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5.5.부활 제5주간 수요일                                                          사도15,1-6 요한15,1-8

 

 

 

행복한 주님 제자의 삶

-주님 안에 정주定住, 삶의 전지剪枝, 사랑의 열매, 아버지께 영광榮光-

 

 

 

아침 성무일도시 새롭게 마음에 와닿은 시편 성구입니다.

“그지없이 사랑하나이다, 하느님, 내 힘이시여!”

“주님은 내 등불을 밝혀주시고, 내 어둠을 비추시나이다.”

“주님, 생명의 샘이 당신께 있고, 우리는 당신 빛으로 빛을 보옵나이다.”

 

요즘은 뉴스 보지 않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습니다. 너무 부정적이고 악의적 편파적 보도나 가짜 뉴스성 보도도 많고 댓글도 너무 거칠고 험악합니다. 어떤 보도는 외국에서 보는 한국 뉴스가 정확하다고 합니다. 오역誤譯이 아닌 의도된 악역惡譯의 보도도 있다 합니다. 너무 마음이 각박하고 모질어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새벽 언뜻 인터넷에서 뉴스들을 일별해 보며 갖는 느낌입니다.

 

오늘은 어린이날입니다. 벌써 코로나로 인해 단체 피정 못한지가 2년째 접어듭니다. 이제 단체피정도 아련한 추억처럼 느껴집니다. 예전 5월 어린이날 전후, 60-70대 노년 형제자매들 피정지도시 불렀던 ‘어린이날 노래(윤석중 작사, 윤극영 작곡)' 추억이 생각납니다. 모두 어린이가 된 듯 동심과 동안으로 빛났던 아름답고 싱싱한 분위기가 생생합니다.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우리가 자라면 나라의 일꾼, 손잡고 나가자 서로 정답게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해방후 태어난 모든 남녀노소 모두가 부를 수 있는 어린이날 노래입니다. 가사도 요즘 신록으로 빛나는 파스카 축제시기 아름다운 성모성월에 딱 드러맞습니다. 오늘 하루 어린이날 동요童謠를 맘껏 부르면서 신록의 청순한 동심童心에 동안童顏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저도 오늘 ‘어린이날 노래’와 더불어 ‘새나라의 어린이’ 동요를 노래할까 합니다.

 

우리는 아무리 세월흘러 나이들어 늙어도 하느님앞에서는 영원한 어린이들입니다. 그러니 파스카 신비를 사는 신자들에게는 하루하루 매일이 어린이날입니다. 참으로 영원한 동심의 하느님의 어린이가 되어 ‘행복한 제자의 삶’을 살 수 있는 길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첫째, 늘 주님 안에 머물러 사는 정주의 삶입니다.

늘 주님 안 제자리에 머물러 제정신으로 제몫을 다하며 제대로 정주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 포도나무의 비유가 전하는 가르침이자 깨우침입니다. 주님 안에서 공존공생의 조화와 균형의 아름다운 하늘 나라 공동체를 이루어 살자는 것입니다. 각자도생의 고립단절의 지옥같은 삶이 아닌 주님과는 상호내주, 서로간에는 상생과 상호보완의 협력과 연대의 삶을 살자는 것입니다. 바로 요즘 아름다운 신록의 자연이 주는 가르침입니다. 사람만이 겪는 코로나의 재앙입니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네 안에 머무르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포도나무 없는 가지들 없듯이, 예수님 없는 우리들은 없습니다. 가지들 없는 포도나무 없듯이 우리들 없는 예수님은 없습니다. 예수님과 우리는 운명의 하나 공동체임을 봅니다. 바로 우리 믿는 이들 공동체가 예수님의 몸이요 우리 하나하나는 그 지체들이 됩니다.

 

그러니 주님 안, 각자 제자리에 머물러 주님 중심에 깊이 믿음의 뿌리를 내려 주님과 깊은 일치의 결속 관계를 지니는 것이 얼마나 본질적인 일인지 깨닫습니다. 주님 안에 머물러 살지만 각자 고유의 제자리입니다. 

 

우리의 사랑은 비상한 사랑이 아니라 각자의 공간과 영역, 자리를 존중하고 지켜주고 배려하는 아주 평범하나 참 중요한 구체적 실제적 사랑입니다. 자연만물을 보십시오. 모두가 각자 제자리의 공간과 자리를 확보하여 땅에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특히 배밭의 배나무들을 보면 홀로와 더불어의 삶이 잘 조화되고 있습니다. 홀로와 더불어의 조화와 균형은 공동생활의 원리입니다. 함께하되 각자의 제자리에는 구별은 있을지언정 차별은 있을 수 없습니다. 서로간에는 분별의 지혜와 사랑을 통한 상호존중과 배려만이 있을 뿐입니다.

