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4.8.월요일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 

이사7,10-14; 8,10ㄷ 히브10,4-10 루카1,26-38

 

 

순종과 비움의 여정과 순교영성

-마리아 성모님의 삶-

 

 

"예수님이 내 운명이자 사랑이듯이

 강론 또한 내 운명이자 사랑이다."

 

새벽 강론을 쓴후 저절로 나온 고백입니다. 예수님은 저뿐만 아니라 성모님은 물론 모든 성인들의 운명이자 사랑이셨을 것입니다. 오늘은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입니다. 예전에는 성모 영보 대축일로 불렸던 축일입니다. 예수님의 성탄 대축일 12월25일 9개월전 3월25일이 대축일인데 올해는 이날이 성주간이라 부활 제2주일 다음 월요일로 옮겨져 오늘 경축하게 되었습니다. 아드님의 부활시기와 겹쳐 더욱 풍요로운 느낌입니다. 

 

우선 돋보이는 점은 하느님의 무한한 인내와 겸손입니다. 교회는 제1독서 이사야 예언자를 통한 아하즈에 대한 신탁을 예수님 탄생의 예언으로 이해했습니다. 이사야를 통한 예언후 때가 될 때까지 기다려온 인내와 겸손의 하느님이십니다. 우리의 믿음 역시 인내와 겸손으로 표현됩니다.

 

“주님께서 몸소 여러분에게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임마누엘’이라는 예수님 이름보다 더 좋은 이름은 없을 것입니다. 깊이 들여다보면 예수님뿐 아니라 주님의 사랑받는 우리 하나하나의 이름 역시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뜻의 임마누엘임을 깨닫습니다. 임마누엘 예수님 이름이 감명깊게 드러나는 성구는 마태복음 마지막 구절입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임마누엘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깨닫게 하는 참 은혜로운 구절입니다. 이 말씀과 더불어 제가 고백성사 보속시 말씀처방전으로 많이 써드리는 말씀이 오늘 복음의 마리아 방문시 주님의 천사 가브리엘의 일성입니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마리아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은총이 가득한 존재임을 깨닫습니다. 아주 오래전 이 보속 처방전 말씀을 받았을 때 환호하던 어느 수녀의 응답도 잊지 못합니다. 이 예화 또한 제가 참 많이 인용했습니다.

 

“신부님 감사합니다. 이 말씀은 보속(補贖)이 아니라 보석(寶石)입니다. 살아있는 보석같은 말씀입니다.”

 

이와 더불어 독일에서 선교사로 파견되어 오랫동안 살고 계신 현익현 바로톨로메오 신부님의 기발한 유머도 잊지 못합니다. 이 예화 또한 재미있어 수 차례 인용했습니다. 제가 신부님을 수도원의 보물이라 하셨을 때 웃으며 즉각적으로 주신 답변입니다.

 

“나는 보물(寶物)이 아니라 고물(古物)입니다!”

 

불교의 사찰에서 자산 둘이 절의 역사를 증언하는 노목(老木)과 노승(老僧)이라 하는데 가톨릭 수도원 역시 노목과 노승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노승이 고승(高僧)이 되면 더 바랄나위 없겠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어느 사찰이나 수도원을 찾든 우선 확인해 보는 것이 노목과 노승 둘입니다.

 

가브리엘 천사를 통한 나자렛 시골의 마리아를 찾아온 하느님의 겸손이 놀랍습니다. 임마누엘 탄생 예언후 때가 될 때까지 얼마나 오랜동안 기다려온 하느님이요, 희망이 있을 때 비로서 가능한 한없는 기다림입니다. 언젠가의 마리아의 출현에 희망을 걸고 기다려온 하느님의 인내입니다. 

 

기다림하니 해마다 파스카의 봄철이면 놀라운 신비로 와닿은 파스카의 봄꽃들입니다. 어김없이 거기 그 자리에서 몇날 동안 피고자 일년 열두달을 꼬박 기다리며 인내해온 봄철의 무수한 봄꽃들입니다. 이 감격을 노래한 “기다림”이란 자작시가 생각납니다.

 

“꽃같은 만남보다 

 더 반갑고 고마운 만남있으랴

 언제나 거기 그자리

 꼬박 일년 기다렸다 피어난 

 파스카의 봄꽃들이다

 꼭 일년만의 만남이구나!

