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2.17.연중 제6주간 목요일 

-제주도 성지 순례 여정 피정 4일차-                    

야고2,1-9 마르8,27-33

 

 

버림과 비움의 여정

-공평과 겸손-

 

 

어제 오전에는 강정 마을에서 오전 11시 거리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미사전 숙소를 방문한 수도원 주방 봉사를 하다 잠시 제주도에 머물고 있는 아가다 자매를 비롯한 한분 자매에게 고백성사를 드렸습니다. 평화센터 사무실 직원 박미도 유스티나 자매는 강론을 출력해 주면서, 20년전 수도원 피정중 면담성사시 보속으로 말씀 처방전을 받았고 어제 제 강론도 읽었다 전해 주어 참 반가웠습니다. 

 

강정 마을 거리 미사는 약 20명 정도 참석했었고, 무수한 자동차들이 지나는 대로변에 자리잡은 생각보다 참 초라하고 가난한 자리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로서 5389일째 미사후 즉시 순례 여정에 올랐고 강 사도요한 가이드 형제의 안내에 따라 주로 바닷가 도로를 따라 명소에 들렸습니다.

 

늘 불암산만 바라보다 어제는 참 많이도 바라본 제주도 서귀포 근처의 바다였고 사진에 담았습니다. 문득 산숭해심山崇海深,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라는 말마디의 추사 김정희의 글씨가 생각났습니다. 더불어 “인자요산 지자요수仁者樂山 智者樂水”, 인자한 사람은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한다는 말도 생각났습니다. 그러니 제 평생 스승은 수도원 배경의 불암산과 제주도 보물섬을 에워싸고 있는 깊고 넓은 바다임을 마음 깊이 새겼습니다. 정말 주님처럼 인자와 지혜를 겸했으면 소원이겠고, 비움의 여정에 항구할 때의 은총임을 깨닫습니다.

 

이어 해안가를 따라 SGI연수원 절벽 길 산책에 지금은 폐가가 된 옛 이승만 대통령 별장과 허니문 하우스에 들렸고 거문여 해안을 산책했습니다. 어제 따라 거센 해풍海風이었지만 땅에 깊이 뿌리내린 억척스런 생활력의 해송海松들이 제주도 사람들을 닮았겠다 싶어 새삼스런 감동이었습니다.

 

“성산포에서는 설교를 바다가 하고

목사는 바다를 듣는다 

기도보다 더 잔잔한 바다

꽃보다 더 섬세한 바다

성산포에서는 

사람보다 바다가 더 잘 산다”-2008년 여름

 

지금은 94세(1929년생) 이생진 시인의 시비가 무수한 시비들 첫째에 자리하고 있었고 예전 즐겨 되뇌던 자작 고백짧은 시도 생각났습니다. 

 

“끊임없이

비워지고 낮아져

모두를 ‘받아’드려

마침내

‘바다’가 되었다”

 

비움의 여정을 통해 자주 바다가 되고 싶다는 마음에 써놨던 좌우명시 한연도 생각났습니다. 강과 바다를 동시에 살고 싶은 염원을 담은 시요, 새삼 바다와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강임을 깨닫습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끊임없이

하느님 바다 향해 흐르는 강이 되어 살았습니다.

때로는 좁은 폭으로 또 넓은 폭으로

때로는 완만하게 또 격류로 흐르기도 하면서

결코 끊어지지 않고 계속 흐르는 ‘하느님 사랑의 강’이 되어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찬미받으소서.”

 

웅덩이에 고인물같은 안주安住의 삶이 아니라 끊임없이 맑게 흐르는 내적여정의 정주定住의 삶이 되기를 소망하며 쓴 자작 좌우명시중 한연입니다. 참으로 끊임없이 맑게 흐르는 삶의 여정이 그대로 비움의 여정입니다. 매사 모든 어려움에 좌초함이나 좌절함이 없이 겸손과 비움의 계기로 삼아 끊임없이 주님을 향해 전진前進하는 삶이야 말로 진짜 영성생활입니다.

 

이어 베케 정원을 방문했고 여러 사진도 찍었습니다. ‘베케’는 ‘돌무더기’의 제주도 사투리 용어라 합니다. 가이드 형제의 고등학교 동창 친구가 운영하는 정원인데 예전에는 귤밭이었고 친구의 어머니가 귤밭으로 개간하면서 캐어 쌓아놓은 돌무더기를 친구가 운치있는 동산으로 조성했다 합니다. 

 

이어 뒤편에는 창고터에는 여러 자연스런 조화물들이 배치되어 있었으며 새삼 정원 주인의 부모에 대한 효심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폐허廢墟의 미학美學’을 최대한 활용한 주인의 순수한 마음과 미적 안목에 감동했습니다. 젊은 남녀들이 끊임없이 줄을 잇고 있는 참 매력적이 정원이었습니다. 

