들입니다. 기다림과 인내, 겸손과 진실의 농부들의 덕은 그대로 하느님의 덕을 닮았습니다. 매실 열매가 작고 병이 들은 것도 많았습니다.

 

“가물어서 그렇습니다. 약을 쳐야 하는 건데 약을 치지 않았네요!”

 

농부 수도형제의 답변입니다. 하늘에서 내려 주시는 은총의 비가 얼마나 절대적인지 깨닫습니다. 아무리 품종 좋은 나무라도 물이 없고 거름을 하지 않고 때로 농약을 치지 않으면 좋은 수확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물, 비료, 약은 농사에 3대 필수요소임을 깨닫습니다. 마치 기도, 성독, 노동이란 영성생활의 필수 3대 요소와 흡사합니다. 

 

어찌보면 농사뿐 아니라 모든 일이 깊이 보면 섬김의 일, 서비스업에 속합니다. 하여 부단한 기도를 통한 사랑의 열정, 공부를 통한 유능한 실력, 운동을 통한 건강 체력의 배양培養이 섬김의 일에 필수 요소임을 깨닫게 됩니다.이런 깨달음도 더욱 겸손하게 합니다. 노동하는 수도형제들과 오전 내내 함께 하는 복돌이(개 이름)의 충성심과 의리도 새삼스런 가르침이었습니다.

 

혼자의 노동은 불가능합니다. 함께 들어야 하고 함께 옮겨야 합니다. 더불어 형제애도 생기고 형제들에 대한 고마움도 갖게 되니 저절로 겸손을 배우게 됩니다. 정말 큰 배밭에서 농사를 짓다 보니 얼마나 많은 일손들을 필요로 하는지 모릅니다. 마침 적과를 하던 다섯 자매들도 얼굴의 복면과 마스크를 벗고 함께 간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적과때에는 볼 수 없는 얼굴들을 보니 반가웠습니다. 

 

일하다가 맞이하는 간식의 휴식 시간은 얼마나 소중한 참된 시간인지요. 노동의 수고가 있기에 이런 감미로운 휴식시간입니다. 정말 동지애, 형제애도 함께의 노동을 통해 형성됨을 봅니다. 함께함이 위로와 격려가 되고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주는 은총의 힘입니다.

 

자매들을 보며 여성들에게 아름다움은 얼마나 본능적인지 깨닫습니다. 짧은 간식의 휴게 시간중에도 불구하고 일제히 거울을 들여다 보며 화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각자 고유의 아름다움을 지닌 제 얼굴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참으로 거울을 통해 얼굴을 보며 정성스레 화장을 하듯 하느님 거울에 자신의 영혼을, 마음을 들여다 보며 정성을 다해 화장에 힘쓰는지 묻게 됩니다. 

 

보이는 얼굴보다 더 소중한 영혼의 얼굴, 마음의 얼굴입니다. 정말 겸손하고 온유한 예수성심의 마음에 그리스도의 겸손의 향기라면 어떤 화장보다도 보이지 않는 영혼의, 마음의 얼굴을 아름답고 고귀하게 가꿀 것입니다. 바로 끊임없이 바치는 하루 7회 시간경의 시편성무일도와 매일미사의 공동전례기도가 영혼의, 마음의 얼굴들을 돌보는 화장시간임을 깨닫습니다. 

 

무엇보다 하느님 찬미와 감사의 기도 은총이 마음을 정화하여 순수하고 지혜롭게, 겸손하고 온유하게 만듭니다. 거룩한 함께의 전례기도뿐 아니라 함께의 육체 노동도 사람들의 마음을 정화하여 진실하고 겸손하게 만듭니다. 참으로 어제는 모처럼 함께의 육체 노동을 통해 겸손에 대해 많이 깨달은 날입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도 겸손입니다. 겸손한 사랑, 겸손한 믿음, 겸손의 아름다움, 겸손의 힘입니다. 모든 덕의 어머니가 겸손입니다. 영성의 잣대, 성덕의 잣대가 겸손입니다. 복음은 올바른 자선, 올바른 기도, 올바른 단식을 통해 우리에게 겸손을 가르칩니다. 참으로 겸손한 사람은 자기가 겸손한 줄도 모릅니다.

 

주님은 절대 위선자들처럼 사람들에게 보이려 하지 말고,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자선을 숨겨 두라 하십니다. 기도할 때는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아버지께 기도하라 하십니다. 단식할 때는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하십니다. 

 

모두 감쪽같이 숨겨진 겸손한 수행을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얼마나 위선을 혐오하셨는지, 참으로 진실과 겸손이 얼마나 귀한 덕인지 깨닫습니다. 비록 감춰진 수행이지만 절대로 닫힌 수행이 아니라 하느님과 이웃에 활짝 열린 수행들입니다. 세차례에 걸쳐 반복된 결론 말씀도 주목됩니다.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아 주실 것이다.”

 

참으로 철저한 하느님 중심의 삶에서 기인하는 은총의 열매가 겸손과 진실이요 지혜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제1독서 열왕기 하권은 엘리야의 승천을 보여줍니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겸손을 그대로 보고 배웠을 것입니다. 에녹과 모세에 이은 세 번째 승천한 분이 바로 엘리야입니다. 땅에서 모세처럼 겸손한 사람이 없었다 하는데 엘리야도 그렇습니다. 엘리야와 엘리사 두 사제의 대화가 의미심장합니다.

 

-“스승님 영의 두 몫을 받게 해 주십시오.”

“너는 어려운 청을 하는 구나. 주님께서 나를 데려 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대로 되겠지만, 보지 못하면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마침내 엘리야의 승천으로 하느님은 그의 겸손을 인정하셨습니다. 엘리야가 참으로 겸손했음을 확증하는 승천의 은총입니다. 엘리야의 승천을 목격한 엘리사, 바로 그의 겸손의 눈이 열렸기에 가능했습니다. '자기를 섬기는(self-serving)' 교만으로 내려가지만 '자기를 내어 주는(self-giving)' 겸손으로 올라갑니다. 이 또한 영적 삶의 역설적 진리입니다. 

 

참으로 영적 삶은 깨달음의 여정이자 겸손의 여정입니다. 깨달아 가면서 날로 겸손과 온유, 진실과 지혜의 주님을 닮아 갑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깨달음의 여정, 겸손의 여정에 항구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 

 

“주님께 청하는 오직 한 가지, 나 그것을 얻고자 하니, 내 한평생, 주님의 집이 사는 것이라네.”(시편27,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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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안젤로 2020.06.17 08:54
    "참으로 철저한 하느님 중심의 삶에서 기인하는 은총의 열매가 겸손과 진실이요 지혜임을 깨닫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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