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11.수요일 투르의 성 마르티노 주교(317-397) 축일 

이사61,1-3ㄹ 마태25,31-46

 

 

 

최후 심판

-성덕의 잣대이자 심판의 잣대는 사랑-

 

 

 

-“경건하고 모없이 슬기로와서/겸손으로 티없이 보낸생애여

주께받은 생명을 꽃피웠으니/그향기를 만세에 남기었도다

 

질병으로 심하게 앓는이들이/그질병들 아무리 심하다해도

이성인의 묘지를 찾아갈때에/놀랍게도 회복을 얻게되도다”-

 

어제 성 대 레오 교황 축일에 이어 오늘 투르의 성 마르티노 주교 축일의 윗 찬미가 두 연이 참 은혜롭습니다. 성인 축일을 맞이할 때 마다 기분이 좋습니다. 삶의 좌표이자 회개의 표징, 희망의 표징, 구원의 표징이 되는 분들입니다. 아, 이렇게 살 수도 있겠구나 살 힘과 의욕을 주는 성인들입니다. 기념하고 기억할뿐 아니라 우리 모두 사랑을 실천함으로 주님을 닮은 성인이 되라고 격려하는 성인들입니다. 

 

성 마르티노는 4세기 만60세로 세상을 떠난 분으로 성 베네딕도 이전에 이미 서방 수도원 제도를 개척한 탁월한 지도자로 순교자가 아니면서도 성인이 된 최초의 인물입니다. 하여 우리 분도 수도승들은 기념미사가 아닌 특별히 축일 미사를 봉헌합니다. 

 

제가 성인 축일 때마다 우선 확인하는 것이 성인의 생몰연대를 통한 산 햇수입니다. 성인의 산햇수의 나이에 제 현재의 나이를 견주어 보며 각오를 새로이 하곤 합니다. 위령 성월 11월, 만추의 가을엔 ‘가을 인생’을 맞이한 이들은 더욱 자신의 삶을 추스르며 점검하기도 할 것입니다.

 

과연 내 인생 여정을 일년사계로 압축할 때 어느 계절 지점에 와 있겠는지요. 참 재미난 현상은 수도원 피정자들의 대부분이 연령대로 볼 때 가을 인생을 맞이한 분들이라는 것입니다. 어제 예수성심자매회 모임에도 14분의 자매들이 오후 미사에 참석했고 대부분 가을 인생에 속한 분들이었으며 미사후에는 ‘성호경’ 기도와 더불어 기념 촬영후 메시지와 더불어 성화聖畫처럼 아름다운 사진을 카톡으로 전송하니 참 마음이 따뜻했습니다. 

 

“주님의 축복을 빕니다! 사진처럼 웃으며 행복하게 사세요! 사랑하는 성녀 베로니카 자매님!”

 

14분 모두에게 셰례명만 바꿔 세례명 앞에 ‘성녀聖女’를 넣어 위와 같은 메시지를 보내니 너무 유쾌했습니다. 졸지에 14분이 자매가 성녀가 된 것입니다. 보내준 답신 내용도 일부 소개합니다.

 

-“오늘은 많은 분들이 오셔서 더 행복한 만남이었습니다. 행복전도사 신부님 늘 감사드립니다.”

“성호경 기도로 성녀의 칭호를 주심에 주님 앞에 어깨가 더욱 무겁습니다. 감사합니다.”

“ㅎㅎ신부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사진을 찍으니 새롭고 신선합니다. 오래 간직하겠습니다.”

“신부님, 성녀 만들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신부님, 오늘 주님 덕분에 지상에서 성녀되어 천국 체험하고 온 것 같습니다.”-

 

믿는 이들 누구나의 궁극의 소원은 성인이, 성녀가 되는 것임을 새롭게 확인합니다. 사실 세상에 온 목적도 내 본연의 모습, 주님을 닮은 성인이 되는 것입니다. 유별난 성인이 아니라 평범한 사랑 많은 ‘사랑의 성인’이요, 성덕의 잣대는 바로 사랑임을 깨닫습니다. 

