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6.1. 금요일 성 유스티노 순교자(100-165) 기념일     

1베드4,7-13 마르11,11-25



왜 성전정화인가?

-종말론적인 삶의 자세-



왜 성전정화인가? 무엇이 성전정화인가?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날도 여전히 믿는 이들에게는 참으로 중요한 물음입니다. 종말론적인 삶의 자세에도 딱 들어맞는 성전정화입니다. 하여 강론 제목도 ‘왜 성전정화인가?-종말론적인 삶의 자세-’로 택했습니다.


‘인간의 위기’인 시대입니다. 외적발전이 내적발전의 인간성숙에 연결되지 않습니다. 4차혁명을 말하지만 인간이 정말 인간다워지고 행복해지리란 보장도 없습니다. 기도와 일은 인간됨의 기본인데, 기도하지 않고, 일하지 않고, 모든 것을 기계에 맡겨놓고 과연 인간이 되는 길이, 행복해지는 길이 있을까요? 


저는 회의합니다. 제가 보기엔 4차혁명보다 더 시급한 혁명이 근검, 절제의 생활방식을 통해 쓰레기를 줄이는 내적혁명이요, 참으로 걱정되는 바 인구감소로 인해 언젠가 흉물로 변해 버릴 무수한 아파트 건물들입니다.


열린 판도라의 상자를 닫을 수도 없고 참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날로 비인간화되고 인간기능도 퇴화되어 가는 정보와 편리와 신속의 시대요 날로 망가져가는 자연이요 인간입니다. 미래는 인간이요 자연인데 인간이, 자연이 망가진 미래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지요.


하여 날로 뚜렷히 부각되는 존재가 하느님입니다. 오늘날 온갖 비극과 불행도 하느님 망각에서 기인합니다. 하느님이 계시기에 참된 인간입니다. 하느님을 잊으면 인간-악마-동물간의 사이도 점점 모호해집니다. 사람이라고 다 사람이 아니라 괴물같은 사람도, 짐승같은 욕망만의 사람도, 폐인같은 사람도, 악마같은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잊으면, 하느님을 살지 못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하느님 나라의 시스템이 아닌 사탄의 시스템 속에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 없이는 기도도, 회개도, 겸손도, 사랑도 없습니다. 사람되기가 참으로 힘듭니다. 하여 사람이 물음이라면 하느님은 답이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다-성전을 정화하시다-말라버린 무화과나무의 교훈’의 소주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앞전에는 ‘예수님 예루살렘 입성하시다’의 소주제가 나옵니다. 오늘 복음의 서두 예루살렘 입성후 예수님의 동태에 대한 묘사가 의미심장합니다.


‘예수님께서 군중의 환호를 받으시면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그곳의 모든 것을 둘러보신 다음, 날이 저물었으므로 열두 제자와 함께 베타니아로 나가셨다.’


베타니아는 예수님의 거처입니다. 예루살렘 성도를 대략 살펴보시며 건강진단하시는 주님이시며 우선 그 중심지인 성전의 상태를 면밀히 진단하십니다. 예루살렘 도시의 건강상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부단히 성화聖化해야할 세상의 마지막 보루인 성전이 속화俗化되면 그 무엇으로도 세상을 성화시킬 수 없습니다. 세상의 중심인 성전은 말그대로 하느님의 거룩함으로 빛나야 하는 것입니다. 거룩함이 바로 성전인 교회의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하여 예수님이 우선적으로 시도하신 과감한 행위가 성전정화였습니다. 


“‘나의 집은 모든 민족들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릴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느냐?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거룩해질 때 비로소 인간입니다. 인간을 거룩하게 성화해야할 성전인 기도의 집이 속화되어 강도의 소굴로 전락되면 어디서 인간이 거룩해질 수 있겠는지요? 예수님의 예언자다운 모습이 약여躍如합니다. 성전정화에 대한 상반된 반응도 의미심장합니다. 


