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9.7.연중 제22주간 목요일                                                                    콜로1,9-14 루카5,1-11

 

 

내적 여정의 순례자들

 “함께와 홀로”

-예수님은 우리의 평생 유일한 가이드- 

 

 

어디서부터 강론을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인터넷을 열어보니 국내외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갑니다. 어제처럼 만세오창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국민이 모두 주권을 행사하면 무정부상태가 된다는 어처구니 없는 말이 국무위원의 입에서 나오니 말 그대로 단세포적 전체주의적 사고입니다. “이념의 늪에서 민생을 구하겠습니다.”인터넷 뉴스를 보다 마음에 와닿은 말마디입니다. 정말 시급한 것이 민생이요 정치도 민생을 위해 존재합니다. 이념전쟁이 아닌 민생을 위한 전쟁이 절박합니다. 엊그제 받은 녹색평론 183호가 반갑고 기뻤습니다. 맨처음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근대문명은 쓰레기를 생산하는 시스템이다. 망가져버린 지구 물질대사 사이클의 한쪽에서는 물, 표토, 광물, 생물 등 기초적 자원들이 급격히 사라져가고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처리되지 않는 쓰레기들이 더 빠르게 쌓여가고 있다.”

 

쓰레기들은 제가 요즘 부쩍 실감하는 현실입니다. 쓰레기를 치우는 원장수사에 물으니 수도원도 1주에 3회, 쓰레기를 치운다 했습니다. 쓰레기를 볼 때마다 깊은 좌절감에 죄책감을 느낍니다. 하루하루 먹고 살아간다는 것이 지구에 죄를 짓는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정말 안팎으로 쓰레기를 최대한 적게 내고 살아가는 것이 잘 사는 길임을 깨닫습니다. 쓰레기들이 양산되는 시절 급기야 사람들도 쓰레기 취급을 받기도 하는 비일비재한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물론 사람 자신도 쓰레기처럼 처신하지 말아야 합니다.

 

“깨어 있어라!”

 

정말 작금의 타락한 현실에서 늘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할 말마디입니다. 어제 수요일 베드로 광장에서 일반 알현시간 교황님의 몽골 방문 소감도 우리를 되돌아보게 하는 가르침이었습니다. 

 

“나는 얼마동안 아시아의 중심에 있었고 그것은 나에게 참 좋았다. 내가 몽골 사람들을 만났을 때 좋았던 것은 그들이 자신의 뿌리와 전통을 애호하고, 자신의 어른들을 존경하며 주위 환경과 잘 조화되어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늘을 바라보며 창조의 숨결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우리의 오염되기전 옛 모습도 이랬습니다. 정말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너무 많은 우리 현실이 마음 아프게 와닿습니다. 사상누각, 흡사 모래위의 집처럼 위태해 보이는 우리의 불안한 현실입니다. 어제 우리 수도원은 아랫집 수녀님들과 함께 가을 소풍을 다녀왔습니다. 우리 수도원의 14명 형제들과 아랫집 수녀님들 10명이 자동차 셋에 분승하여 전번 삼척의 덕항산德項山에 소재한 환선굴에 이어 대금굴을 순례여정하듯 가을 소풍을 다녀왔습니다. 5억 3천만년전에 생긴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덕항산속의 굴이었습니다. 

 

대금굴안에 흐르는 물소리는 얼마나 우렁찬지 흡사 세찬 강물 소리와도 같았고 폭포소리도 모습도 장관이었습니다. 12시부터 1시까지 무려 1시간 동안 걸었던 참 긴 강같은 굴이었습니다.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정말 내적 순례 여정을 상징하는 듯 한 1시간 동안 걸었습니다. 대자연의 신비앞에 저절로 대침묵이었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입니다. 수도원에 잔류한 세 수도형제들은 이런 체험을 아무리 설명해도 실감있게 와닿지 않을 것입니다. 

 

직접적 영적체험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됩니다. 저절로 대자연의 신비앞에 침묵중 공동체가 정화되고 일치되는 느낌이었습니다. 며칠전 미사 강론중 애국가를 부를 때 역시 공동체의 정화와 일치를, 또 얼마전 수녀원을 방문하여 고백성사를 드릴 때도 수녀원 대 리모델링 공사를 통해 느껴지는 수녀님들의 정화와 일치의 분위기도 연상되었습니다. 공동체의 지도자들도 갈라치기 싸움이나 분열이 아닌 공동체의 통합과 일치를 위해 힘씀이 마땅합니다. 무심코 한 말에 원장 수사의 솔직한 반응도 잊지 못합니다.

 

“산같은 정주의 수도원이라면, 수도승이라면 이런 정도의 대금굴같은 강을 지녀야 하지 않겠어요?”

 

제 말에 “저는 싫습니다. 너무 복잡하고 시끄러워 감당하기 벅찹니다.” 원장 수사의 즉각적인 답변이었습니다. 그런데 밖에서는 백두대간 태백산맥에 위치한 1070m 덕항산은 산속에 무려 큰 강같은 환선굴과 대금굴을 지니고 맑은물을 끊임없이 쏟아내니 놀랍기 짝이 없습니다. 저 역시 덕항산을 닮아 날마다 맑은 강물같은 강론을 쏟아내야 하겠다는 결심을 새로이 했습니다. 문득 예전에 써놓은 시가 생각납니다.

 

“푸른 산,

 맑은 물

 

 푸른 삶,

 맑은 영성

 

 산에

 가까울수록 

 흐르는 물은 맑고

 

 하느님께

 가까울수록

 흐르는 영성 또한 맑다.”-1997.4

 

말그대로 덕항산 속의 대금굴은  “산속의 강”같습니다. 마침 전에 인용했던 제 애송시에도 딱 맞는 모습입니다.

