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1. 수요일(뉴튼수도원 72일째) 성녀 아녜스 동정 순교자 기념일

                                                                                                                                히브7,1-3.15-17 마르3,1-6


                                                                                '소통(疏通)'의 주님

                                                                                    -영원한 사제-


소통(疏通), 불통(不通), 직통(直通), 통달(通達), 통교(通交) 등 한자를 통해 '통(通)'의 의미가 분명해 집니다. 소통의 생명과 사랑이요, 기쁨과 행복입니다. 얼마 전 지인들에게 '호수위에서 기적!'이란 카톡 사진을 전송하면서 얼마나 큰 기쁨을 누렸는지 모릅니다. 소통이면 건강이요 불통이면 병입니다. 소통이면 살고 불통이면 죽습니다. 


숨이 막혀, 혈관이 막혀, 장이 막혀 죽어갈 때 기도를, 혈관을, 장을 뚫어 줘야 삽니다. 길이 막혀 있을 때 혼란과 방황이요, 물길이 막혀 있을 때 범람이요, 언로가 막혀있을 때 유언비어가 횡행합니다. 개인이든, 사회든, 마음이든 몸이든 활짝 열려 소통해야 생명력 넘치는 건강한 삶입니다.


시장과 사막의 대조가 재미있습니다. 예전 서울 변두리 학교에서의 교편시절 출근 길은 산길로, 퇴근 길은 시장을 통해 오가던 추억이 생각납니다. 시장을 통해 집에 오면서 삶의 활력을 충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삶이 무기력해질 때 살아있는 시장 풍경은 삶에 신선한 활력을 줍니다. 예전 시장체험이나 작년 익산에서 단식피정때의 시장체험이나 산티아고 순례 때의 시장체험이나 대동소이합니다. 생명의 열기와 빛으로 가득한 적나라한 삶의 현장, 시장의 모습은 어디서나 똑같습니다. 새삼 소통의 인간 존재임을 깨닫습니다.


시장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사막입니다. 여기 사막 같은 뉴튼수도원에 오니 더욱 실감합니다. 워낙 넓은 미국이요 미국내 넓은 사막 같은 땅에 자리잡은 뉴튼수도원이라 12년전 방문했을 때나 변화없는 그대로의 자연풍경, 건물풍경입니다. 나갈 곳도 없고 찾아오는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외적인 자극이나 도전이 거의 없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변함없는 환경입니다. 


매일 반복되는 똑같은 일상에 그날이 그날 같고 기록할 내용도 없습니다. 하여 수도승들에게 일과표에 따른 규칙적인 기도, 독서, 묵상, 미사, 식사, 노동, 운동, 휴게, 수면의 자발적이자 적극적 깨어있는 수행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습니다. 베네딕도 성인이 당신 수도승들에게 제시한, 제자리에 충실한 '정주서원', 일과표에 따른 삶에 항구한 '수도자다운 삶', 하느님께 대한 '순종'의 세 서원의 지혜로움에 탄복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도 진정 하느님을 찾는 수도승들은 고독과 침묵의 사막을 사랑합니다. 바로 사막 거기에서 하느님을 만나기 때문입니다.


'아, 사막은 시간이 멈춰 있는 곳, 시간이 없는 곳, 시간이 비켜가는 곳이구나. 하여 무(無)의 끝없는 심연(深淵), 무의미(無意味)와 무기력(無氣力)의 심연이 될 수 있겠구나. 이래서 살기위해 소통이구나. 위로 하느님과 소통하고 옆으로 이웃인 사람과 자연과 소통하고 안으로 나와 소통하면 하느님 사랑의 현존안에 머물러 성인(聖人)이 되지만 이런 소통이 안되면 정말 말그대로 무의 심연, 무의미와 무기력의 심연에 빠져 괴물(怪物)아니면 폐인(廢人)이 되겠구나.‘


하는 깨달음이 가슴을 칩니다. 하여 수도원의 앞문은 세상의 사람들에, 뒷문은 사막의 하느님께 열려 있어야 한다는 진리에 더욱 공감하게 됩니다. 이렇게 세상의 사람들과 사막의 하느님과 소통해야 균형잡힌 개방의 건강한 삶이기 때문입니다. 깊이 들여다 보면 어디나 내면은 사막입니다. 하느님과 이웃과 소통해야 살 수 있는 사막입니다. 삶의 원리는 어디서나 똑같습니다. 


바로 이런 소통의 원리의 극명한 상징이 주님의 십자가입니다. 위로 하느님과의 소통이 상징하는 수직선에 옆으로 이웃과의 소통을 상징하는 수평선의 십자가 교차지점에 소통의 주님이 계십니다. 바로 십자가의 주님은 소통의 주님이심을 깨닫습니다. 주님 십자가와 부활의 빛에서 보면 오늘 복음과 히브리서의 의미가 환히 계시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회당의 중심에 자리잡고 계신 소통의 예수님이십니다. 한쪽 손이 오그라진 사람이 상징하는바 완고함으로 마음이 오그라진 회당 안 사람들이요 우리를 상징합니다.


"일어나 가운데로 나와라. 손을 뻗어라.“

마음이 완고한 이들에게 노기를 띠시고 몹시 슬퍼하시면서 손이 오그라진 사람에게 말씀하시니 그의 손이 성해집니다. 불통의 몸이 통하면서 따른 치유요 분명 오그라진 마음도 활짝 펴졌을 것이니 심신(心身)의 소통이자 치유임을 깨닫습니다. 정작 오그라진 손이란 몸의 불통보다 오그라진 마음의 불통이 더 심각한 병임을 깨닫습니다. 예수님을 어떻게 없앨까 헤로데 당원들과 모의하러 나간 바리사이들의 마음의 완고함에서 완전히 불통으로 오그라진 마음을 봅니다.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빛에서 분명히 계시되는 대사제 예수님의 면모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성령의 감도하에 시편 110장을 통해 창세기 14장의 멜키체덱 사제가 영원한 사제 예수님의 예표임을 깨달아 알았음이 분명합니다.


'먼저 그의 이름 멜키체덱은 '정의의 임금'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또한 살렘의 임금 곧 '평화의 임금'이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육적인 혈통과 관련된 율법 규정이 아니라, 불멸하는 생명의 힘에 따라 사제가 되셨습니다. "너는 멜키체덱과 같이 영원한 사제다."하고 성경에서 증언하였기 때문입니다.‘


정의와 평화의 주님이 바로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정의와 평화는 한 실재의 양면이요, 정의 없는 평화는 거짓평화입니다. 정의가 받쳐줘야 온전한 평화요, 하여 '정의 평화 위원회'라는 교회의 단체이름은 적절합니다. 정의와 평화가 완전히 실현될 때 비로소 소통의 건강한 개인이요 사회입니다. 반대로 불의(不義)와 불화(不和)의 현장이라면 완전 불통의 개인이자 사회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손이 오그라진 사람의 심신을 소통 치유시킴으로 정의와 평화를 실현하십니다. 예나 이제나 영원한 사제이신 우리 주 예수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평화를 선사하시고, 소통의 은총으로 영육의 건강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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