성전권력에 해당되는 기득권층의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을 없앨 방법을 모색하나 군중은 모두 그분의 가르침에 감탄합니다. 군중의 감탄에 더욱 예수님을 두려워하는 기득권층의 성전권력자들입니다. 그렇다 하여 군중을 믿을 바도 못되니 바로 예수님을 열렬히 환영하다가 돌변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 광분했던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성전정화에 앞선 무화과나무에 대한 저주는 다분히 상징적 교훈을 위한 것입니다. 열매맺지 못하는 속화된 성전은 가차없이 퇴치하시겠다는 예수님의 단호한 의지의 반영입니다. 그대로 예수님을 통해 일하시는 하느님이심을 깨닫습니다. 


성전정화는 동시적입니다. 3차원의 성전이 동시적인 정화가 이루어져야 비로소 온전한 성전정화입니다. 1.보이는 가시적 성전, 2.그리스도 예수님의 몸인 성전, 3.각자의 성전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가시적 성전정화가 지향하는 궁극의 목표는 이 세 성전 모두가 해당됩니다. 엊그제 5.30일 성전 봉헌 축일 때 아름다운 기도문을 소개합니다.


“아버지께서는 기도하는 이 집에 자비로이 머무르시며 끊임없이 은총을 내려 주시어” 여기까지가 보이는 가시적 성전을 뜻한다면, 본기도 “주 하느님, 살아있는 선택된 돌로 영원한 영광의 거처를 몸소 마련하셨으니 주님의 교회에 성령의 선물을 더욱 풍성히 내려주시어”는 그리스도의 몸인 성전을 뜻합니다. 


이어 “저희가 성령의 거룩한 성전이 되게 하시고 거룩한 생활로 주님 영광의 빛을 드러내시고”는 각자의 성전을 뜻합니다. 영성체후 기도도 “오늘 이 성사에 참여한 저희가 은총의 성전이 되고, 마침내 영광스러운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게 하소서.” 아름다운 내용이 계속됩니다.


참 거룩하고 아름다워야 할 이런 성전이 속화되는 것만큼 인간영신생활에 치명적인 것은 없습니다. 성전정화의 핵심은 각자의 회개임을 깨닫습니다. 참된 회개를 통해 각자 정화되어 거룩한 성전이 될 때 그리스도의 몸인 성전정화도, 가시적 건물의 성전정화도 자연스럽게 뒤따를 것입니다. 


무엇보다 세 차원의 성전정화에 회개와 더불어 더불어 결정적 도움이 되는 것이 끊임없이 매일 영원히 이 거룩한 성전에서 계속되는 공동성전전례기도입니다. 공동체 형제들이 마음을 다해 함께 바치는 시편과 미사 공동전례기도가 바로 동시적으로 세차원의 성전을 정화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님이 오셔도 우선 성전정화부터 시작할 것입니다. 성전정화는 일회성으로 끝날 일이 아닌 영원한 현재진행형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제1독서 베드로의 첫째 서간 내용은 ‘종말과 공동체 생활’입니다. 종말론적인 삶의 자세가 바로 각자 회개의 성전정화의 열매임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종말론적인 삶의 자세로 살 때 비로소 회개의 진정성이 입증되고 동시에 이뤄지는 세차원의 성전정화입니다. 베드로 사도를 통한 주님의 금과옥조같은 말씀입니다.


1.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차려 기도하십시오.

2.서로 한결같이 사랑하십시오. 사랑은 많은 죄를 덮어 줍니다.

3.불평하지 말고 서로 잘 대접하십시오.

4.저마다 받은 은사에 따라, 하느님의 다양한 은총의 훌륭한 관리자로서 서로를 위하여 봉사하십시오. 그리하면 하느님께서 무슨 일에서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5.시련의 불길이 일어나더라도 놀라지 말고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니 기뻐하십시오. 그러면 그분의 영광이 나타날 때에도 기뻐하며 즐거워하게 될 것입니다.


참 아름다운 성전정화, 회개의 열매가 ‘기도, 사랑, 환대, 봉사, 기쁨’입니다. 이렇게 종말론적인 삶의 자세로 늘 깨어살 때 우리는 주님의 거룩한 성전이 되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속화된 세상을 성화할 것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회개한 우리 모두를 정화, 성화시켜 주시어 속화된 세상에 거룩한 성전으로 파견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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