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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2.28.연중 제8주간 월요일                                                              1베드1,3-9 마르10,17-27

 

 

하느님의 나라와 부자

-부자는 구원받을 수 없는가?-

 

 

 

“하느님 곁에 있는 것이 내게는 행복,

이 몸 둘 곳 하느님, 나는 좋으니

하신 일들 낱낱이 이야기 하오리다.“(시편73,28)

 

“주님을 찬미하라 좋으신 하느님을

그 이름 노래하라 꽃다우신 이름을.”(시편135,3)

 

아침 성무일도시 마음에 와닿은 아름다운 시편 성구입니다. 믿는 이들에게 참 행복은 재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곁에, 하느님 찬미에 있음을 깨닫습니다.

 

“선하신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옛 사막 스승들을 찾았던 구도자들의 공통적 질문입니다.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겠는가 하는 물음입니다. 잘 보면 잘못된 질문임을 깨닫습니다. ‘무엇을 해서(to do)’가 구원이 아니라 ‘무엇이 되어야(to be)’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인 이웃사랑의 계명을 다 지켰는데도 가슴의 허기는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부자입니다. 예나 이제나 영원한 생명의 하느님 나라는 구도자들의 궁극의 관심사입니다. 부자의 문제점을 정확히 진단한 주님의 정확한 충격적인 처방입니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그러나 그는 이 말씀 때문에 슬퍼하며 떠나갑니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참 어려운 요구입니다. 과연 주님의 이 말씀에 응답할 부자가 얼마나 되겠는지요! 참으로 재물의 환상, 우상으로부터 벗어나기가 이처럼 힘듭니다. 정말 세상의 보물은 가짜요 하늘의 보물이 진짜인데 부자는 이것을 몰랐습니다. 정말 부자는 많은 재물을 지닌자가 아니라 최소한의 소유로 만족한 자입니다. 이래야 재물욕의 탐욕으로부터 자유롭습니다.

 

부자는 주님의 권고를 받아들일 수 없어 주님을 떠나 자기의 길을 갔고 이후의 반응은 독자들의 상상에 맡겨지지만 아마도 부자의 내적 각성覺醒에 부단한 도움이 되었을 것이며 후에 주님을 찾았을 지도 모릅니다. 분명 예전의 부자와는 같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기의 한계를 알아 더욱 겸손해졌을 것이며 부단히 나름대로 구원을 추구했을 것입니다. 이어지는 주님의 말씀이 점입가경입니다.

 

“재물을 많이 가진 자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얘들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부자는 구원받기가 참으로 힘들다는 아니 불가능하다는 말씀에 거듭 놀란 제자들의 “그러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는 너무나 당연한 절박한 반응입니다. 이에 대한 주님의 답이 우리에게는 참 다정한 위로가 됩니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한 마디로 하느님께는 부자의 구원도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분명 가난하다하여 무조건 하느님 나라 입성의 구원도 아닐 것이며, 부자라 하여 무조건 하느님 나라 입성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소유로부터의 자유가 그 관건입니다. 가난한 자가 부자들에 대한 증오와 불만으로 가득하다면, 부자가 소유의 노예가 되어 참으로 빈자들을 무시하고 인색하다면 하느님 나라의 구원은 힘들 것입니다. 

 

말 그대로 회개의 은총이 절대적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회개의 은총으로 참으로 재물의 소유로부터 자유로울 때, 최소한의 의식주로 만족하며 이웃에 자선을 베푸는 자비로운 부자라면 하느님 나라의 구원도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가난해도 누구를 원망하지 않고 지족知足할 수 있다면 구원입니다.

