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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9.연중 제3주간 토요일                                                     2사무12,1-7ㄷ.10-17 마르4,35-41

 

 

내적 안정과 평화

-중심이신 주님과 일치의 믿음-

 

 

주님을 삶의 중심에 모시고 살 때, 어지럽고 혼란한 세상 바다에서도 노아의 방주 같은 공동체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새벽 성무일도시 다음 시편 구절이 오늘 복음을 요약합니다.

 

“광풍을 순풍으로 가라앉히사, 바다의 물결이 잔잔해지니, 

잔잔해져 좋아라 날뛰는 그들을, 희망의 포구로 이끄셨도다.”(시편107,29)

 

이어지는 시편 구절도 주님 함께 하실 때 일어나는 은총의 기적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사막을 호수로 바꾸시기도, 마른땅이 샘터가 되게도 하셔,

주린이들 거기에 살게 하시니, 살만한 도읍을 그들이 세웠도다.”(시편107,35-36)

 

'풍랑을 가라앉히시다.' 오늘 복음의 주제입니다. 풍랑을 가라앉혀 미풍으로 바꾸신 주님이십니다. 지난 하느님 나라의 네 비유에 이은 풍랑에 시달리던 제자들을 구해 낸 주님의 기적입니다. 바로 예수님 자체가 하느님 나라의 실현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오늘 지금 여기 삶의 중심이신 하느님의 나라이신 예수님과의 일치가 내적 안정과 평화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삶의 중심이신 주님과 함께 할 때 풍랑은 미풍으로 변하면서 내적안정과 평화입니다. 참으로 세상이나 공동체가, 개인이 내적으로 불안하고 흔들리는 것은 중심이신 주님과 일치의 믿음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중심을 잃어버려 인생항해중 난파되거나 조난당한 공동체나 개인이란 배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나라든 가정이든 개인이든 흡사 사상누각沙上樓閣, 모래 위의 집처럼 위태해 보이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겉은 화려하나 내부는 견고하지 못하고 날림공사 집처럼 참 허술하고 엉성해 보입니다. 어디서부터 해결해야 할지 복합적이라 해결도 난망해 보입니다. 우선적 주요 원인은 삶의 중심이신 주님과 믿음의 일치가 약하기 때문입니다.

 

요즘 자주 강조했던 내용이 미풍을 태풍으로 만들지 말고 태풍을 미풍으로 만들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참으로 깨어 주님과 함께 할 때 비로소 미풍은 폭풍이 되지 않고 폭풍은 미풍으로 변하면서 실현되는 내적 안정과 평화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복음의 예화가 상징하는 바 참 의미심장합니다. 바로 인생항해중 험한 풍랑으로 위기에 처한 위태한 국가나 가정, 교회 공동체나 개인의 현실을 보여줍니다. 

 

난데없이 돌풍이 일어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서, 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차게 되었는데도 예수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십니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도 주무시고 계신 주님을 통해 주님의 믿음이 얼마나 견고하신지 봅니다. 참으로 하느님과 깊은 믿음의 일치를 이룬 예수님이심을 깨닫습니다.

 

