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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3.5.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                                                  이사58,9ㄷ-14 루카5,27ㄴ-32

 

 

 

회개의 여정

-부르심, 버림, 따름-

 

 

 

“나는 누구인가?”

누구나의 궁극적 물음입니다. 참으로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물어도 주님이 없으면 답은 나오지 않습니다. 인간이 물음이라면 답은 우리 주님뿐입니다. 주님과의 관계를 통해 비로소 참 나를 알 수 있습니다. 주님과의 관계를 통해 회개와 겸손이요 비로소 참나를 알 수 있고, 이 또한 평생 과정입니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합리주의 철학자 데칼트의 말입니다.

 

“나는 불림받았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유대인 랍비 여호수아 헷쉘의 말입니다.

 

주님께 불림 받음으로 비로소 존재감 있는 삶을 살게 되었다는 고백입니다. 참으로 주님과 깊어가는 관계의 여정을 통해 존재감 충만한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부르심하면 떠오르는 김춘수의 대표적 시, 꽃이 생각납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그분이 주님이라면 우리 하나하나는 고유한 색깔과 향기, 크기와 모양을 지닌 꽃입니다. 사실 우리 하나하나가 주님께 불림 받아, 참나인 주님의 꽃이 되고 싶은 것입니다. 부르심의 은총입니다. 우리의 따름에 선행하는 주님의 부르심입니다. 주님이 먼저 부르셨기에 따름의 응답입니다. 부질없는 물음이지만, 만약 주님이 세관에 앉아 있는 레위라는 세리를 부르시지 않았다면 레위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만약 우리를 주님께서 부르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정말 부질없는 상상이요 질문입니다. 우연은 없습니다. 모든 것이 은총이요 구원 섭리입니다. 주님은 어쨌든 우리를 부르시어 우리 하나하나를 최선의 길로 이끄셨다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에게 다시 살라해도 이렇게 살 수 뿐이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르심에 앞서 주님은 세관에 앉아 있던 레위의 내적 갈망을, 열망을 한 눈에 알아채셨음이 분명합니다. 레위 역시 주님을 보는 순간 평생 갈망해 왔던 그분임을 알아챘음이 분명합니다. 참으로 영혼과 영혼의 참만남입니다. 누구나 내면 깊이에는 이런 만남을 갈망합니다.

 

“나를 따라라.”

 

전광석화, 주님께서 부르시자 지체없이 레위는 모든 것을 버려 둔 채 그분을 따라 나섭니다. 오매불망 꿈에 그리던 주님을 만난 것입니다. 비로소 참나의 존재감 있는 삶을 살게 된 레위입니다. 부르심-버림-따름이 하나로 이어짐을 봅니다.

 

혼자의 외로운 삶에서 예수님 제자 공동체에 합류한 레위는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베풉니다. 주님을 만나 부르심에 응답함으로 비로소 참나를 발견한 레위의 감격에 벅찬 잔치입니다. 흡사 영적으로 새로 태어난 생일 잔치를 연상케 합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당신들은 어찌하며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투덜거리며 불만을 토로하자 예수님의 지체없는 답변이 오늘 복음의 절정입니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치료받아야 할 환자로 여기시고 당신 자신을 의사로 비유하십니다. 사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치고 죄인아닌 사람, 병자아닌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잘 들여다보면 누구나 무지라는 병을 지니고 살아갑니다. 그러니 죄인으로 보기 보다는 병자로 보아야 합니다. 병자이면서 병자인줄 모르는 무지의 사람들입니다.

