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2.연중 제26주간 월요일                                                                 즈카8,1-8 루카9,46-50

 

 

“가장 작은 사람이 가장 큰 사람이다”

-침묵이 가르쳐 주는 진리-

침묵 예찬

 

 

오늘은 제가 좋아하는 수호천사 기념일이지만 우리 성 베네딕도 수도회 전례력에서는 수호천사 기념미사가 아닌 연중 제26주간 월요일 미사를 봉헌합니다. 침묵중에 저절로 떠오르는 수호천사께 바치는 기도로 오늘 강론을, 오늘 하루를 시작합니다.

 

“언제나 저를 지켜주시는 수호천사님,

 인자하신 주님께서 저를 당신께 맡기셨으니

 오늘 저를 비추시고 인도하시며 다스리소서. 아멘.”

 

어제 세계 전 그리스도교 교회 지도자들이 모인 종교일치에 관한 시노드 저녁기도시 교황님의 ‘침묵’을 주제로 한 강론을 들으면서 새삼 침묵의 가치를 깨달았습니다. 그동안 너무 까맣게 잊고 지냈던 침묵의 소중함을 새롭게 발견했습니다. 예전 수도자들은 고독과 침묵중에 하느님을 만나고자 사막을 찾았습니다. 하느님을 찾는 수도승들의 우선적 타고난 특징은, 영성가들의 특징은 침묵과 고독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참으로 내적 깊이와 풍요로움과 자유를 위해 침묵과 고독은 필수입니다.

 

침묵은 현존입니다. 침묵은 영원입니다. 침묵은 찬미입니다. 침묵은 부요입니다. 침묵은 자유입니다. 침묵은 정화입니다. 침묵은 성화입니다. 침묵은 탄생입니다. 침묵은 생명입니다. 침묵은 빛입니다. 침묵은 휴식이자 안식입니다. 침묵은 아름다움입니다. 침묵은 진리입니다. 침묵은 하느님의 언어입니다. 침묵은 기도입니다. 침묵은 경배입니다. 침묵은 일치입니다. 침묵은 분별입니다. 침묵은 겸손입니다. 침묵은 경청입니다. 침묵은 비움입니다. 침묵은 깨달음입니다. 침묵은 은총입니다. 

 

침묵은 치유입니다. 침묵은 위로입니다. 침묵은 평화입니다. 침묵은 깨어있음입니다. 침묵은 개방입니다. 침묵은 응시입니다. 침묵은 친교입니다. 침묵은 평화입니다. 침묵은 감사입니다. 침묵은 사랑입니다. 침묵은 연대입니다. 침묵은 순수입니다. 침묵은 기쁨입니다. 침묵은 지혜입니다. 침묵은 인내입니다. 침묵은 기다림입니다. 침묵은 수용입니다. 침묵은 관대함입니다. 침묵은 희망입니다. 침묵은 선물입니다. 침묵의 힘입니다. 침묵 역시 선택이자 공부요, 훈련이자 습관입니다. 결국은 침묵은 모두라는 말입니다.

 

우선 생각나는 대로 침묵에 대한 진리를 열거해 봤습니다. 말이 막혔을 때, 표현을 찾지 못했을 때 저절로 침묵입니다. 이밖에도 침묵의 유익함을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것입니다. 참으로 깊이 깨닫고 이해하기위해 침묵은 필수입니다. 제가 한밤중 일어나서 강론을 쓰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도 밤의 침묵이 너무 좋기 때문입니다. 침묵을 잊고, 잃고 지내기에 우리는 너무 소중한 진리를 깨닫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복음 말씀은 모두가 깊은 침묵중에 나오는 진리임을 깨닫습니다. 진리는 침묵중에 자신을 계시합니다. 교황님의 강론중 일부를 나눕니다.

 

“침묵은 그리스도의 지상 현존의 시작과 끝에 자리잡고 있다. 말씀은, 아버지의 말씀은 태어나던 밤 구유에서, 수난의 밤 십자가상에서 ‘침묵’이 되었다. 실로 하느님은 소리침, 잡담, 시끄러움보다는 침묵을 선호하신다. 그가 예언자 엘리야에게 나타나실 때, 바람, 지진, 불 속이 아닌 ‘작고 고요한 소리중에(a small still voice)’ 나타나셨다. 

결국 진리는 사람들 마음속에 도달하기 위해 큰 소리를 필요로하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믿는 이들인 우리 역시 그분의 음성을 듣기위해 온갖 시끄러움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할 필요가 있다. 오직 우리의 침묵에서 만이 그분의 말씀이 울려 퍼질수 있다.”