배안 제자들의 조치가 참 신속합니다. 제자들은 공동체의 중심이자 삶의 중심이신 주님을 깨우며 도움을 청합니다. 참으로 위기에 처했을 때 즉시 중심이신 주님을 향한 구원 요청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좋은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지혜는 평소 중심이신 주님과 믿음의 일치를 굳건히 해두는 것입니다. 이래서 우리가 평생 끊임없이 하루하루 날마다 바치는 공동전례 기도입니다. 아마 이 기도가 없었다면 요셉 수도공동체라는 배는 중심을 잃어 벌써 난파되었을 것입니다. 난파 위험에 처한 배 안 제자들의 외침이 흡사 절박한 기도처럼 들립니다.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즉시 공동체의 중심이신 주님의 응답입니다. 예수님께서 깨어나시어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더러,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하시니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집니다. 돌풍을 미풍으로 바꾼 주님이십니다. 참으로 깨어 중심이신 주님과 믿음의 일치를 살 때 미풍이 태풍으로 변하는 일도 없을 것이며 태풍도 곧 고요한 미풍으로 변해 내적평화와 안정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 주님의 말씀은 우리 모두를 향한 말씀처럼 들립니다.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바로 공동체의 중심, 삶의 중심이신 주님이신 당신을 잊은 제자들에 대한 질책입니다. 바로 가까이 중심에 계신 주님께 대한 믿음 없음을 질책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참으로 공동체든 개인이든 내적평화와 안정에 주님과 믿음의 일치가 얼마나 결정적인지 깨닫습니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제자들에게 주어진 평생 화두와 같은 질문이자 역시 오늘 우리에게 주어지는 화두입니다. 바로 예수님은 하느님의 현현이요 화신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주님을 모심으로 내적안정과 평화를 회복하는 이 거룩한 미사시간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만나는 하느님입니다. 그러니 이런 삶의 중심, 공동체의 중심인 예수님과 믿음의 일치가 모두임을 깨닫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다윗의 불행이 한 눈에 드러납니다. 다윗의 완전 범죄는 하느님 눈에 낱낱이 폭로됩니다. 어제 말씀드린 노자의 ‘천망회회 소이불실(天網恢恢 疎而不失)’의 진리가, 즉 그 무엇도 하느님의 그물망을 빠져나갈 수 없다는 진리가 그대로 입증됩니다. 세상 다 속여도 하느님만은 속일 수 없습니다. 나탄 예언자의 예화를 곁들인 설명이 얼마나 구체적인지 실감이 갑니다. 다윗은 자기를 두고 하는 말인지도 모르고, “주님께서 살아 계시는 한, 그런 짓을 한 그자는 죽어 마땅하다.” 나탄의 말에 적극 동조할 때 나탄은 다윗을 직격합니다.

 

“임금님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나탄의 이런 직언의 용기, 그대로 믿음의 표현입니다. 이어지는 다윗의 엄청난 불행이 예고됩니다. 다윗 가정 공동체가 다윗의 대죄로 인해 완전 난파된 느낌입니다. 중심이신 하느님을 잊음으로 유혹에 빠져 중심을 잃은 결과 자초한 재앙의 불행입니다.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소.”

 

다윗의 회개입니다. 바로 어제 오늘 화답송 시편은 다윗의 애절한 회개의 시편입니다. 회개는 하여 용서는 받았지만 이어지는 다윗의 보속의 시련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다윗의 위대함은 회개에 이어 시련의 보속을 묵묵히 믿음으로 끝까지, 한결같이 받아들이고 견뎌냈다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다윗과 솔로몬을 빗댄 ‘회개한 성인은 있어도 부패한 성인’은 없다는 말씀도 생각이 납니다. 

 

절망은 없습니다. 믿는 이들에게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절망, 실망, 원망의 삼망입니다. 다윗처럼 회개하여 용서받고 다시 하느님 희망의 끈을 꼭 잡고 믿음으로 살아가면 구원입니다. 얼마전 교황님의 감동적인 강론 말씀을 나눕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죄에 놀라지 않으신다. 그분은 우리의 죄보다 더 크시다. 그분은 아버지이시고 사랑이시고 부드러우시다. 그분은 우리의 죄에, 잘못에 놀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닫힌 마음에 놀라신다. 그 닫힌 마음이 그분을 고통스럽게 한다. 그분 하느님은 당신 사랑에 대한 우리의 믿음 없음에 놀라신다.”

 

절망의 하느님이 아니라 희망의 하느님, 사랑의 하느님입니다. 하느님 사전에 없는 단어가 절망이요 정말 대죄는 스스로 자기를 닫아버리는 자포자기의 절망입니다. 어떤 처지에서든 하느님께 궁극의 희망을 두고 오늘 지금 여기 중심에 계신 주님을 향해 활짝 마음을 열어 믿음의 일치를 이룰 때 내적안정과 평화의 구원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이런 믿음을 선물하시어 마음과 공동체의 풍랑을 잠잠케 하시어 내적 고요와 안정, 그리고 평화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하느님, 제 마음을 깨끗이 만드시고, 제 안에 굳건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구원의 기쁨을 돌려주시고, 순종의 영으로 저를 받쳐주소서.”(시편51,12.1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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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안젤로 2022.01.29 08:53
    "하느님은 우리의 죄에 놀라지 않으신다. 그분은 우리의 죄보다 더 크시다. 그분은 아버지이시고 사랑이시고 부드러우시다. 그분은 우리의 죄에, 잘못에 놀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닫힌 마음에 놀라신다. 그 닫힌 마음이 그분을 고통스럽게 한다. 그분 하느님은 당신 사랑에 대한 우리의 믿음 없음에 놀라신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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