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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7.13. 연중 제15주간 수요일                                                       이사10,5-7.13-16 마태11,25-27


                                                               자기인식(self-knowledge)

                                                                    -하느님의 도구-


가장 쉬운 것이 남 판단하는 것이요, 가장 어려운 것이 자기를 아는 일입니다. 자기를 몰라 판단이지 자기를 알면 판단하지 않습니다. 하여 자기를 아는 것이 지혜요 겸손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복음은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유일한 찬양기도입니다. 찬양기도이자 동시에 감사기도입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한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참으로 철부지들만이 주님을 찬양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끊임없는 찬미와 감사의 기도가 주님의 겸손한 철부지의 사람들로 만들어 줍니다.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이 지칭하는 바 바리사이와 율사들입니다. 세속적으로 참으로 똑똑하다는 이들을 상징합니다. 겸손과는 거리가 먼 자들입니다. 하늘나라의 신비는 이들이 아닌 자기를 아는 겸손한 이들에게 계시됩니다. 철부지들로 상징되는 자기를 아는 겸손한 이들에게 선물로 주어지는 하늘나라의 신비입니다. 


모든 덕의 어머니가 겸손입니다. 진실과 함께가는 겸손입니다. 이 반대가 허영과 교만입니다. 진정 자기를 아는 겸손한 이들이 진실하고 늘 하느님께 자신을 개방합니다. 하느님은 이런 이들을 당신의 도구로 쓰십니다. 예수님은 물론 철부지로 상징되는 제자들이 진정 하느님의 도구입니다. 어리석고 어리숙한 듯 하나 실로 지혜롭고 겸손한 이들입니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 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아버지와 예수님과의 독보적 앎의 관계를 깨닫게 됩니다. 참으로 아버지를 알고 나를 아는 것이 크나 큰 은총임을 깨닫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간절한 기도 역시 둘로 요약됩니다. 하느님을 알게 해달라는 것과 자기를 알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영적지도의 목표 역시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이끌어 주는 것과 자기를 알게 해주는 것이라 합니다. 둘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할 때 하느님을 알게 되고 이어 자신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이런 겸손한 이들을 당신의 도구로 쓰십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과 제자들과 대비되는 이사야서의 주님의 도구였던 아시리아입니다. 교만으로 인해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잊고 제멋대로 행한 아시리아에 대한 주님의 불행 선언입니다.


“불행하여라, 내 진노의 막대인 아시리아! 그의 손에 들린 몽둥이는 나의 분노이다.”


하느님의 도구로써 출발한 아시리아였지만 하느님을 까맣게 잊은 채, 제 마음대로의 처신이었습니다. 소위 복음이 말하는 똑똑하고 슬기롭다는 자가 된 아시리아입니다.


“나는 내 손의 힘으로 이것을 이루었다. 나는 현명한 사람이기에 내 지혜로 이루었다.”


이어지는 말도 온통 내가 주어이고 하느님의 자리는 없습니다. 찬미와 감사가 들어 설 자리가 없습니다. 소위 세상에서 똑똑하다는 이들의 실상입니다. 하느님을 잊고 자신을 잊은 똑똑한 듯 하나 실상 어리석은 아시리아에 대한 주님의 혹독한 질책입니다.


“도끼가 도끼질하는 사람에게 뽐낼 수 있느냐? 톱이 톱질하는 사람에게 으스댈 수 있느냐? 만군의 주님께서는 마치 불로 태우듯, 그 영화를 불꽃으로 태워 버리시리라.”


자기를 잊고 제 분수를 넘어섬으로 하느님의 도구 역할에 실패한 교만한 아시시라아가 상징하는바 우리들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잊고 자기를 잊을 때 누구나의 가능성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철부지들과 같은 당신의 사람들인 우리 모두에게 풍성한 은총을 내려 주시어 당신의 도구로써 찬미와 감사의 삶, 진실과 겸손의 삶을 잘 살게 하십니다. 


“주님은 하늘에서 마련하신 빵을 저희에게 주셨나이다. 그 빵은 누구에게나 맛이 있어 한없는 기쁨을 주었나이다.”(지혜16,20참조).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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