 

사실 우리가 잘 나서 구원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으로 구원입니다. 사실 잘 나서 구원 받기로 하면 세상에 구원받을 자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 은총이 없으면 아무리 똑똑해도 탐욕의 유혹에 떨어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누구에게나 모든 것을 버리고 자기를 따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오늘 복음의 부자에게만 이런 극단적인 처방이었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우선적인 일은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주님은 ‘나를 사랑하라’, ‘나를 믿으라’ 하신 것이 아니라 ‘나를 따르라’ 말씀하셨습니다. 당장은 모두 버리고 나눈 후 주님을 따르지는 못할 지라도, 제 삶의 자리에서 하루하루 날마다 제 할 수 있는 만큼 사랑으로 비우고 나누며 주님을 따른다면 부자도 가난한 자도 영원한 생명의 하느님 나라의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삶을 가능하게 하는 하느님의 회개 은총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우선적으로 할 일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주님을 따르는 일입니다. 계명 조항을 지키는 일이 나무만 보는 경우라면 주님을 따르는 일은 주님의 시야를 지니고 숲을 보는 경우입니다. 계명 준수로 만족함이 유치원 수준의 믿음이라면 주님을 따르는 일은 대학원 수준의 믿음입니다. 끊임없는 회개의 은총이 주님을 더욱 사랑하게 하고 주님을 따르게 할 것이며 더불어 소유의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워져 점점 사랑의 나눔과 비움도 함께 할 것입니다. 

 

참으로 최고의 보물인 주님을 사랑하여 모실 때 세상 재물로부터 자유로울 것입니다. 주님 보물 앞에는 세상 재물도 빛을 잃을 것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따르면서 주님께 대한 믿음, 희망, 사랑이 깊어질수록 세상 것들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제1독서의 베드로가 이의 모범입니다. 희망에 대해 감사를 드리는 베드로입니다. 참으로 이런 참희망이신 하느님을 모실 때 자유롭고 행복하고 내적으로 부유한 삶입니다. 

 

오늘 복음에 대한 궁극의 답을 주님의 수제자 베드로가 줍니다. 하느님 은총의 선물인 구원의 희망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지는 과제입니다. 참으로 한결같이 주님을 사랑하여 따르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희망 은총의 선물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찬미 받으시기를 빕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크신 자비로 우리를 새로 태어나게 하시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우리에게 생생한 희망을 주셨고, 또한 썩지 않고 더러워지지 않고 시들지도 않는 상속 재산을 얻게 하셨습니다.”

 

이런 깨달음의 선물 앞에 세상 재물은 얼마나 덧없고 초라해 보이는 지요! 저절로 빛을 잃습니다. 사실 건강 잃고, 또 죽음을 목전에 두었다면 이런 세상 재물들은 아무 쓸모 없을 것입니다. 참으로 무지의 탐욕으로 인해 헛것들의 우상에 빠져 살아가는 얼빠진 대부분 부자들입니다. 이어지는 베드로의 영혼에 깊은 울림을 주는 천둥같은 말씀도 우리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용기백배, 이탈의 사랑으로 더욱 주님을 따르게 합니다.

 

“그러니 즐거워하십시오, 여러분이 지금 얼마 동안은 갖가지 시련을 겪으며 슬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로 단련을 받고도 결국 없어지고 마는 금보다 훨씬 값진 여러분의 믿음의 순수성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밝혀져, 여러분이 찬양과 영광과 영예를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본 일이 없지만 그분을 사랑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그분을 보지 못하면서도 그분을 믿기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 속에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를 위시한 초대교회 교우들의 주님께 대한 믿음과 희망과 사랑에 견주어 볼 때 우리는 얼마나 왜소하고 약하고 오염된 난장이 믿음이요, 희망이요, 사랑이요, 감사요, 기쁨인지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참으로 주님께 열렬하고 한결같은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둘 때 저절로 세상 탐욕으로부터 이탈이요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생명의 삶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오늘 지금 여기서부터 영원한 생명의 하느님 나라를 살게 합니다. 참으로 사랑으로 나누고 비우며 주님을 따라 홀가분하게 초연한 삶을 살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유하시면서도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우리도 그 가난으로 부유해지게 하셨네.”(2코린8,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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