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2.24.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                                                           이사58,1-9ㄴ 마태9,14-15

 

 

 

참된 단식, 참된 수행, 참된 종교

-분별의 잣대는 사랑과 정의-

 

 

 

단식이 절대는 아닙니다. 단식할수도 있고 안할 수도 있습니다. 구원과는 무관한 단식입니다. 단식은 상대적이요 절대적인 것은 사랑입니다. 분별의 지혜가, 사랑이 절대적입니다. 예수님 마음, 하느님 마음이 분별의 잣대입니다. 사실 배고픈 이들은 단식이 아니라 먹어야 합니다. 참으로 영양과잉으로 비만한 이들이, 또 탐식하는 이들이 단식해야 합니다. 

 

건강을 위한 단식이, 다이어트를 위한 악세사리같은 사치스런 단식이 아니라, 춥고 배고픈 이웃에 연민의 마음을 불러 일으켜 사랑과 정의를 실천할 때 비로소 단식은 가치가 있습니다. 닫힌 단식이 아니라 주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활짝 열린 자발적 기쁨의 단식 수행이요 이런 단식이야 말로 참 아름다운 회개의 표지가 됩니다.

 

침묵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침묵은 절대적 가치가 아니라 상대적입니다. 말많은 이들, 교사나 정치가, 법조인들, 방송인들 등 말많이 하는 이들이나 공동생활을 하는 이들은 정말 침묵해야 합니다. 혼자 외롭게 사는, 늘 침묵중에 지내는 대화에 굶주린 외로운 독거의 사람들은 침묵이 아니라 말해야 합니다. 

 

오늘 제1독서 이사야서와 복음은 단식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단식뿐 아니라 우리의 수행 전반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더 나아가 전례와 삶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됩니다. 참으로 중요한 것이 분별의 지혜, 분별의 사랑임을 깨닫습니다. 단식하면 늘 생각나는 “먹고 겸손한 것이 안먹고 교만한 것보다 낫다.” 옛 장상의 유머스런 진리가 함축된 말씀입니다. 단식하면서 잘 먹는 이웃을 판단하는 죄를 짓는 것보다는 아예 먹고 판단 않는 겸손이 좋다는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 이사야서 성서를 찾아 보니 소주제가 “참된 단식”이었습니다.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새삼 참된 단식은 물론 참된 전례, 참된 종교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사랑과 정의의 삶이 결여된 단식이요 전례요 종교라면 참 위선적이요 공허할 것입니다.

 

왜 이렇게 단식의 수행에, 고행에 충실한데 왜 보아주지 않는가, 알아주지 않는가 하는 항의가 참 순진하고 유치해 보입니다. 이들에 대한 이사야 예언자를 통한 주님의 말씀이 참으로 통쾌합니다. 그대로 하느님 마음, 예수님 마음의 반영입니다.

 

“내 백성에게 그들의 악행을, 죄악을 알려라. 그들은 마치 정의를 실천하고 공정을 저버리지 않는 민족인양, 날마다 나를 찾으며, 나의 길을 알기를 갈망한다. 그들은 나에게 의로운 법규를 물으며, 하느님께 가까이 있기를 갈망한다. 단식하는데 왜 보아주지 않는가, 고행하는데 왜 알아주지 않는가 항의한다.”

 

눈먼 열심입니다. 정의와 공정이, 사랑이 실종된 극단의 종교적 수행에 몰두하는 이들입니다. 전례와 삶이 유리된 삶입니다. 이어지는 이사야 예언자를 통한 주님의 질책이 정곡을 찌릅니다.

 

“보라, 너희는 너희 단식일에 제 일만 찾고, 너희 일꾼들을 다그친다. 보라, 너희는 단식한다면서 다투고 싸우며, 못된 주먹질이나 하고 있다. 저 높은 곳에 너희 목소리를 들리게 하려거든, 지금처럼 단식해서는 안된다.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불의한 결박을 풀어주고, 멍에 줄을 끌러 주는 것,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 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은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너의 빛이 새벽빛처럼 터져 나오고, 너의 상처가 곧바로 아물리라. 너의 의로움이 내 앞에 서서 가고, 주님의 영광이 네 뒤를 지켜 주리라. 그때 네가 부르짖으면 주님께서 ‘나 여기 있다.’하고 말씀해 주시리라.”

 

참된 단식, 참된 수행, 참된 종교는 어떠해야 하는지, 우리의 실상을 거울처럼 비춰주는, 참으로 우리 종교인들을 부끄럽게 하는 말씀입니다. 단식이나 고행, 전례의 거부가 아니라 이런 구체적 정의와 사랑의 실천이 결여된 헛된 단식, 헛된 전례, 헛된 종교에 대한 비판입니다. 세속화와 더불어 날로 부와 권력의 특권층이 되어 감으로 세상의 소금과 빛의 예언자적 사명을 잃어가는 작금의 일부 종교권력, 종교귀족의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양극단은 위험합니다. 열심히 지나치다 보면 균형과 조화를 잃을 수 있고, 맹신이 광신이 될 수 있고, 분열과 갈등이 끊이지 않습니다. 교회 역사상 이단은 언제나 극단주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사야서 말씀은 전례나 종교 수행의 거부가 아니라 일방적으로 치우친, 사랑과 정의가 실종된 종교에 대한 비판입니다. 참으로 이웃의 고통에 활짝 깨어 열려 있는, 균형과 조화의 전례나 종교 수행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의 모범이 오늘 복음의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단식을 거부하지 않습니다. 단식에도 분별의 지혜와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요한의 제자들은 단식이 절대인양 단식의 잣대를 들이대며 왜 자기들처럼 단식을 많이 하지 않는가 예수님께 추궁합니다. 이들에 대한 주님의 답이 참 적절합니다.

 

“혼인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단식할 것이다.”

 

시도 때도 없는 무질서한 눈먼 열심의 단식이 아니라 단식의 때가 되면 단식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과 함께 있는 축제의 시기는 단식하지 않는 게 좋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분별의 지혜입니다. 무절제한 과잉의 눈먼 단식으로 축제인생을 고해인생으로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 생존시 그분의 제자들은 먹보요 술꾼인 예수님의 영향으로 자발적으로 단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께서 죽임을 당한 다음부터 슬픔에 젖어 단식하기 시작했습니다. 100년 경에 쓰여진 디다케는 그리스도인들은 수요일과 금요일에 단식했다고 합니다. 

 

단식은 절대적이 아닙니다. 단식에도 분별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한다면 감쪽같이 숨겨진 겸손한 단식을 하라는 주님의 말씀(마태6,17)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우울하게 어둡고 무겁게 지내는 단식과 고행의 사순시기가 아니라, 자발적 기쁨의 수행으로 부활축일을 기다리는 은총의 사순시기입니다. 

 

주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활짝 열린 자발적 기쁨의 숨겨진 겸손한 단식 수행이어야 하고, 절대로 누구에게 강요할 단식이 아닙니다. 단식뿐 아니라 모든 수행이 그러합니다. 하느님 주신 축제인생을 고해인생으로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자발적 기쁨의 수행으로 축제인생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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