 

이래서 회개 은총이 결정적입니다. 부르심-버림-따름의 일련의 과정은 바로 회개의 여정을 보여줍니다. 부르심을 받은 우리의 신원은 ‘회개한 죄인’이자 ‘치유받은 병자’입니다. 그러니 무지의 병에 대한 근원적 치유는 주님과의 만남뿐임을 깨닫습니다. 무지라는 근원적 병을 치유해 주실분은 주님뿐이라는 것입니다. 무지와 허무에 대한 답은 단 하나 회개뿐임을 깨닫습니다

 

회개의 여정입니다. 죽을 때까지, 살아있는 그날까지 계속 반복되는 부르심과 버림, 그리고 따름입니다. 날마다 주님은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는 안팎으로 버리고 주님을 따라나섭니다. 날로 주님과 깊어지는 우정의 관계와 더불어 주님을 닮아가는 우리들입니다. 그러니 회개의 여정은 주님을 알고 나를 알아 가면서 주님을 닮아가는 예닮의 여정이 됩니다.

 

바로 오늘 이사야서 말씀은 회개의 은총을 보여줍니다. 어제에 이어 참된 단식의 정신을 보여줌과 동시에 실천적 회개를 통한 주님의 놀라우신 축복의 은총을 보여줍니다. 이런 실천적 이웃 사랑이 회개의 진정성을 보장합니다. 새삼 혼자가 아닌 더불어의 구원임을 깨닫습니다.

 

“네가 내 가운데서 멍에와, 삿대질과 나쁜 말을 치워 버린다면, 굶주린 이에게 네 양식을 내어 주고, 고생하는 이의 넋을 흡족하게 해 준다면, 네 빛이 어둠 속에서 솟아오르고, 암흑이 너에게는 대낮처럼 되리라.

 

주님께서 너를 이끌어 주시고, 메마른 곳에서도 네 넋을 흡족하게 하시며, 네 뼈마디를 튼튼하게 하시리라. 그러면 너는 물이 풍성한 정원처럼, 물이 끊이지 않는 샘터처럼 되리라.”

 

얼마나 아름다운 묘사인지요! 참으로 회개한 우리들에게 주시는 이 거룩한 미사은총을 상징합니다. 참으로 회개할 때 주어지는 넘치는 은총의 선물들이요, 고단한 이들에게 우리는 주님의 샘터가 될 것입니다. 새삼 회개가 이처럼 구체적 이웃 사랑의 실천으로 드러날 때 주님의 넘치는 축복임을 깨닫습니다. 이어 회개는 안식일의 준수로 드러나는데 저는 안식일을 주일로 바꿔 읽고 싶습니다. 주일도 이렇게 거룩하고 아름답게 지내야 하지 않을까요.

 

“네가 삼가 주일을 짓밟지 않고, 나의 거룩한 날에 네 일을 벌이지 않는다면, 네가 주일을 ‘기쁨’이라 부르고, 주님의 거룩한 날을 ‘존귀한 날’이라 부른다면, 네가 길을 떠나는 것과 네 일만 찾는 것을 삼가며, 말하는 것을 삼가고 주일을 존중한다면, 너는 주님 안에서 기쁨을 얻고, 나는 네가 세상 높은 곳 위를 달리게 하며, 잘 먹게 해 주리라.”

 

주님을 믿는 이들이 정말 주일을 이렇듯 ‘안식의 날’, ‘관상의 날’, ‘치유의 날’로 보내며 거룩한 휴식을 누린다면 얼마나 이상적일까요! 한 번 실행해 보지 않겠습니까? 활동주의의 중독中毒의 병도 치유되고 웬만한 영육의 병들 역시 다 치유되리라 믿습니다. 이사야 예언자의 참으로 아름다운 안식일에 관한 묘사를 통해 도대체 쉴 줄 모르는 우리 사회가 정상 사회가 아닌 말그대로 죄도 많고 병도 많은 미친 사회, ‘광란狂亂의 사회’임을 깨닫습니다. 정말 광란의 사회, 무지의 사회같습니다. 예나 이제나 여전히 반복되는 무지의 어리석은 사람들 같습니다.

 

참으로 이사야의 이런 실천적 이웃 사랑과 안식일(주일)의 준수가 회개의 진정성을 보장합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부르심-버림-따름의 회개의 여정, 예닮의 여정에 항구할 힘을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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