 산수유, 개나리, 매화, 매실, 벚꽃, 수선화, 민들레...

 모든 봄꽃이 그렇다

 꽃같은 반가운 만남 되려면

 일년은 꼬박 기다려야 하는구나”-2001.4

 

참으로 장구한 세월 인내하며 기다렸다 마리아를 발견한 하느님의 기쁨은 얼마나 컸겠는지요! 참으로 눈밝고 귀밝은 하느님께서는 때가 될 때까지 기다려온 것이며 마리아는 하느님의 기대를 충족시켰습니다. 마리아의 깊은 믿음은 침묵과 경청의 관상으로 드러납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흡사 제1독서 이사야 예언자를 통한 임마누엘 탄생의 신탁 말씀을 연상케 합니다.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내심을 속속들이 밝히는 하느님에게서 마리아에 대한 한없는 신뢰와 사랑을 깨닫습니다. 마리아의 재차 물음에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자신의 속내를 명쾌하게 자상히 밝히는 하느님입니다. 마지막 천사의 말씀이 깊은 울림을 줍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하느님의 뜻대로 살 때 불가능한 일은 없다는 것입니다. 마침내 마리아의 전 존재가 담긴 답변입니다. 인류 역사에 결정적 전환점(터닝포인트;turning point)이 되는 시점(時點)입니다. 하느님의 겸손한 설득이 주효했고 깊은 침묵중에 경청한 마리아의 믿음의 응답입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이루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납니다. 전능하신 하느님도 일방적으로 혼자서는 일하지 못합니다. 마리아의 자발적 순종의 믿음의 응답을 필요로 했던 하느님이요, 이 응답이 나오기전 온누리가 쥐죽은 듯 침묵에 잠겨있었다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이 부분에 관한 주석도 생각납니다. 

 

마리아의 응답에 온 인류의 구원이 달렸기 때문에 하느님 역시 참 초조했을 것입니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하느님도 어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마리아의 무조건적 “예스(Yes)”, 순종의 응답에 하느님의 기쁨은 얼마나 컸겠는지 짐작이 갑니다. 마리아의 위대한 점은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택되었다는 점이 아니라 이런 자발적 순종의 응답에 있음을 봅니다. 부전자전이 아니라 모전자전 그 어머니에 그 아들입니다. 마리아의 순종을 그대로 보고 배운 예수님입니다. 오늘 제2독서 히브리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고백이 이를 입증합니다. 무려 두 차례 반복됩니다.

 

“보십시오, 하느님! 두루마리에 저에 관하여 기록된 대로,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려 왔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바로 이 고백이 예수님 삶의 본질이요 핵심이자 우리 믿는 이들 역시 그러합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다”고 장엄하게 고백합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둔 어머니, 성모님을 부러워한 여인에게 주신 말씀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복되도다, 오히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이들!”(루가11,28)

 

그대로 성모님과 자신을 두고 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게세마니에서 땀이 핏방울처럼 되어 땅에 떨어질 정도로 간절히 바쳤던 예수님의 기도도 생각납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원하시면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루카22,42)

 

십자가 상에서의 예수님 말씀이 절정의 완성을 보여줍니다. 남김없이 순종과 비움의 여정중에 100% 자신을 완전히 비운후의 “다 이루어졌다”(요한19,30;It is finished) 라는 고백이며 바로 이 말씀 안에 우리의 구원이 있습니다. "아, 끝났다!(It is finished!)", 얼마나 고달픈 삶에 최선을 다한 삶이었는지 참 홀가분한, 해방된 느낌이었을 것입니다. 모전자전, 어머니 성모님의 순종과 비움의 여정을 그대로 보고 배운 아드님 예수님입니다. 

 

예수님 잉태후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마지막으로 예수님의 시신을 품에 안으실 때까지 시종여일 한결같이 순종과 비움의 여정에 충실하셨던 성모님처럼, 예수님 역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과 비움의 여정에 항구하셨습니다. 성모님과 예수님, 모자분에게 다시 새롭게 배우는 순종과 비움의 여정이요 순교영성입니다.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남은 인생, 자발적 사랑의 순종과 비움의 순교영성에 항구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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