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3.6.사순 제2주간 월요일                                                           다니9,4ㄴ-10 루카6,36-38

 

 

자비의 여정, 자비의 학교

-“자비로운 사람이 되십시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6,36)

 

역시 하느님 아버지의 소망이 담긴 자비하신 아버지의 아드님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자비로운 사람이 되십시오. 결론하여 성인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얼마전 하느님 아버지를 닮아 거룩한 사람, 완전한 사람이 되라 말씀하셨는데 결국 자비로운 사람으로 모아집니다. 

 

그러니 우리 삶의 여정은 하느님 아버지를 닮아 성인이 되어가는 “자비의 여정”이라 할 수 있고,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공동체는 “자비의 학교”라 할 수 있습니다. 졸업이 없는 죽어야 졸업인 평생 회개와 더불어 아버지의 자비를 배워가는 자비의 학교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한자 자비(慈悲)란 글자를 보면 뜻이 분명해집니다. ‘사랑할’ 자(慈) ‘가엾이 여길’ 비(悲)입니다. 남을 사랑하고 가엾이 여기라는 것입니다. 하느님 아버지를 닮아 자애롭고 가엾이, 측은히, 불쌍히 여기는 연민(compassion)의 마음을 지니라는 것입니다. 

 

자비로운 사람, 불교식으로 말해 부처님을 닮아 대자대비(大慈大悲)한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이런 대자대비의 너그럽고 큰 사랑은 비단 사람뿐 아니라 생명있는 모든 중생에게 미칩니다. 생태위기, 기후위기가 날로 심각해지는 작금의 시대, 불가의 대자대비한 사랑의 실천이 절박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 수도원 본관의 숙소와 더불어 또 하나의 숙소 명칭도 새삼 적절함을 깨닫습니다. 당시 수도형제들의 생각을 공모했는데 본관의 숙소 “자비의 집”은 제가 제안했으며, 또 하나 “형제의 집”은 다른 수도형제가 제안했습니다. 결론하여 자비하신 아버지를 닮아 자비로운 형제들이 되라는 말씀이겠습니다.

 

어제 주일은 새벽 5시부터 불암사의 선재동자란 말에서 유래한 선재善財라는 희고 껑충한 순한 개가 하루종일 수도원 ‘자비의 집’ 주변에서 서성이며 수도원 개들과 밥도 먹고 놀다가 저녁 7시쯤 떠났습니다. 이제 수도형제들의 사랑을 받는 선재가 되었습니다. 수사님들이 쓰다듬어 줘도 가만히 있고, 저녁무렵에는 혼자 외로이 피곤한지 쉬고 있다가 불암사로 떠났습니다. 

 

순간 ‘아, 개도 외로워서 수도원을 찾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혼자 외로워 시간나는 대로 수도원의 착한 개들과 수도형제들을 찾는 선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델라 자서전을 읽으며 27년 수감생활중 가장 힘들었던 벌은 빛도 들어오지 않는 독방에서 혼자 지낼 때 였다는 것입니다. 이때처럼 사람이 그리웠던 때도 없었다 합니다. 

 

혼자가 아닌 더불어의 여정을 살아가는 우리들이기에 함께 하는 형제들은 물론 생명을 지닌 모든 것들에 자비를 실천하는 일은 필수입니다. 제가 요즘 심취하여 계속 읽고 있는 책들은 위인들의 평전입니다. 만델라 자서전에 이어, 조선시대 세종대왕 평전, 이이(율곡) 평전, 허균 평전, 우계 성혼 평전을 읽었고 지금은 정조대왕 평전을 읽는 중입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며 순간 평전에 대한 깨달음의 진리는 사랑이, 자비가 없다는 것입니다. 옳고 그름의 시비를 가리는 일은 참으로 분명했던, 당쟁으로 인한 무자비한 살육의 보복의 악순환이 계속됐던 선비들의 당쟁사인 조선역사였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뚜렷한 선악의 이분법적 분류요 상대방은 평화공존의 동료들이 아니라 없애버려야 할 대상으로 원수와 같이 여겼습니다. 