 

뜻밖에 나누고 싶은 일화가 생각났습니다. 추석 다음 파공날 아침 산책기도중 수도원 십자로 중앙, 예수 성심상 앞에서 잠시 뜻밖에 좋은 자매님들과의 만남시간이 있었고, 저에게 오늘 영화 관람하지 않느냐 물었고 유쾌한 대화가 오고갔습니다.

 

-“저에게 가을 햇살 아름다운 아침의 자연, 아름다운 자매님들과 함께 함이 살아있는 영화입니다. 이보다 생생한 영화가 좋지 극장안에서의 영화는 너무 답답합니다.”

“아, 신부님은 시인이시네요!”-

 

또 잠시 여행을 떠나기에 앞서 제 프란치스코 영명축일 10월4일에 훨씬 앞서 어제 오후 늦게 축하 꽃다발을 선물차 들고 온 한 자매님의 방문을 받았습니다.

 

“아, 꽃바구니에 가을이 가득 담겼네요.”

 

정말 해바라기를 비롯하여 온갖 가을 꽃들이 가득하니 가을을 통째로 선물받는 황홀한 느낌이었습니다. 이런 즉흥적인 시적 감성과 표현 역시 침묵의 선물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복음도 참 흥미롭습니다. 제자들 가운데 누가 큰 사람이냐는 문제로 논쟁이 일어나자 예수님은 한 말씀으로 말끔히 정리하십니다. 세속화된, 침묵을 잃은 제자공동체임이 분명합니다. 예수님은 어린이 하나를 곁에 세우신 다음 제자들에게 물으니 주님의 실물 교육이 참 멋집니다.

 

“누구든지 이 어린이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

 

정말 침묵에서 솟아난 주님의 지혜와 사랑의 결정체같은 주옥같은 말씀입니다. ‘가장 작은 사람이 가장 큰 사람이다’, 기존관념을 완전히 깨는 역설적 진리를 설파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어린이와 같이 약하고 무력한 이들이, 겸손하고 가난하고 작은 이들이 공동체 안에서 가장 보호받고 사랑받아야 할 가장 큰 이들이라는 것입니다. 

 

정말 모두의 사랑의 관심이, 약하고 가난한 이들을 향한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공동체요 세상이겠는지요! 말그대로 억강부약, 대동세상, 기본사회의 실현입니다. 참으로 이런 약하고 가난한 이들을 환대하는 것이 예수님을, 더 나아가 하느님을 환대하는 것이라니 예수님의 깊은 침묵에서 나온 참 진리임을 깨닫습니다. 

 

가장 작은 사람이 가장 큰 사람입니다. 이 진리를 잊지 마시고 주변의 힘없고 약하고 병들고 가난한 이들에 각별한 관심과 사랑을 쏟을 때, 나 또한 참 작은 그러나 내면은 한없이 너그러운 관대하고 겸손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막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제자들의 편협한 마음을 넓혀 주시는 주님의 말씀이 그대로 우리에게 주는 말씀처럼 고맙습니다.

 

“막지 마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너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구존동이求存同異의 사람, 화이부동和而不同의 군자같은 참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이 또한 분별력의 지혜입니다. 큰 관점에서 서로를 받아들이고 조그만 차이는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하라는 말씀이며,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평화롭게 지내라는 말씀으로 결국은 같은 뜻입니다. 참으로 깊은 침묵의 대인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제1독서는 메시아 시대의 행복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즈가르야 예언자를 통해 하느님의 꿈이 실현되는 그 미래를 보여줍니다. 오늘 복음의 가장 작은 이들이 가장 큰 사람이 되어 사람 대우 받는 그 아름다운 공동체의 미래상입니다.

 

“만군의 주님이 말한다. 나이가 많아 저마다 손에 지팡이를 든 남녀 노인들이 다시 예루살렘 광장마다 앉아 쉬리라. 도성의 광장마다 뛰노는 소년 소녀들로 가득차리라.”

 

바로 하느님의 꿈이 실현된 예루살렘의 모습입니다. 세상 공동체에서 가장 작은 이들로 상징되는 노인들과 어린이들이 가장 큰 이들로 대우 받는 세상을 보여줍니다. 이어지는 열정을, 격렬한 열정을 지닌 주님의 말씀도 고무적입니다.

 

“이제 내가 내 백성을 해뜨는 땅과 해지는 땅에서 구해 내리라. 나는 그들을 데리고 와서 예루살렘 한가운데에 살게 하리라. 그러면 진실과 정의 안에서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리라.”

 

주님의 이런 원대한 꿈이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실현됨을 봅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참으로 가장 작은 사람이 가장 큰 사람임을 깨닫게 하시어, 우리 모두 ‘작은 이들을 주님처럼 환대하는’ 하느님 중심의 한 공동체를 이루어 살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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