 

좌와 우, 진보와 보수가 사랑의 상호존중과 상호보완의 배려중에 사는 공동체입니다. 이것은 분열이나 분리가 아닌 다양성의 일치를 뜻합니다. 좌우는 진보와 보수의 관계는 두눈, 두귀, 두손, 두발과 같습니다. 새는 좌우 날개로 납니다. 우리도 좌우 두발로 걷지 아무리 건강해도 한발로는 못 걷습니다. 아무리 건강해도 한손으로는 박수도 못칩니다. 둘이 있을 때 쓸모있는 존재지, 아무리 좋은 양말과 구두라도 한쪽 뿐이라면 아무 쓸모 없어 버려집니다. 이것은 제가 한쪽 무릎이 불편하여 제대로 걷거나 뛰지 못했을 때의 생생한 체험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한몸의 다양한 지체라는 의식이요, 주님 안에 머물러 깊이 뿌리 내리는 인격적 관계의 깊이입니다. 본질적인 것과 부수적인 것과의 분별의 지혜도 여기서 나옵니다. 바로 오늘 사도행전의 예루살렘 사도회의도 이런 연유에서 시작됩니다. 본질을 잊었기에 부수적인 것에 집착하는 극우같은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의 극단적 본말전도의 사고가 문제인 것입니다.

 

“모세의 관습에 따라 세례를 받지 않으면 여러분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지엽적인 것들에 사로잡힌 외눈박이 같은 사고입니다. 참으로 본질적인 주님과의 깊은 관계였다면 넑고 깊은 시야에서 공존공생의 삶을 추구했을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외적 전통 관례의 준수가 아니라 주님 안에 머물러 관계를 깊이하는 인격적 관계입니다. 전통의 관례는 계속 개혁되고 쇄신될 때 비로소 ‘늘 옛스러우면서도 늘 새로운(ever old, ever new)’ 참 살아았는 전통이 될 수 있습니다. 바로 이를 옳게 분별하고자 열리는 예루살렘 사도회의이고 내일 독서에서 결론이 나올 것입니다.

 

둘째는 삶의 전지와 사랑의 열매입니다.

배밭의 배나무들의 전지가 참 좋은 깨달음을 줍니다. 전지와 열매는 밀접한 관계에 있습니다. 전지하지 않으면 배나무 꼴도 말이 아닐 것이며 여기에 적과도 힘들어 그 맛좋고 큰 신고배도 돌배 열매들이 될 것입니다. 우리 삶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진리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말씀과 기도를 통해, 우리의 모든 수행을 통해 우리 삶의 참 농부이신 하느님께서 자유롭게 우리 삶을 잘 전지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배나무들은 1년 한번이지만 우리 삶의 전지는 매일입니다. 무엇보다 끊임없는 회개의 실천을 통한 삶의 전지요, 이런 삶의 전지에 이어 무수한 사랑의 열매들입니다. 이래야 이상한 괴물같은 존재가 되지 않습니다. 삶의 전지와 더불어 삶의 열매들을 잘 적과할 때 사랑의 열매들 풍성한 행복한 삶입니다.

 

“너희는 내가 한 말로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평생 말씀 공부와 수행을 통한 삶의 전지요 사랑의 열매들입니다.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습니다. 말씀은 영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빛입니다. 무지의 어둠을 몰아내는 말씀의 빛입니다. 이런 말씀과 하나될 때 삶의 전지와 더불어 저절로 주님과 하나되고 우리 삶은 정화되고 성화됩니다. 특히 우리가 매일 평생 끊임없이 함께 바치는 찬미와 감사의 시편성무일도와 미사전례 수행 은총보다 삶의 전지에 더 좋은 수행도 없습니다.

 

행복한 제자의 삶은 어떻게 가능합니까? 평생과제입니다. 평생 날마다 주님 안에 머물러 정주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모든 말씀과 기도, 전례 및 모든 수행을 통해 주님과 함께 평생 우리 삶을 전지하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참 좋은 농부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우리 모두 풍성한 사랑의 열매들을 맺게 하시며, 우리는 주님의 참 제자가 되고 아버지께서도 영광스럽게 되실 것입니다. 

 

바로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이런 행복한 제자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주님의 간곡한 당부와 약속 말씀으로 강론을 마칩니다.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여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고 내 제자가 되면, 그것으로 내 아버지께서 영광스럽게 되실 것이다.”(요한15,7-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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