 

흡사 좌우로 분열되어 극단으로 대립되어 원수같이 지내는 작금의 정치현실도 연상되었습니다. 이념에 중독되어 광신, 맹신의 지경에 이르면 신앙도 무력해지는 느낌입니다. 자비로우라는 주님의 가르침에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던 교회의 현실이었던지 장구한 교회 역사가 이를 입증합니다.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참으로 절박한 주님의 호소요 간청입니다. 새삼 자비 역시 평생 영성훈련임을 깨닫습니다. 의식적 자비의 선택에 자비의 훈련, 자비한 삶의 습관화입니다. 바로 이를 위한 우선적 조건이 끊임없는, 한결같은, 간절하고 항구한 기도와 회개입니다. 기도와 회개가 한 셋트입니다. 이런 기도와 회개와 더불어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자비 역시 훈련입니다. 주님의 자비는 영원하십니다. 자비의 훈련에 참 좋은 시편 136장 1-26절까지 소리내어 한 번 기도로 바쳐보시기 바랍니다.

 

바로 조선선비들에게는 이런 인격적인 자비하신 아버지에 대한 신앙이 아예 존재할 수 없었으니 자기 수양에 절대적인 구체적 기도와 회개가 부재할 수 뿐이 없었기에 그처럼 원수라 생각되는 상대방의 적들에 대해서는 무자비한 잔인한 보복이었던 것입니다. 이래서 “그리스도는 인류의 빛”임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보십시오. 오늘 제1독서 다니엘의 기도와 회개가 그 모범입니다. 아버지 앞에서 기도할 때 회개와 겸손이요 지혜요, 자비와 용서의 회복입니다. 다니엘 기도의 구체적 내용을 인용합니다.

 

“아, 주님, 위대하시고 경외로우신 하느님,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 이들에게 계약과 자애를 지키시는 분! 저희는 죄를 짓고 불의를 저질렀으며 악을 행하고 당신께 거역하였습니다.

주님, 당신께서는 의로우십니다. 그러나 저희는 오늘 이처럼 얼굴에 부끄러움만 가득합니다. 저희가 당신께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주 저희 하느님께서는 자비하시고 용서를 베푸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저희는 주님께 거역하였습니다.”

 

바로 오늘의 우리에게도 깊은 공감과 울림을 주는 겸손한 회개의 기도입니다. 마침 수도형제가 보내준 메시지가 심신의 관리에 유익하다 싶어 그 내용을 나눕니다. 

 

1.성격은 얼굴에 나타난다.

2.생활은 체형에 나타단다.

3.본심은 행동에 나타난다.

4.미의식은 손톱에 나타난다.

5.청결감은 머리에 나타난다.

6.배려는 먹는 방법에 나타난다.

7.마음의 힘은 목소리에 나타난다.

8.스트레스는 피부에 나타단다.

9.차분하지 못함은 다리에 나타난다.

10.인간성은 약자에 대한 태도에서 나타난다.

 

대부분 공감이 가는 말씀입니다. 자신을 돌아보고 추스리기위해 끊임없는, 한결같은 기도와 회개입니다. 자비로운 사람은 저절로가 아닌 기도와 회개와 더불어 구체적 훈련이 필요합니다. 회개는 구체적으로 다음처럼 표현됩니다.

 

1.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2.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받지 않을 것이다.

3.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남을 용서하여라, 명시하지 않음으로 남은 물론 자시도 용서하라는 말씀처럼 들리네요)

4.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심판할 분은, 단죄할 분은 하느님뿐인데 어찌 남을 심판하거나 단죄할 수 있겠습니까? 심판이나 단죄는 무조건 보류하고 하느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결코 심판이나 단죄로 결론내어 닫아버리지 말고 늘 보류한채 활짝 열어두라는 것입니다. 사실 착각이나 오해로, 편견이나 선입견으로 잘못 판단할 위험은 얼마나 많은지요!

 

앞의 둘은 “하지 마라”는 부정적 금령이요, 뒤에 둘은 “하라”는 긍정적 명령입니다. 하느님을 닮아 용서하는데, 나누고 도와주는 선행이나 물질적 나눔인 자선에 지치지말라는 것입니다. 끝없는 용서요 사랑의 실천입니다. 한번 자비의 성덕 점수를 헤아려 보시기 바랍니다. 기본 점수 2점에다 4항목 각자 2점 만점으로 하여 10점만점으로 계산해 보세요.

