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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4.9.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이사50,4-7 필리2,6-11 마태26,14-27,66



후회하지 않는 삶

-아름다운 삶, 아름다운 죽음-



“내 살아있는 한, 주님을 노래하리이다.

 이 목숨 있는 한, 내 하느님 기리오리다.”(시편104,33)


아침시편성무일도 시 마음에 와닿은 구절입니다. '알렐루야' 하느님 찬미로 살다가 '아멘' 하느님께 감사로 마감하는 삶이라면 얼마나 아름답겠는지요. 부활 한 주 전, 주님 성지 주일에 이미 활짝 만개하기 시작한 봄꽃들이 주님 부활의 기쁨을 앞당겨 찬미하고 있습니다. 장례식장에서 망자의 다음 육성 유언 녹음을 듣는 다면 얼마나 유쾌하겠는지요. 실화입니다.


“아이구, 제가 하늘나라로 간 오늘 이렇게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은 슬픈날이 아닙니다. 저는 세상을 즐겁고 행복하게 살다 떠나는 사람이니까 오늘 맛있게 드세요. 여러분이 살아있는 곳이 천국이 아니겠습니까? 즐겁고 행복하고 보람있게 사십시오. 감사합니다.”


참 아름다운 삶에 아름다운 죽음입니다. 미리 이런 육성유언녹음 해놓고 자주 죽음을 묵상한다면 영적 삶에 대단한 유익이 될 것입니다.


오늘은 성주간 첫날 주님 수난 성지주일입니다. 마태오 복음사가의 긴 수난복음을 통해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과 수난과 죽음에 대해 들었습니다. 참 무수한 사람들이 수난복음의 배경으로 등장합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통해 사람들의 진면목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과연 내가 이 자리에 있다면 나는 어떤 모습으로 있을까 묵상함도 좋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수난복음의 전개를 대략 살펴 봅니다.


“예루살렘 입성-유다의 배신-최후만찬 준비-제자의 배신 예고-성찬례 제정-베드로의 부인 예고-겟세마니에서의 기도-잡히심-최고회의에서 심문 받으심-예수님 조롱-베드로의 부인-빌라도 앞에 끌려가심-유다의 자살-빌라도에게 심문을 받으심-사형선고를 받으심-군사들이 예수님 조롱-십자가에 못박히심-숨을 거두심-묻히심-경비병들이 무덤을 지킴.”


이어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이런 일련의 참 복잡하고 힘든 고난의 과정을 통해 예수님의 한결같은 모습이 잘 드러납니다. 전혀 두려움도, 부러움도, 부끄러움도 없는 담담하고 침착한 모습입니다. 추호의 원망이나 저주, 후회도 없어 보입니다. 평소의 아름다운 삶의 반영입니다. 아름다운 삶에 아름다운 죽음입니다. 그대로 제1독서 이사야서 ‘주님의 종’의 셋째 노래에 나오는 모습입니다.


“주 하느님께서 내 귀를 열어 주시니, 나는 거역하지도 않고 뒤로 물러서지도 않았다. 나는 매질하는 자들에게 내 등을, 수염을 잡아 뜯는 자들에게 내 뺨을 내맡겼고,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주 하느님이 나를 도와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이사50,5-7ㄱ).


그대로 수난복음의 예수님 모습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전적 신뢰가 있어 이런 요지부동의 자세입니다. 온전히 하느님의 손에 내맡긴 모습입니다. 필립비서의 감동적인 고백도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부활에서 영감 받았음이 분명합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여느 사람처럼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필리2,6-8).


참 아름다운 삶, 아름다운 죽음입니다. 새삼 우리 삶의 여정은 하느님을 향한 ‘비움의 여정’, ‘순종의 여정’임을 깨닫습니다. 비움의 여정, 순종의 여정을 통해 깊어지는 주님과의 일치입니다. 이런 삶의 예수님이셨기에 온갖 유혹과 시련을 통과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유혹의 시련을 ‘자기비움의 계기’로 삼으셨음이 분명합니다. 수난복음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실망스런 모습을 보십시오.


