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6.주님 공현 대축일 후 수요일                                                        1요한4,11-18 마르6,45-52

 

 

 

하느님 중심의 삶

-기도와 사랑-

 

 

 

착각했습니다. 늦게서야 발견했습니다. 오늘 제1독서를 어제 제1독서로 착각하여 오늘 내용을 어제 강론에 인용했던 것입니다. 참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은 어제 제1독서(1요한4.7-10)를 인용합니다. 사도 요한의 서두 말씀이 어제처럼 참 정답습니다. 여전히 ‘사랑’이란 말마디가 눈에 띄게 많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모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1요한4,7-8)

 

하여 어제 강론 제목처럼 믿는 사람들에게 평생공부는 사랑공부요 하느님공부일 수 뿐이 없습니다. 사랑의 인생 학교에서 평생공부해야할 사랑이요 하느님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삶을 살기에 사람입니다. 사랑-삶-사람이 서로 하나로 이어지듯 같은 어원에서 기인하는 느낌입니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입니다. 

 

새삼 인간의 본질은 무지가 아니라 사랑임을 깨닫습니다. 아마 노래든 문학이든 영화든 가장 많은 공통적 소재가 사랑일 것입니다. 삶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사랑의 하느님이요, 이런 사랑의 하느님이 빠지면 그 인생은 허무와 무지의 어둠일 것입니다. 이어지는 제1독서 말씀도 참 고맙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가 살게 되었다는 고백입니다. 이에 대한 생생한 증거가 오늘 예수님을 만나 살아난 복음의 제자들이며 이 거룩한 미사입니다. 하루하루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를 살게 해주는 미사은총입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 그리스도 중심의 삶, 우리에게는 똑같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 중심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을 통하여 확연히 드러나는 예수님의 하느님 중심의 삶입니다. 하느님 중심의 삶에는 바로 기도와 사랑이 자리잡고 있음을 봅니다. 사실 하느님 중심의 기도와 사랑의 삶을 살 때 무지와 허무의 어둠에서 벗어나 삶은 단순투명하고 진실해집니다. 온갖 세속의 유혹에 눈멀지 않습니다. 

 

우리를 눈멀게 하는 감미로운 유혹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하느님 중심의 기도와 사랑의 삶을 떠날 때 무지와 탐욕에, 불안과 두려움에 눈멀게 되는 우리의 영적현실입니다. 그러나 하느님 중심의 기도와 사랑의 삶에 항구하고 충실했던 눈밝은 예수님은 절대 이런 유혹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오천명을 배불리 먹이신 뒤의 예수님의 처신이 참 기민하고 신속합니다. 대중의 인기에 영합할 유혹을 감지하셨음이 분명합니다. 공성이불거功成以不居란 노자의 말마디가 떠오릅니다. 공을 세우면 그 자리에 머물지 않고 떠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재촉하여 즉시 자리를 떠났고 군중을 돌려 보내십니다. 전광석화, 예수님의 집착에서 떠나는 이탈의 초연한 모습이 참 인상적입니다. 얼마나 멋진 떠남인지요! 이어 예수님은 삶의 중심에 기도의 시간과 공간을 마련합니다.

 

‘그들과 작별하신 뒤에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에 가셨다.’

 

정말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것이 기도입니다. 살기위하여 기도합니다. 기도와 삶은 하나입니다. 삶이 없는 기도는 공허하고 기도가 없는 삶은 맹목, 맹신이 되기 십중 팔구입니다. 기도하는 대로 살고 사는 대로 기도합니다. 저절로 하느님 중심의 안정과 평화, 균형과 조화의 삶이 됩니다. 이는 우리가 절감하는 진리입니다. 

 

즉시 예수님은 모든 것을 훌훌 떠나 보내고 홀가분한 몸으로 하느님 아버지와 깊은 친교의 기도와 사랑의 시간을 마련합니다. 바로 평상시 기도가 이런 분별의 지혜의 원천이 됨을 봅니다. 예수님의 참으로 분주했던 일상의 삶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기도의 시간과 공간임을 깨닫습니다. 

 

기도를 통해 하느님의 영으로 충만하신 예수님의 진면목은 이어지는 복음 장면에서 빛을 발합니다. 외딴곳의 기도중 영안이 활짝 열린 예수님은 제자들이 곤경에 처한 모습을 보셨음이 분명합니다. 지체없이 호수위를 걸어 곤경중에 있는 제자들을 향하십니다. 두려움에 눈이 멀어 예수님을 보고도 유령인줄 알고 겁에 질려 비명을 지르는 제자들을 격려하는 장면은 얼마나 멋지고 통쾌한 장면인지요! 이어지는 복음 말미의 묘사가 참 은혜롭고 담긴 의미가 참 깊습니다.

 

‘예수님께서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그러고 나서 그들이 탄 배에 오르시니 바람이 멎었다.’

 

우리 수도 공동체란 배에, 교회 공동체란 배에 주님을 모실 때 사면초가의 세상 위험 중에도 난파되거나 조난당하지 않고 안전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모시지 않아 인생 항해중 난파되어 조난당한 공동체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주님의 말씀을 오늘은 물론 평생 화두로 모시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바로 수도원 십자로의 중앙에 위치한 예수님 부활상 아래 바윗판에 새겨진 말마디가 바로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입니다. ‘나다(I AM)’는 바로 하느님 이름이니 예수님은 그대로 하느님의 현현이었던 것입니다. 더 분명히 하면 ‘너와 함께 있는 나(I AM with you)요, ’너를 위해 있는 나(I AM for you)’ 하느님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너무 놀라 넋을 잃었으니, 그들은 빵의 기적을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무지에 눈이 멀어 마음이 완고했던 것입니다. 분명 제자들은 이런 기적을 통해 마음의 눈이 활짝 열렸을 것이고 하느님 중심의 기도와 사랑의 삶을 회복했을 것입니다. 육신의 눈은 멀쩡해도 무지와 탐욕, 질투와 분노, 불안과 두려움으로 영혼의 눈먼 이들은 얼마나 많겠는지요! 눈뜬 맹인들로 가득한 세상같습니다. 

 

하느님 중심의 기도와 사랑의 삶을 살 때 주님을 닮아가면서 점차 밝아져가는 심안心眼이요 영안靈眼임을 깨닫습니다. 새삼 우리의 영적 여정은 영안이, 심안이 열려가는 ‘개안開眼의 여정’임을 깨닫게 됩니다. 주님은 고맙게도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의 심안을, 영안을 활짝 열어 주시어 하느님의 중심의 삶에 항구하고 충실하도록 도와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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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안젤로 2021.01.06 08:35
    "우리는 살기위하여 기도합니다. 기도와 삶은 하나입니다. 삶이 없는 기도는 공허하고 기도가 없는 삶은 맹목, 맹신이 되기 십중 팔구입니다. 기도하는 대로 살고 사는 대로 기도합니다. 저절로 하느님 중심의 안정과 평화, 균형과 조화의 삶이 됩니다. 이는 우리가 절감하는 진리입니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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