 

저의 경우 기본점수 2점에 3개 항목 도합 6점, 4째 항목 1.5점, 도합 9.5점이니 너무 후하지 않나 싶습니다만 정말 자비로운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날마다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날로 아버지를 닮아가는 자비의 여정에 충실하도록 결정적 도움이 됩니다. 아멘.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314 새 하늘과 새 땅 -오늘 지금 여기가 하늘 나라-2021.3.15.사순 제4주간 월요일 1 프란치스코 2021.03.15 129
1313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그리스도 중심의 삶- 022.1.17.월요일 성 안토니오 아빠스(251-356) 기념일 1 프란치스코 2022.01.17 173
1312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파스카의 꽃’같은 삶-2021.9.3.금요일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540-604) 축일 1 프란치스코 2021.09.03 181
1311 새 인간 -옛 인간을 벗어 버리고 새 인간을 입자-2016.7.31. 연중 제18주일 프란치스코 2016.07.31 285
1310 새 인간 -생명의 빵인 예수님이 답이다-2021.8.1.연중 제18주일 1 프란치스코 2021.08.01 150
1309 새 예루살렘 -참 겸손한 이들이 영원히 머무는 곳-2022.11.28.대림 제1주간 월요일 프란치스코 2022.11.28 187
1308 새 예루살렘 -늘 깨어 기도하여라-2020.11.28.연중 제34주간 토요일 프란치스코 2020.11.28 864
1307 새 삶의 시작 -죽음은 아버지의 집으로의 귀가歸家다-2020.7.13.월요일 고故 이 정우 바오로 수사(1933-2020)를 위한 위령미사 1 프란치스코 2020.07.13 197
1306 새 사람의 삶 -사랑하라, 그리고 또 사랑하라-2019.9.12.연중 제23주간 목요일 1 프란치스코 2019.09.12 135
1305 새 가정 인류 공동체 -하느님의 영원한 꿈-2015.1.27. 연중 제3주간 화요일(뉴튼수도원 78일째) 프란치스코 2015.01.27 350
1304 삼위일체의 삶 -늘 새롭고 아름답고 행복한 삶-2020.6.7.주일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1 프란치스코 2020.06.07 157
1303 삼위일체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개방, 나눔, 관계, 겸손-2017.6.11. 주일 삼위일체 대축일 프란치스코 2017.06.11 203
1302 삼위일체 하느님-2015.5.31. 주일 삼위일체 대축일 프란치스코 2015.05.31 426
1301 삼감三感 가득한 하루의 순례여정 -주님의 길을 닦으십시오-2017.12.23. 대림 제3주간 토요일 프란치스코 2017.12.23 155
1300 삶의 지혜 -태풍颱風을 미풍微風으로-2021.11.25.연중 제34주간 목요일 1 프란치스코 2021.11.25 160
1299 삶의 지혜 -지혜는 선물이자 선택이요 훈련이다-2022.9.19.연중 제25주간 월요일 프란치스코 2022.09.19 228
1298 삶의 중심인 하느님 -하느님의 자녀답게 삽시다-2022.3.30.사순 제4주간 수요일 프란치스코 2022.03.30 181
1297 삶의 중심인 예수님의 십자가 -성 십자가 예찬-2021.9.14.화요일 성 십자가 현양 축일 1 프란치스코 2021.09.14 196
1296 삶의 중심인 예수님 -사랑하라, 배우라, 실천하라-2023.10.1.연중 제26주일(군인주일) 프란치스코 2023.10.01 218
1295 삶의 중심인 예수님 -기본에 충실한 본질적인 삶-2021.9.17.금요일 성녀 힐데가르트 동정 학자(1098-1179) 기념일 1 프란치스코 2021.09.17 137
Board Pagination Prev 1 ... 102 103 104 105 106 107 108 109 110 111 ... 172 Next
/ 172
©2013 KSODESIGN.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