 

“밖으로는 정주의 산, 천년만년 

 끊임없이 한결같이 임 기다리는 산,

 

 안으로는 강, 천년만년

 끊임없이 한결같이 임향해 맑게 흐르는 강,

 산속의 강”

 

밖으로는 산, 안으로는 강, 산속의 강 같은 내적 여정의 삶, 제가 늘 소망하는 삶이요, 정말 이런 한결같은 내적 여정의 삶이라면 참 멋질 것입니다. 밖으로는 정주의 산, 성 베네딕도를 살고, 안으로는 강같은 성 프란치스코를 살라는 성 베네딕도회 이수철 프란치스코 수도사제로서 제 신원에 만족합니다. 바로 여기서 착안한 오늘 강론 제목, “내적 여정의 순례자들- 함께와 홀로-”입니다. 어제의 대금굴 가을 소풍은 혼자라면 의미도 없고 엄두도 못냈을 것입니다. 

 

24명이 함께, 내적 여정을 상징하는 가을 소풍에 주님을 찾는 내적 여정의 순례자들이 되어 떠났던 것입니다. 함께 하되 홀로의 순례 여정이었습니다. 또 내적 여정을 상징하는 대금굴 탐사 여정에는 가이드가 앞장 섰습니다. 새삼 내적 여정의 순례자들에게 필수적 전제 조건이 영적 가이드, 안내자임을 절실히 깨닫습니다. 함께와 홀로의 내적 여정의 순례자들인 우리의 평생 유일한 영적 가이드, 안내자는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시편23장이 고백하는 바로 우리의 영원한 착한 목자 예수님, 얼마나 큰 위로와 평화, 격려가 되는지요!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

 파아란 풀밭에 이몸 누여주시고,

 고이쉬라 물터로 나를 끌어주시니

 내 영혼 싱싱하게 생기 돋아라

 주께서 당신 이름 그 영광을 위하여,

 곧은 살 지름길로 날 인도하셨어라.

 죽음의 그늘진 골짜기를 간다해도

 당신 함께 계시오니 무서울 것 없나이다.

 당신의 막대와 그 지팡이에, 시름은 가시어서 든든하외다.”

 

바로 착한 목자이자 최고의 영적 가이드 예수님을 은총의 선물처럼 만난 오늘 복음의 베드로 일행 어부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시몬의 배에 오르신 다음 군중을 가르치신후 시몬에게 명령하시니, 주님의 개입이 참 은혜롭습니다.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어디가 깊은 데입니까? 바로 주님이 함께 하시는 오늘 지금 여기 내 삶의 자리, 꽃자리가 깊은데입니다. 시몬의 대답이 참 솔직하여 마음에 와 닿습니다. 언뜻 영적 가이드 예수님을 알아챈 듯 스승님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영적 가이드 예수님 말씀에 순종합니다.

 

“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스승님의 말씀대로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밤새 노력을 다했지만 인생 바다에서 물고기가 아닌 허무만 가득 길어 올렸던 것입니다. 즉시 생각나는 시편127장 전반부 내용, 시몬 베드로는 아프게 깨달았을 것입니다.

 

“주께서 집을 아니 지어 주시면, 

 그 짓는 자들 수고가 헛되리로다.

 주께서 도성을 아니 지켜 주시면, 

 그 지키는 자들 파수가 헛되리로다.

 이른 새벽 일어나 늦게 자리에 드는 것도,

 수고의 빵을 먹는 것도 너희에게 헛되리로다.”

 

베드로는 신속히 주님의 명령에 순종했고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많은 물고기를 잡으니 배가 가라앉을 지경입니다. 바로 그 순간, 전광석화 베드로는 주님을 만났고 즉각적인 회개가 뒤따릅니다. 스승이자 주님이신 영원한 영적가이드 예수님을 만난 베드로의 즉각적 응답에 주님의 따뜻한 위로와 격려입니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많은 사람입니다.”

주님의 거울에 비친 죄많은 자기 얼굴을 발견한 베드로의 즉각적 응답입니다. 주님을 만남으로 회개를 통해 참 자기 얼굴을 발견한 베드로입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미련없이, 지체없이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라나선 시몬을 위시한 어부들입니다. 이제부터 당신을 따르는 이들의 순례 여정에 영원한 영적 가이드가 된 주님입니다. 그대로 주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의 영원한 순례 여정의 모델이 되는 예수님과 그 어부들입니다. 사람마다 주님을 따르는 양상은 다 다릅니다. 각자 공동체 삶의 자리에서 동료 순례자들과 함께 날마다 온맘과 온힘으로 새롭게 예수님을 따라 나서면 됩니다. 

 

바로 오늘 제1독서에서 바오로의 콜로새 교회를 위한 기도는 그대로 이런 우리를 위한 기도가 됩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다음 이 기도대로 이뤄주시어 성공적 내적 순례 여정을 살게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모든 영적 지혜와 깨달음 덕분에 하느님의 뜻을 아는 지식으로 충만해져, 주님께 합당하게 살아감으로써 모든 면에서 그분 마음에 들고 온갖 선행으로 열매를 맺으며 하느님을 아는 지식으로 자라기를 빕니다. 또 하느님의 영광스러운 능력에서 오는 모든 힘을 받아 강해져서, 모든 것을 참고 견디어 내기를 빕니다.”

 

바오로의 우리를 위한 간절한 기도에 이어 다음 말씀이 우리를 더욱 용기백배, 사기충천하여 내적 순례 여정 길을 걷게 하며, 영적승리의 삶을 살게 합니다.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어둠의 권세에서 구해 내시어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의 나라로 옮겨 주셨습니다.”(콜로1,1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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