 

쇠소까 관광후 저녁식사 전에는 연락이 된 김순샘 율리아 자매의 방문이 참 반갑고 기뻤습니다. 1년전 수도원에 피정왔었던 분으로 제 강론을 읽고 방문을 알게 되었으며  소정의 선물금도 전달받았습니다. 새벽마다 성서 필사후 제 강론을 읽고 하루를 시작하고 출근길에 오른다는 참 아름답고 사랑스런 주님의 자녀입니다. 세상 곳곳에서 아름다운 주님의 자녀들이 각자 삶의 제자리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는 사실이 큰 위로와 격려의 구원이 됩니다. 

 

평화센터에 아침 일찍 출근한 생면부지 자매님의 “요셉피나라 합니다.” 라는 경쾌한 인사의 감동도 잊지 못합니다. 보편적 이름의 세례명이 순간 서로의 벽을 허물고 하느님 안에서 누구나 한 식구임을 깨닫게 한 은혜로운 체험이었습니다. 

 

참 재미있게도 강론 주제가 여정이란 단어 안에서 하나로 모아집니다. 엊그제는 깨달음의 여정에 이어 어제는 개안의 여정, 그리고 오늘은 버림과 비움의 여정입니다. 참으로 진짜 영적 여정은 날로 자신을 버리고 비워가는 비움의 여정임을 깨닫습니다. 비움을 통해 비움의 주님을 만나 비움과 겸손의 주님을 닮아가기 때문입니다.

 

무지의 어리석은 사람만이 채우려 시도합니다. 채울수록 부족을 느낄뿐 영적 갈증과 허기는 계속될 뿐입니다. 사람 차별 역시 무지의 산물입니다. 몰라서 차별이지 알면 알수록 공평무사한 마음이 됩니다. 이 또한 비움의 여정에 충실할 때의 열매입니다.

 

“나의 형제 여러분, 영광스러우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됩니다. 들으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가난한 사람들을 골라 믿음의 부자가 되게 하시고,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가난한 사람을 업신여깁니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 하신 지고至高한 법을 이행하면, 그것은 잘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사람을 차별하면 죄를 짓는 것으로, 여러분은 율법에 따라 범법자가 됩니다.”

 

무시, 멸시와 더불어 차별, 편애가 정말 마음 아프게 하는 죄입니다. 비상한 사랑이 아니라 무시와 차별이 없는 평범한 사랑이 제일입니다. 참으로 자기를 비워가면서 자신의 가난과 부족을 알 때 저절로 공평무사한 차별없는 주님의 연민의 사랑을 닮아갑니다.

 

오늘 복음의 주님의 수제자 베드로의 민낯이 드러나는 장면도 충격이나 우리는 귀한 진리를 배웁니다. 베드로처럼 제자와 사탄의 양면 가능성을 지닌 우리들입니다.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라면 멋지게 주님을 고백했던 베드로가 그리스도에 대한 무지의 몰이해로 주님의 심한 질책을 받습니다. 졸지에 주님의 길을 막는 걸림돌, 사탄이 되어 버립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구나!”

 

그대로 우리의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무지에 대한 유일한 답은 회개뿐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의 일이 아닌 사람의 일만 추구할 때 누구나의 가능성이 사탄입니다. 빛에 그림자가 따르듯 늘 사탄의 그림자를, 유혹을 깨어 경계해야 합니다. 이런 주님의 충격요법적 극약 처방에 베드로는 깊이 배우고 깨달았을 것이며 자신을 비워 더욱 겸손해졌을 것입니다. 

 

참으로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됐을 것이며 수난과 죽음, 부활의 파스카 주님께 대한 이해도 한없이 날로 깊어졌을 것입니다. 참으로 베드로의 비움의 여정, 배움의 여정, 겸손의 여정에 결정적 도움을 주었을 전화위복의 체험이었음이 분명합니다. 

 

무지하여 어리석을 때 차별이요, 무지하여 모를 때 교만입니다. 참으로 끊임없는 회개와 비움을 통해 자기를 알고 주님을 알아 주님을 닮아갈 때 비로소 공평무사, 대자대비의 사랑이자 지혜요 겸손한 사랑임을 깨닫습니다. 이 또한 평생과제입니다. 우보천리요 천리길도 한걸음 부터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영원한 초보자의 정신으로, 초발심의 자세로 비움의 여정에 항구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

 

"주님을 바라보아라. 기쁨이 넘치고, 너희 얼굴에는 부끄러움이 없으리라.

가련한 이 부르짖자 주님이 들으시어, 그 모든 곤경에서 구원해 주셨네."(시편34,6-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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