 

예수성심의 사랑입니다. 그러니 사랑의 ‘성인답게’, ‘성녀답게’ 사는 것은 우리의 존재이유이자 모두입니다. 정말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삶은 무의미하고 허무할 뿐입니다. 그러니 인생 무지와 허무에 대한 답도 사랑뿐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13장 다음 말씀도 기억할 것입니다.

 

“1.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와 천사의 언어로 말한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요란한 징이나 소란한 꽹과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2.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모든 신비와 지식을 깨닫고 산을 옮길 수 있는 큰 믿음이 있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3.내가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고 내 몸까지 자랑스레 넘겨준다 하여도 넘겨준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구구절절 공감이 가는 말씀으로 내 자신의 사랑을 살펴 보게 됩니다. 성덕의 잣대는 사랑입니다. 모든 성인이 예외 없이 사랑의 성인입니다. 다음 제1독서 이사야서 말씀은 비단 예수님을 비롯한 예언자들 뿐만 아니라 ‘주님의 종’으로 또 성인으로 불림 받아 파견된 우리 믿는 모두에 해당됩니다.

 

“주 하느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싸매어 주며,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갇힌 이들에게 석방을 선포하게 하셨다.”

 

파견에 앞선 미사은총을 상징합니다. 주님은 참으로 우리를 내적으로 치유하고 자유롭게 하셔서 세상에 당신 평화의 사도로 파견하십니다. 사랑은 추상명사가 아닌 구체적 동사입니다. 성덕의 잣대일뿐 아니라 이런 구체적 사랑의 실천은 최후심판의 잣대도 됩니다. 성 마르티노를 결정적으로 회심시킨 신비체험도 이런 구체적 사랑 실천의 은총이었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 거지는 마르티노에게 도움을 청했고 가진 것이라곤 몸에 걸친 망토와 검劍뿐이라, 성인은 검으로 망토를 반으로 잘라 거지에게 줬고 밤에 꿈에 자기 반쪽 망토를 입은 예수님께서 나타나 “아직 예비신자인 마르티노가 이 옷을 입혀 주었다”하신 말씀을 듣고 즉시 세례성사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예화에 근거한 오늘 복음입니다.

 

최후심판의 집행자는 사람의 아들이신 예수님이십니다.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 예수님은 모든 민족들의 사람들을 가른 후 양들은 자기 오른 쪽에, 염소들은 자기 왼쪽에 세운후, 오른쪽의 양들에게 장엄한 구원을 선언하십니다. 과연 나는 오른쪽의 양과 왼쪽의 염소중 어느쪽에 속할 까요?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이들아,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를 차지 하여라. 너희는 1.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2.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고, 3.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또 4.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5.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6.내가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 주었다.”

 

추상적 영적 사랑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신체적 필요를 채워준 실천적 동사의 사랑입니다. 참으로 우리의 말만의 사랑을, 마음만의 사랑을, 감정만의 사랑을 몹시 부끄럽게 합니다. 과연 6개 항목의 구체적 사랑을 얼마나 실천하고 계시는 지요?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의아하여 묻는 의인들에게 주님은 명확하게 말씀하시니 바로 오늘 복음의 절정이자 결론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25,40).

 

참 놀랍고 신선한 충격적 말씀입니다. 종파, 언어, 국적, 인종, 성별 모두를 초월하여 모든 가장 작은 이들을 ‘내 형제’라 칭하며, 이들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 해 준 것이라 하며 가장 작은 이들과 예수님 자신을 동일시합니다. 

 

참으로 가장 작은 형제들은 물론 곤궁중에 있는 형제들 모두가 주님의 현존임을 깨닫습니다. 이런 가난한 작은 이들을 통해 주님을 만나는 자가 정말 건전하고 건강한 사랑의 신비주의자임을 깨닫습니다. 이런 구체적 사랑의 실천이 없는 온갖 영적 수행들은 참으로 공허하게 느껴집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성체성사를 통해 우리 모두 당신 사랑으로 충만케 하시어, 내 삶의 자리의 가장 작은 형제들에게 사랑의 일꾼으로 파견하십니다. 참으로 주님의 가장 작은 형제들을 구체적 사랑으로 도울 때 비로소 성체성사의 완성임을 깨닫습니다. 아멘.

 

  • ?
    고안젤로 2020.11.11 08:4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25,40).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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