예루살렘 입성시 환호했던 군중들은 돌변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라 고함치는 광란의 모습입니다. 유다는 예수님을 팔아 넘긴후 자살했고, 수제자인 베드로는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겟세마니 동산에서 기도중에 제자들은 잠들었고 잡혔을 때 제자들을 모두 도망쳤습니다. 마지막 십자가상에 죽음을 맞이할 때 지나가던 이들도 조롱하며 유혹했습니다. 참 고립무원의 고독하고 외로운 상황입니다.


그런가 하면 ‘참으로 이분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 고백한 백인대장이 있었고, 예수님의 시신을 깨끗한 아마포로 감싸 무덤에 모신 아리마태오 출신의 요셉도 있습니다. 끝까지 수난현장에 말없이 함께 했던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 맞은 쪽에 앉아 있습니다. 참 다양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수난복음이 역설적으로 사람들을 심판합니다. 예수님의 수난복음을 통해 환히 드러나는 사람들의 진면목입니다. 


이런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예수님께서 평정심을 지닐 수 있었던 비밀은, 비결은 무엇이겠는지요? 두말할 것 없이 기도입니다. 답은 기도뿐입니다. 기도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신뢰의 표현입니다. 하느님은 우리 삶의 중심이십니다. 간절하고 끊임없는 기도를 통해 주님과의 일치를 깊이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 아버지의 뜻을 깨닫고 아버지의 뜻에 따라 살 때 비로소 흔들림 없는 내적안정과 평화입니다. 수난복음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겟세마니 동산에서 예수님의 기도가 심금을 울립니다.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마태26,39ㄴ).


“아버지, 이 잔이 비켜갈 수 없는 것이라서 제가 마셔야 한다면,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마태26,42ㄴ).


기도의 전범典範입니다. 기도는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평생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래야 아름다운 삶, 아름다운 죽음, 후회함이 없는 삶입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십자가 상에서 죽음시의 기도는 아버지께 대한 깊은 신뢰를 반영합니다. 


방금 애절하게 부른 화답송 후렴이 바로 시편(22,2)을 인용한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바친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 기도로 우리 말로 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오늘 끊임없는 기도로 바치며 예수님의 죽음과 내 죽음을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느님, 내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마태27,46)


기도가 답입니다. 기도와 삶은 하나입니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것이 기도입니다. 어느 수녀님의 고백에 공감했습니다.


“저는 변방에서 자연사하는 것이 제 꿈입니다. 변방이라는 것은 수녀원 본원에서 제일 먼 곳, 가장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곁을 말해요. 자연사하려면 기도생활을 철저히 해야 해요.”


끊임없는 기도 있어 이루어지는 자연사의 꿈입니다. 옛 사막교부들이나 성 베네딕도가 강조한 것은 죽음을 날마다 눈앞에 환히 두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수난복음에서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통해 우리의 죽음을 깊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루하루 처음이자 마지막처럼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죽음이 있어 삶이 하느님의 선물임을 깨닫습니다. 얼마전 수도형제와의 대화가 저에겐 구원의 깨달음이었습니다.


“수사님처럼 이렇게 하루하루 사는 이도 없을 것입니다.”

 -산티야고를 걸을 때는 참 자신있게 걸었는데 이제는 힘들게 되었습니다-

“치열한 삶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후회는 없으시죠?”

 전광석화, 새로운 깨달음으로 와닿은 말이었습니다. 잠시후 대답했습니다.

-예, 추호도 후회는 없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결정적 한마디를 놓친 것이 생각났습니다. 이 말마디가 저를 구원했고 그 날은, 아니 지금까지 행복한 여운은 여전합니다.


“내가 다시 산다해도 이처럼 살 수 뿐이 없을 것입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다시 산다해도 이렇게 살 수 있을 뿐, 다르게 살 수는 없을 것 같았습니다. 하루하루 살아 오늘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그 무슨 미련도, 후회도, 아쉬움도, 서운함도, 부러움도 없습니다. 그러니 하루하루 처음이자 마지막처럼 ‘선물의 하루’를 사는 것 하나뿐입니다. 바로 이것이 종말론적 파스카의 삶입니다. 순전히 기도의 은총임을,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 덕분임을 깨닫습니다. 결국 고백은 다음 하나뿐입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시편23,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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